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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의 아베마리아 성모송

프란치스코 교황과 진산 제사 사건 203년만에


프란치스카교황이 순교의나라 한국을 방문했다

조선의 천주교는 세계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자생천주교다. 

천주교가 선교를 통해 조선에 들어오지 않은 특이한 천주교다. 


이번에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은 

124위의 순교자를 복자로 선포하기 위해서다. 

복자는 성인이 되기 직전단계다. 


이는 지난 16일 10시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00만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124위의 복자중에는 선비 윤지충 바오로 라는 사람이 있다. 


1790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천주교 교구장 구베아 주교가 

조선 천주교에 “제사금지령”을 내렸다. 


전라도 진산에 사는 선비 윤지충과 그의 외종사촌 권상연은 함께 

구베아 주교의 제사 금지령을 따르고자 집안에 있던 

조상들의 신주를 불살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791년 여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자 

혼백도 만들지 않고 조문도 받지 않고 

어머니가 유언 한대로 가톨릭 예식대로 장례를 치루자 종친들이 분노했다. 


이런 소문은 조정에까지 전해지고 당쟁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정조는 윤지충과 권상연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피중에 있던 이들은 1791년 이 일로 숙부가 강금 됐다는 소식을 듣고 

진산 관아에 자수했고 전주 감영으로 이송돼 

혹독한 고문과 문초를 받으면서도 

(중략)제집에서 천주교를 충실히 믿는 것은 결코 국법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라며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자 전라감사는 조정에 장계를 올렸고 

정조 임금은 처형을 윤허했다. 

이로서 두사람은 무부무군의 사상을 신봉하고 난행했다는 죄목으로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됐으며 

이들이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다. 


이것을 “진산 사건”또는 신해교란이라고 한다. 

조상 제사지내는 것 때문에 신부 이승훈도 

베드로가 세번 예수를 배반 한 것 처럼 천주교를 세번이나 배교를 번복했다. 

그 때에는 제사가 그렇게 중요했다. 조상을 배반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고황은 방한 마지막날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타종교 지도자 12명을 만났다. 


서정기 성균관장은 금색보자기로 싼 선물(용봉난린기. 새시대를 열자는 글귀)을 

교황에게 건네며 

“한국천주교 교인들이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공인해 주어서 고맙다(1994년 로마교황이 공인)고 말했다. 


이번에 복자로 시복된  윤지충이 제사를 거부하고 죽은지 

203년만에 제사를 지내게 된데 대한 치하였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했는데  미사직전 행사에서 

천주교 신자인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 데레사(52)는 구노의 아베마리와 

인순이 세실리아 (57)는 거위의 꿈을 불렀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함께 제일 많이 불리는  성모송이다. 


구노는 19세기 프랑스의  대 작곡가다.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사제가 되려고까지 했던 독실한 신학생이었다. 


1867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곡하는 등 시대적인 작곡가다. 

1885년 성녀 세실리아 미사곡을 작고하고는 세속적 명성을 멀리 한채 

파리 외방 전교회 성가대 대장으로 종교 음악에 전념하고 있을 때  

어려서 같은 반에서 음악을 특출하게 잘했던 친구가  

사제가 되어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서 전교하던 

그 친구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영감에 젖어 성가를 작곡하였는데 

이곡이 바로 아베 마리아다. 


조선에서 순교한 친구와 조선 천주교를 위해 

성모마리에게 청구한다는 내용이며 

구노가 작곡한 조선 천주교를 위한 단하나의 곡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순교한 구노의 친구가  앙베르(1797-1839)주교라는 말도 있지만 

출생년도와 공부한 년대와 활동한 년대를 보면  

다불뤼(1818-1866) 주교가 맞고 다불뤼주교는 구노(1818-1893)와 

어려서 같이 공부 했던 음악 천재였고 친구였다.  


서학(천주교)은 조선에서 박해를 받았다.


중국 땅에는 명나라와 후금이 있었다. 

오랑캐인 후금(누루하치)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1636) 

조선에 군신의 예의를 갖추라며 공물을 바칠 것과 명나라를 치려하는데 

조선은 원군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친명파와 친청파로 갈리어 격론을 한  끝에 

명에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친명파의 주장대로 청의 요구를 거절다. 


이에 노한 청은 12만의 군사를 조선에 보내 3일만에 한양까지 쳐들어 왔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1만 3천의 군사로 항전 했지만 

식량이 떨어지고 추위에 못 이겨 45일 만에 삼전도(송파)에 설치된 

수항단(受降壇)에서 청의 7가지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항복 했다. 


장자인 소현세자와 차자인 봉림대군은 볼모가 되어 청나라로 끌려갔다. 

청군은 이때 수만명의 부녀자들과 친명파를 포로로 납치 해갔다. 


청은 잡혀온 포로 들을 등급을 메겨 집단으로 농사를 짓게 했다. 

인조는 사신을 보내 포로들을 송환해 줄 것을 요구 했지만 

청은 등급대로 돈을 요구 했다. 

조정은 그 많은 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백성들이 각자 돈을 내서 포로된 자기 식구들을 데려오게 했다. 

이렇게 해서 돌아온 부녀들을 환향여(還鄕女)라 했다. 

오랜 동안 포로로 집단생활을 하면서 청나라 남자들 사이에서 자식을 낳기도 했는데 

이 자식들을  오랑케의 자식이라 해서 호로(胡虜)자식이라 했다. 


