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는 지난 8월 5일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하자는 서한을 판문점 북측 연락 관을 통해
북측에 보내려 했지만 북측 연락관은 수령을 거절했다고
정준희 통일부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설명했다.
정부가 판문점 연락 관을 통해 서한을 전달할 테니
만나자고 제안 한 것은 5일 11시 30분이었다.
이 시간은 박근혜대통령이 참석한 경의선 기공식과
이희호여사의 평양도 착하는 시간에 맞췄다고 정부관계자는 설명했다.
김대중 평화센터관계자는
남쪽 통일부장관의 서한을 북에 전달하려 했다는 사실을
도착 다음날인 6일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 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처음 들으면서 당황했다며
북에서도 시기가 왜 하필 이때냐고
상당히 안 좋게 생각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서한을 전달하려던 날은 5일이고 북한군이 중립 지대 이남으로 침범해
가설한 소나무로 만든 목함지뢰에 의해
우리병사 2명이 발목이 잘린 날은
그 하루 전인 4일이다.
우리병사 두명이 목함지뢰로 발목이 절단된 것은 4일이고
통일부가 서한을 전달하려한 것 날은 5일이다.
북한 연락관은 상부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 없다며 서한 수령을 거부 했다.
수령하기를 거절당한 후에도 남쪽 연락관은
6일부터 일요일만 제외하고 10일까지 매일 두 번씩 북측 연락 관에게
서한 수령여부를 확인했지만 북한 연락관은 똑 같은 답을 반복하며 거절 한다며
통일부 정 준희 대변인은 북 연락 관에게 앞으로
매일 두번씩 수령할것인지에대한 명확한 답이 있을때까지
계속 해서 물을 것이라고 했다.
서한은 통일부장관(홍용표)명의로
북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에게 보내는 것이며
내용에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 광복 70주년 공동 기념행사 개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 북한의 관심사도 함께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내용이다.
이런 중대한 사항이 담긴 서한을 통일부가 독단으로
북에 전달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청와대도 그 서한의 내용도 알고 있을 것이고
거절당했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이다.
그렀다면 어찌, 왜 수령을 반복해 거절 당하면서도
계속 수령여부를 요구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박정희 1등, 노무현 2등, 김대중 3등
역대 대통령들의 인기도에 대한 통계가 발표 됐다(8/7/15 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은 수년을 내려오면서 1등을 빼앗긴 때가 없다.
지난 7월30일 현재도 1등 박정희 44%, 2등 노무현 24%(죽은 후 매년 2등),
3등 김대중 14%, 4등 전두환 4% , 이승만 3%, 김영삼 1%, 노태우 0.1%다.
잘한 일이 많다는 평가에서도 박정희 67%로 1등이고
2등 노무현 54%, 3등 김대중 50%다.
잘못한 일 많다는 평가는 1등 이명박 64%, 2등 전두환 60%,
3등 노태우 45%, 4등 김영삼 42% 순이다.
박정희가 잘 한일은 경제발전(52%), 새마을운동(15%), 민생해결(12%),
잘못한일에 대한 평가는 독재유신(72%), 쿠데타 군사정권(10%) 등이다.
노무현이 잘한 일은 국민소통(17%), 국민입장 대변(17%), 서민 경제(10%) 등이며
잘못한 일은 죽음 자살(10%), 자질부족(9%), 대북 퍼주기 정책(8%), 국론 분열(7%),
말실수 막말(7%), 가벼움(7%) 등이다.
김 대중 잘 한일은 대북 햇볕정책(27%), IMF위기극복(18%),
잘못한일은 가족비리(7%) 등이다.
철의 장막 뚫고 7.4 공동 성명에 성공했고 미군 철수 저지
박정희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대한 민국대통령으로서는 1등 대통령이고
지금 그의 딸 박근혜는 현직 대통령으로
그는 미 중 2 대 최 강국(G2)에 의해
아시아 판도를 재편하는 격랑의 찰라이며
패전국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재등장하고 있고
게다가 북한의 핵개발은 안보를 위협하는데
통일을 해야 하는 국가지 대명 앞에 책임자로 서있다.
