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8 18:12
중국에서 물꼬 튼 통일 서울에서 탁방내자. 美 中 傳令使 박근혜의 新외교. 김정은의 외할아버지는 제주도 사람 김정은이 목함도발을 한 목적이 무었이었던 그 목적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남북 간에 대화의 장은 열렸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도 다음 달 10월에 하게 됐다. 김정은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중국의 큰 전승절 잔치를 30일을 앞두고 목함지뢰 도발을 했다. 결과는 제가 논 덫에 제가 치는 자승자박형국이 됐다. 목함지뢰 도발에 이어 대포 두 방을 남측에 대고 쏘는 등으로 위협했지만 우리군은 36 빵의 포탄을 쏘아 맞대응 했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고 전시상황을 선포 하기에 이르렀다. 휴전선 남쪽에서 지뢰가 폭발된데 대해 누가 지뢰를 어디에 가설하고 어떻게 왜 터졌는지를 북한 주민들은 알지도 못했다. 남북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에 돌아간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조선 중앙tv에 나와 목함지뢰폭발 사고는 “남한이 꾸며 분란을 일으켰다며 (북이 했다는)”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군부의 여론이 만만치 않게 돌아가자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재차 tv에 나와 목함도발 사건은 (남한이 조작한 사건이라며 북 입장에서는) “근거 없는 사건, 원인모를 사건”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은 깁정은이 왜 전시상황을 선포했는지 영문도 모르고 전시상황으로 초긴장했다. 여하튼 목함지뢰 폭발 사건은 김정은이 전시상황을 선포하게 된 계기가 됐으며 우리군은 그 대응으로 15일 동안 대북방송을 하게 되었다. 대북 방송을 통해 김정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 방송은 김정은은 자신감을 잃은 철부지, 김정은---독재자---처단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은 김정은체제에 치명적이었다. 대북 심리전 방송이 지난 8월25일을 기해 중단 됐지만 지금까지 계속했다면 지금쯤은 김정은의 외할아버지가 제주도 사람(고경택)이고 2차 대전 때 일본에 가서 군수공장에서 공돌이로 일했으며 해방 후 먹기 살기가 어려웠던 극빈자 재일교포들이 만경봉호에 실려 북송될 때(1962)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1953-2004)가 외할아버지를 따라 북에 갔다(1962)는 사실과 고영희 1953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재일 조선 교포이고 만경예술단 무용수로 있다 김정일과 동거(1976) 중에 83년에 김정은을 생산했지만 김일성은 고영희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안했고 손자 김정은도 손자라고 여기지를 안 했으니 대북방송에 이런 사실이 방송 됐다면 김씨 왕조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흠집을 주민들이 알게 됐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국정부가 대북 방송을 중단한 것에 대해 감지덕지 할 만하다. 주변국 정상이 서울에서 통일논의 하겠다. 박근혜대통령이 9월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게 되자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젊은 철부지 김정은은 목함도발을 저지르고 준전시 상황을 선포하는 등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것처럼 긴장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중국은 전승절을 앞두고 김정은이 문전에서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했고 큰 행사를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전쟁소동을 당장 중지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시주석과 정상회담 시작하자 제일먼저 북의 도발과 전쟁 긴장해소를 위해 시주석이 역할을 크게 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깍듯이 했다. 그러면 시주석이 김정은에게 어떻게 했기에 박대통령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을까? 기자들이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공군 제1호기) 안에서 “시주석이 김정은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냐”고 물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김정은의 목함도발과 준전시상황 선포가 전화이복이 돼 박대통령은 시주석과 동북아 평화와 막무가내로 도발을 일으키는 김정은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북의 도발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고 국민들도 불안해한다며 이를 방지하는 데는 시 주석이 앞장서지 않으면 이를 막을길이 없다며 시주석의 역할 론을 강조했다. 동북아의 평화는 중국이 주도해야한다는 논리를 폈다. 박대통령이 시진핑주석의 역할론을 강조한 것을 역으로 뜯어보면 중국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일이 도발을 계속한다고 책임을 추궁한 것이 기도하다. 