부녀자들 몇 만 명이 한곳에서 집단적으로 농사일을 하며 

언제 죽을 찌도 모르고 만리나 떨어진 이방지대에서 기약 없이 

노예생활을 했으니 성적으로 문란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식 성문화가 조선에 도입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에서는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환향녀의 부녀자들은 바깥출입을 금지 됐다. 

외출할 때는 치마로 얼굴을 가리도록 했으며 

심지어는 외출할 때는 감시인을 딸려 보내기도 했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죄책감에 자살도 했고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인조는 이들의 죄를 사하는 방법으로 홍제천(弘濟川)의 물로 몸을 씻고 오면 

다시는 정조에 대한 논란을 하지 못하게 교지를 내렸다. 

지금 서울의 홍은동이란 동명은 환향녀들이 

왕의 홍은을 입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볼모가 됐던 소현세자는 동생 봉림대군과는 

달리 성격이 활발하고 개화적이어서 

북경 천주교의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을 하면서 

수리 천문 지리 등 서양문물을 접하게 되었고 

귀국할 때 책도 많이 들고 왔다. 이 때 이미 천주교가 그를 따라 갔던 

궁인들에 의해 조선에 들어 왔지만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1836년에 모방(Maubant 1803-1839)신부는 

압록강의 얼음 위를 건너 성벽의 하수구 개구멍을 통과해 

의주를 거쳐 서울에 들어와 포교하다 홍성에서 체포 돼 참형 당했다. 

또 앙베르(Imbert 1797-1839)와 샤스탕(Chastan 1803-1839)은 

자기가 선교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는 것을 막아 볼까 하는 욕심으로 

스스로 체포 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앙베르 신부는 제 2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돼 

중국으로부터 조선으로 걸어서 입국해서 

정하상(丁夏祥, 1795-1839, 순교한 정약전의 아들이고정약용의 조카, 기해박해 때 순교)의 

집에 숨어서 포교하다 

수원에서 체포 돼 기해사옥(己亥邪獄) 때 

순교 했다(시카고 북부에 정하상 천주교회가 있음). 


이렇게 천주교는 박해를 받으면서 1860년에는 신도수가 2 만 명이넘었다. 

신자가 늘어나자 박해가 더 심해졌고 일부 신부는 중국으로 도피했고 

14명의 프랑스 신부는 순교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신부들을 죽였다 해서 

7 척의 극동함대에 1천200명의 군대를 보내 강화도를 점령하고 

많은 금덩어리와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 등 서적을 강탈해 갔다(1866 병인양요). 


다블뤼(Daveluy, 1818-1866) 신부는 조선 제5대 교구장으로 "갈매 못"에서 순교 했다. 

(다블뤼신부의 시신은 명동성당에 묻혀 있다). 


이 신부가 생존해 있을 때 조선에서 프랑스 외방 전교회로 비망기를 보냈는데 

이는 1874년에 "프랑스 외방 전교회"에서 발행 한 

"한국 천주교회 사"의 자료가 됐고 한국천주교 역사는 

바로 이 책에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파리 외방 전교회는 박해시대에 조선에 선교사를 많이 보냈다. 

박해시대는 1866년에서 1872 년까지 6년을 말하며 

이 기간에 천주교 신자 8 천여 명이 학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병인박해 또는 병인사옥이라고 한다. 


프랑스 작곡가 구노(Gounod, C. F., 1818-1893)는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성당의 악장으로 성악(聖樂)을 지도 했다. 

구노는 선교를 위해 사제의 길을 걷고자 신학을 공부하다 

1848년에 외방 전교회를 떠나 음악에 전념했다. 

음악가인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음악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구노와 다블뤼신부는 나이도 동갑(1818년 생)이고 

같은 때에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서 같이 생활 했던 친구이다. 


구노는 1866년 조선에서 친구 다블뤼 교구장이 무참하게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순교후 3년) 

애도 하는 중에 1869년에 조선의 순교자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구노의 이 성곡(聖曲)은 한국의 "무궁무지세에"(한국 카톨릭 성가 284번)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구노의 "아베마리아(Ave Maria)"는 

친구 다블뤼 주교를 위한 곡이고 조선의 선교사들을 위한 곡이라고 한다

(앙베르를 위해 작곡 됐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아베(Ave)는 라틴어로 직역하면 "안녕하십니까"라는 뜻으로 

Ave Maria는 "안녕하십니까 마리아 성모님"인데 

한국에서는 성모송(聖母頌), 성모경(聖母經)이라고 요약해 말한다고한다. 


아베마리아는 성모마리아에게 간청하는 기도문으로 

6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다 11세기에 수도원에서 봉송 됐고 

13세기에 이르러 평신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모경을 배경으로 한 종교음악이 많이 작곡되었으며 

기도의 가사를 기원으로 한 음악도 많이 작곡되었다고 한다. 


아베마리아로 유명한 곡은 수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구노의 아베마리아 등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에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제일 종교적이고 경건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한다고 한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조선에서 순교한 친구와 

살해된 신자들을 위해 구노가 

성모에게 간청한 곡인데 세계의 어느 성모송보다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 칼럼은 www.seoulvoice.comwww.daum.net/mkchicago에서 볼수 있습니다)

<한국 민속 연구원 20140821 제395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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