동북아에서 대국들의 경제, 군사 등으로 세력 다툼이
얽히고설킨 이 시점에 우리는 여기에 맞는 인재가 필요하다.
대통령 혼자서는 제한 된 24시간으로는
감당 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능력 또한 한계가 있어 일의 분량으로 보아
한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불가항력이다.
1970년 8월15일 박정희 대통령은
“평화통일 구상 선언”이란 광복 25주년 경축사를 했다.
이때 한국의 명운은 현재에 비하면 훨씬 어려운 절대 절명한 시기였다.
1969년 미국대통령 닉슨은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스스로 ”라는
닉슨 독트린을 내놓으며(1969년 7월25일)
다음해인 1970년엔 미국이 한국과 상의도 없이
주한 주한 미군 7사단과 2사단을 철수시킨다는 안을 내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과 사전 협의 없는
주한 미군 철수는 한미 방위조약 위반이라고 성명을 내고 반대하면서
그렀다면 한국군의 전투력을 증강하고
장비의 현대화가 선행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1971년 2월 한국정부와 미국은
그해 7월말까지 7사단만 철수하고 2사단은 후방으로 배치하고
전선은 한국군이 전담한다는 것과
미국은 15억 불의 군사원조 차관을 제공하고
한국군 5개년 현대화 계획을 지원하며
양국의 외무 국방 고위급 관리가 연례 안보협의를 개최한다고 합의했다.
이 공동 성명으로 한국은 무기와 탄약의 국내생산이 가능 해 졌다.
당시의 남한 경제는 물가상승, 무역수지 적자, 실업률 증가 등
3중 위기에 있었고 1969년 GDP가 1970년에는
반으로 뚝 떨어져 있을 때 이었으니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앞에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동시에 다가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한 경제가 북한에 비해
막상막하에서 좀 뒤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카랑카랑한 목소로 통일을 위한 획기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국민들 앞에 제시하고
1년 후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고
2년 후인 1972년 당시 남과 북은
철의 장막 통정치시대여서 개미하나 왕래가 없었던 때였지만
바정희는 그 틈을 뚫고 7.4 공동선언을 성사시켰다.
G 2 동북아 재편과 일본 무장. 우리도 큰소리 내자
2015년의 동북아 정세는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를 선언한 후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군사력 재균형의 일환으로
패전국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등
정치적 군사적 변화 무쌍한 격랑이 일고 있다.
이 틈이 우리도 국익에 대한 목소리를 크게내며
통일을 명분삼아 과감하게 도전 할 기회다.
우리 국익에 맞는 소리가 무엇인가에 창안하고 시대에 맞는
통일 구상 을하고 이 소리를 크게 내야 할 때다.
그러면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속으로는 싫을지 몰라도
내 놓고 반대는 못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3 대국 관계가 탄탄히 정립된 후에는
우리의 목소리를 그들은 듣지도 않을 것이다.
1972년 미 중이 데탕트 과정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줄이면서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약화시키고
남북화해를 독려하는 전략을 추구했다”고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분석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이런 미국의 동아시아지역의 전략을 염두에 두고
7,4공동 성명을 추진하는 한편
북한에 대응해 경제와 국방을 키우는 전략적 노련함을 발휘했다고
김순덕 칼럼(동아일보)은 주장하며 또
2015년 박근혜대통령은 미중간의 민감한 전략 관계를 의식하고
외교 정책을 펴는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1970년대의 아버지처럼 초법적 조치로 뜻을 세우고 관철할 수 없고
아버지를 능가 할 만한 의지와 예지(銳智),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면 유능한 두뇌라도 빌려야한다고 했다.
지금 박대통령은 아버지와는 달리 듣기 싫은 소리,
나쁜 소식도 가리지 않고 듣는 모습이 없다.
장관들도 보고서만 만드는데 신경 쓸 뿐
몸 사리지 않는 관료와 참모는 아예 수첩에 없다.
설사 대통령이 북에 밀사를 보내려 한들(발 벗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1970년 박정희의 평화통일구상 선언이 나오기까지
거의 10여 개월간의 상고가 있었고
마지막회의에선 고성이 오고가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대통령이 내놓은 외교 정책은 동북아의 큰 흐름과
미.중, 미.일, 중.일 관계의 변화를 전략적 함의(含意)를
(박정희처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 실장 8/10/15 참조).
