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5 14:06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국 군대 북한 진입.
저승사자 김정은. 제4차 핵(수소탄)실험 끝내
비핵화는 통일외교 약화
박근혜대통령은 이제 막 2016년이 시작되면서 집권 4년차를 맞게 됐고
일본 총리 아베는 금년 10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큰 탈이 없는 한
2018년까지 집권할 것이며
중국 시진핑주석은 아직도 임기 7년을 남기고 있다.
미국은 이미 대선 정국에 들어서 있으며 오바마는 임기 1년 남았다.
김정은은 임기가 없다.
한국은 금년 4월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어
정치권이 계파싸움으로 날을 새우며 무기력해 있으며
내년에는 또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그러면 통일외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통일은 한반도에서 변화가 없으면 불가하다.
변화는 김정은이 도발을 하고 4차 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중국의 대북정책도 요동치게 되고
미국도 일본도 김정은에 대한 대책도 요동치게 된다.
이 요동으로 오는 소리는 통일이오는 고통이다.
70년이나 묵어온 고질적인 한반도 분단이 합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참고 견디어야한다.
북 핵이 해결되면 중국의 대북정책은 안정화될것이고
북 중 정상회담도 열리게되고 따라서 북중관계도 급속도로 좋아질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달래며 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북중관계가 개선 되면 한국의 대중(對中) 통일외교도 약화(弱化)될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미와 중이 충돌하면서 미국과 일본이 한편이 되어
중국을 압박할 때
한국은 남중국해를 비무장화하자는 안(案)을 제안한 바있다.
이 남중국해 미+일 對 중국의 파열음은 한국의 4강외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일본에 한국과 빨리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미일 공조가 공고해진다며
압력을 가했고 결국 한 일 위안부 문제에도 영향을 주어 지난
12월에 위안부 문제는 일단 해결 됐다.
동북아의 퍼열음은 통일로 봐서는 전화이복이다.
김정은이의 2012년 3차 핵실험은 중국의 심기를 크게 손상시켰고
이를 계기로 중국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 앞장서 찬성까지 하게 됐다.
이 틈을 비집고 우리는 중국에 통일외교를 했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에대한 지지를 얻어 냈다.
그래서 한국의 중국경도(傾度)론이 나왔고
한국정부는 미국에게도
통일외교를 할 여지를 확보했다.
그 결과 박대통령의 대미 통일외교도 성과를 얻기에 이르렀다.
박대통령은 지난 3년간 지구를 적도길이를 기준해 10바퀴나 되는
먼 행보를 하며 장사도 열심히 했지만 그 보다는 가는 곳마다
그 나라 정상을 만나 통일외교에 집중했고 성과를 봤다.
때 맞춘 김정은의 4차 핵(수소탄) 실험
김정은은 지난 12월 15일에 수소탄 실험을하라고 친필 명령을 내렸고
1월 3일에 죄종 서명했으며 제 생일 이틀 앞둔
6일에 제4차 핵(수소탄) 실험을 극비리에 시행했다.
(김정은 생일 1월 8일 )
규모는 진도 6.8이며 2차 6.5와 3차 6.9보다 약하다.
1차 2차 3차 실험 때는 중국과 미국에
사전 통고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
온 세계가 다 놀랬지만 그 중에도 중국으로서는 이만 저만한
실망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북중 접경에 군 3000명을 증파 했다. 곧
유엔은 대북 제재의 강도를 한층 더 높이겠지만 이에
중국이 어떻게 얼마나 협조하는냐에 따라 그 효과가 좌우 될 전망이다.
한국의 4강을 향한 통일 외교도 한층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때 맞추어 제발등을 제가 찍고 제가 논 올가미에 제가
들어가는 형국이 됐다.
2015년 하반기 통일 4강외교 성과
박대통령은 특히 2015년 하반기에 4강(미중러일)통일외교에 집중했다.
시진핑주석이 방한해 서울 대학에서 젊은이들에게
“여러분들이 동북아의 주인 되어야 한다”며 “한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한바 있는데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에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 군사열병식에 참여해서 이를 재 다짐했다.
곧 이어 10월에는 미국에 가서
오바마와 만나 중국경도론에 대한 의문을 잠재웠고
미 부통령 조 바이든이 연세대학 강연에서 양속했던
미국은 동맹국 한국 통일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오바마에게 확인 했으며
11월에는 일본 러시아와 정상을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공조와 지지를 재확인했다.