이어 일본이 아직도 역사문제에서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선 일본의 협력도 불가피하다며 일본과도 정상회담을 해서 북의 도발을 견제하자는 제안도 했다. 이에 대해 시주석도 동감했고 10월31일 아니면 11월1일로 한 중일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겸해서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의 핵개발도 김정은의 도발도 따라서 해소 된다며 통일은 비핵과 도발방지의 귀결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시주석은 동의하며 통일은 반듯이 평화적으로 이루워져야한다고 했다. 평화통일은 우리도 바라는 바다. 여하튼 박근혜대통령의 이번 중국 베이징 발길에서 시진핑주석과 어떻개해야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 통일을 이루 워야 할지를 의논하게 됐다. 바로 이게 평화통일의 물꼬가 트인 것이 아니냐는 해석 나왔다. . 주변 3국 정상들이 동북아 평화논의를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평화통일을 놓고 의놈한다는 뜻이며 이는 큰 소득이다. 이에 대해 일본 아베총리도 즉각 환영의뜻을 밝혔고 특히 박대통령과는 단독회담하며 풀어야할 국제문제가 있다고 했다. 중국의 대북 제재 너무 약하다. 미국의 전령 역할 하겠다. 우리 정부도 그랬지 만 미국도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를 중국 정부차원에서도 시늉만 내고 민간차원에서는전연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불만이었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미국에 말했다.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준비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는 이때에 전승절에 시주석을 만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철저하게 실천해 대북제재가 눈에 보이게 협조해 줄것을 당부하겠노라며 미국의 불만을 시진핑주석에게 전달하는 전령사(傳令使)의 역할을 하겠다며 전승절참석에 대해 미국에 양해를 구했다. 거기에 더해 모함 도발로 야기된 김정일의 전시상황선포를 해소하기 위해 시주석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미국에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박대통령은 주변의 대국(大國) 간의 균형외교를 잘 했다.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인구 8천만 시대 통일에 가장 큰 열쇠를 쥔 시진핑주석이 박대통령과 통일을 논의한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한발짝 발전한 것이며 2년 전 베이징 한 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시진핑주석이 이번에는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를 하기위해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이는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소식이며 우리들은 이 시간을 오래 기다려 왔다. 당장 무슨 탁방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탁방을 내는 길로 향해 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 한국이 돈 돈 장사 장사하지 않고도 잘 살게 되는 유일한 길은 8천만 인구를 만드는 것이다. 남한 5천2백만 북한 2천400만 해외 동포 700만(2013년 현재)이 한데 합치는 순간이다. 8천만 인구는 내수만으로도 국내 경제가 위축되지 않고 충분하게 나라살림을 할 수 있는 분기점이다. 통일은 분단됐던 한민족이 모두 모여 8천만이 되는 순간이다. 두말할 것 없이 통일하는 대통령이 진짜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이 향하이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이번 방중으로 통일에 몇 발짝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통일은 주변국, 더 나아가서 세계가(암묵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동의를 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외교력을 발휘해 평화통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세계평화에 어떤 좋은 점이 있을지를 자꾸 설명하고 동의 받는 노력을 잘해나가면 좋겠다며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주변국의 협력이 중요하고 특히 북한의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서독 장벽이 무너졌는데도 통일은 안 된 채 있었다. 여기서 박대통령이 독일의 사례하고 한 것은 동서독 장벽이 1989년 9월에 무너지자 주민들은 국경 없이 자유를 찾아 오고 가며 통일이 된줄알았지만 미소영불 승전국들은 통독은 아직도 시기상조라며 통일을 승인하지 않고 반대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영국과 불란서는 런던에서 긴급 비밀 정상회담까지 하며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톡일 통일을 막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가 동서독주민들이 자유를 환호하며 왕래하는 것을 목격하고 동서독을 다시 분리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국정신에 어긋난다며 통일을 지지했다. 