명분은 좋았지만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방도가 없으니
실천할 구도도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명분은 있는데 방도가 없다니!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도 (접촉해)
국익을 찾는 것이 외교일진대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신뢰외교”는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
신뢰할 수 없다고 어떤 방도를 연구하지 않고 (마냥)믿게 될 때까지
기다리다간 남북대화는 영영 없을 수도 있다.
5일 경원선 남측구간 기공식에서 박 대통령은 축사를 하면서
오늘이 실직적인 통일준비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 될 것이라며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남북대화의 이 길에 동참해주기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낼지 방법론이 없으니
장래 비전은 없는 것과 같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진을
주위에 두지 않은 박근혜대통령은
점점국민과도 동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김 논설실장은 지적했다.
박근혜대통령은 내달 9월 3일에 베이징에서 거행되는
승전일 기념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초청장을 중국으로부터 받았다.
통일이라는 과제를 놓고 볼때
이것은 누가 봐도 대통령이 참석해야한다.
미국도 그렇게 알고 있고 일본도 그렇게 알고 있고
우리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속으로는 박대통령이 안 갔으면 하는 나라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놓고 강하게 가지 말라 고하는 나라는 아직 없다.
“전승일”은 중국이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다음날인 9월 3일을 기념하는 날이며 특히 올해는
항일 전쟁과 반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으로 한국과 북한을 포함해
50여 개국 정상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일본 아베 총리에게도 보냈지만
아베는 패전국 정상이 사죄하는 모양새가 된다며 부정적 반응이다.
박대통령 방중에 왜 일본이 초조해하나?
그런데 일본의 교도통신이
“미국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중국 전승일 기념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한국정부의 외교통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요구했다”고
미국정부 당국자와 외교사절을 인용해 9일 보도 했다.
이 교도 통신은
첫째는 박대통령이 행사에 참여할 경우
중국이 한 미 동맹을 균열시킨다고 (미국이) 오해를 할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국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박대통령의 행사 참석은 한미일 협력을 축으로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전략에도 영향을 준다는
미국의 견해도 전했다는 것이고
셋째로는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한국과 중국의 역사문제에서
(미국과)일본이 (한편이 돼)함께 맞서는 듯 한 모양새가 되는 것을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외교부는 교통신의보도는 사실무근이며
이는 한국이 판단할 일이지
누구의 압력을 받고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이 오해할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9월3일 중국의 승전일 행사에 한국 박대통령의 참석에 대해
“왜 일본이 더 초조해”라는 제목으로
박근혜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기대한다며
미국정부가 박대통령의 불참을 요구했다는 교도 통신의 보도를 거론하며
“사실이 아닌 보도”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정부를 가운데 두고 박대통령의 방중 행사 참석을 막아보려는
일본 정부를 비난했다.
환구시보는 계속해서
참석여부는 한국정부의 독자적 결정이라며
한국은 항일 전쟁에서 중국과 환난을 함께 겪었고
한국의 임시정부를 상하이에 뒀었고
중국이 얄타회담에서 한반도 독립을 지지했다며
박대통령의 전승일 기념행사에 방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 중 양국은 우호적이고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미 동맹과 중 북 우호관계는
한국이 계속 (중국에)가까워지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은 독립적인 외교를 통해 국가 이익을 극대화했고
외교체계에서도 총체적인 평형을 잘이뤘다고 평가했다.
박대통령이 승전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많은
중국인들은 의아하겠지만 (일본처럼)초조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의식 강화와 단결
한국대통령의 중국 승전일 에 참석하는 일로
미국 중국 일본이 각축을 벌리지만
참석여부는 누구도 강하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있다.
한국 국토는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가 2차 대전후 물러가면서
미소가 만든 38선 때문에 분단 됐다.
이제는 우리 국익을 위해 이 가로막힘을 소멸시키고
한국가 한민족이 되겠다는데 누가 앞장서 못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해서
우리의 통일의식을 우리 스스로 강화하고 통일이 절박하다는 것을
주변국에 인식시켜야한다.
(이 칼럼은 www.seoulvoice.com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 회원 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제442호 www.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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