바로 동독의회가 소집됐고 서독으로의 통독을 결의했다. 비로서 미소영불 전승국이 통독을 승인했다.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고도 11개월 지나고 1년이 가까워져서야 통일이 됐다. 그래서 박대통령이 외교력을 발휘해 한반도통일이 주변국에 어떤 의미가 있고 통일한국의 위상을 주변국에 미리 알려야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대통령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며 박근혜의 “新외교”다. 이제부터 박대통령은 아마 실천이 가능한 실리가 있는 신외교를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곧 유엔총회가 시작되고 시주석이 뉴욕 유엔에서 강연하고 이어 국빈으로 워싱턴으로가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한다. 여기서 G2 두 정상은 동북아 평화와 한 중일 협력관계에 대한 얘기도 필경 하게 될 것이다. 평화통일이 비핵 북도발 영원히 막는 귀결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영원히 막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는 한반도 통일만이 그 귀결점(歸結點)이라는데 시주석이 동의한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동의했으면 좋겠다. 10월16일에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 돼 있고 다음 달 말인 31일이나 11월1일에는 서울에서 한 중일 3국 정상회의가 예정 돼 있다(아직은 미확정). 앞으로 몇 개월 안에 있을 정상회담들은 박대통령의 신외교의 실험장이 될것이며 대북정책의 기로이고 바탕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기회도 될 것이다. 왜 김정은은 중국으로부터 전승절에 오라는 초청장을 받고도 불참하면서 전승절 행사 30일전에 목함도발을 일으키며 준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소란을 피웠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소란이 일어나면 전 세계에서 30여명의 정상들이 전승절을 축하하러 오는 기념행사가 재대로 치루워지지않을 것이고 박살 날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시진핑의 국가체면은 무어가 되나! 북이 남을 향해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전쟁으로 긴장돼 있는 사황에서 또 우리 군도 만일을 대비해 비상상태에 있는데 박근혜대통령이 나라를 비우고 아무리 이웃나라라해도 남의나라 행사에 참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전쟁 소란의 계속이 중국 전승절 행사 직전인 8월25일까지 남북 전쟁 소란이 이어졌다. 전승절 행사는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판문점 고위급정촉은 밤을 새우며 접촉을 했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 시진핑도 몸이 달았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시진핑주석이 김정은에게만 전쟁상황 긴장 해소를 하라고 강하게 압력을 가하면서 우리 측에는 아무 협조도 구하지 않고 있었을까! 시주석은 남북 양쪽에 자제할 것을 종용했고 행사를 위해 남북에 협조를 구했을 것이다. 협조를 구하는 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빼놓을수 없는 무역대상구이긴 해도 아직도 중국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북한을 완충지대로 남겨 두겠다는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중국이 통일한국의 위상을 아직 확실하게 알수가 없다는 데 있다. 여기에 참고 될 만한 기고(寄稿)가 중국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9.19 공동선언에 대한 것이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게 체제보장과 북미관계개선이다. 바로 그 내용이 바로 9.19 공동 선언 안에 다 들어 있다. 왜 시주석은 9.19 선언 이행 애기를 했나? 그런데 이번에 시주석이 9.19공동선언 이행을 역설(He urged)했다는 기고가 중국의 신화통신 영문 판에 나왔다는 것이다 (청와대 자료에선 양측이 주장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김순덕 9/7/15 칼럼> 그러면 9.19공동선언은 무엇인가? 9.19 공동선언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제4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것으로 북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하고 단계적으로 비핵화하기로 약속하고, (미국은)북에 대해 핵무기 불공격약속하고 북 미간 신뢰구축을 골자로한 선언이다. 9.19 합의는 요약해 두가지다. 북은 핵포기하고 대신 미국은 북의체제보장 하는 약속이다. 공동선언은 미 국무부 장관인 잔 케리도 이런 방식은 반대하지 않겠다고한 바 있다. 혹 시진핑주석이 서울 한 중일 정상회의에서 9.19 공동선언에 대한 말을 다시 꺼내지는 않을지! (이 칼럼은 www.seoulvoice.com 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 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제447호 20150910 www.charakwo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