18년 동안이나 한일관계에서 걸림돌이 됐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을 마치자 일본 아베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서두르기에 이르렀다.
박대통령은 시진핑주석과 6번이나 정상회담을 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6번이나 접견했으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는 5번이나 만났다.
더구나 중국 리거창 총리와도 4번 만나 중국 정상급과는 총 10번을 만났다.
시주석과는 정치 문제 리거창과는 경제문제로 만났다.
특이하게 주목할 것은 한 중 FTA 자유 무역협정을
시진핑주석이 서둘렀다는 대목이다.
박근혜대통령은 세계정상들과 총 77번 만났고
공동성명을 낸 것도 77번이고
이때마다 평화통일에 대한 지지를 빼 놓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다.
특히 주변국으로부터 얻어낸 지지를
차곡차곡 쌓아두면
이 보따리가 통일의 결정적 순간에 중요하게 빛을 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의 통일의지는 어떠하며
학생들에 대한 통일교육은 어떠한지 살펴보면 너무도 한심하다.
통일을 위해 박대통령의 임기 4년차에
남북정상회담을 해야하느냐는 질문에
63%가 하면 좋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응답해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절실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더구나 통일의 기회가 와도 정치인들인들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는 것 때문에 더 걱정이다.
역사를 바꾸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우리대문앞을 지나갈 때
그의 옷자락을 잠는 것이 정치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오토 폰 비스마크
(Otto Von Bismark 1815-1898; 독일 제국을 건설한 19세기 독일 정치인)는
말 했다.
통일은 주변 4강에 공동 이익 당위성 있다
독일 총리 콜은 유럽통합과 독일통일이 동시에 돼야한다는
필요성(당위성)을 애창곡의 후렴처럼 반복했다고 한다.
콜총리의 이 되뇌인 애창곡의 후렴은
한반도 통일이 주변 4강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것과 꼭 닮았다.
우리도 한반도 통일이 주변국에도 이익이고
평화에도 기여한다는 당위성을 뇌이고 뇌이며 정당화해야한다.
이것은 4강뿐이 아니라 북한 정치 엘리트들에게도 빨리 알려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미국의 북한 문제를 연구해온 랜드Rand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브르스 베넷이 한국기자들에게
대북정책을 조언에서도 참고 할 수가 있다.
베넷 선임 연구원은 김정은 정권에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며
김정일 시대에 2인자들은 굉장히 좋은 조건에서 충성을 다했지만
저승사자 김정은의 2인자들은 언제 어떻게 될는지도 모르고
사자밥을 질머진(사형선고)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110여명의 측근을 이미 숙청했다).
조만간 북한 군부에서는 김정은을 손보지 않으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우려)이 점증할 것이라며
김정은의 암살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우선 할 일은 북한 정치 엘리트들에게
(남한으로의)통일이 된 후에도 그들이 편안한 삶을 살수 있다고
납득시키지 않는 한 (통일은)불가능하다고 했다.
서독정부는 수십 년 동안 동독 고위 인사들에게 통일 후
전면적 사면(赦免)과 후한 퇴직금을 약속했던 예를 들며
동독 관리들은 통일되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고
(호네카 동독 공산 독재정권에 의해)총살되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하고 통일에 저해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한국도 이 시점에 북한 관리들을 상대로 통일 후
사면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부르스 베넷 연구원이 한 말이 얼마나
타당한 지를 알려주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돈 많이 들고 서울로 오는
최고위 급 탈 북인들에 대한 정부의 특혜다.
큰 돈 들고, 미국보다 서울이 좋다.
북한 권력의 핵심부서에서 비자금을 운영했던 에이(A)씨는
제 3국에 파견돼 주로 자금을 세탁해 북한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서울에 들어와 부자들이 사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보통의 탈북자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인들이 입국해서 꼭 거쳐가야하는 하나원교육을 거치지도 않았다.
입국 후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을 받는 동안에도
두달 동안이나 안전가옥에서 생활 했다.
그가 갖고 온 돈의 규모는
500만 달러(약56억7천만 원)안팎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오랜 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강남의 부유층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국정원 당국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최근 3년간(김정은 집권 후) 탈 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 해외 주재관 만 46명이라고 밝혔다(10/20/15).
2013년 8명, 2014년 18명, 2015년 10월까지 20 명으로
그 수는 수직 상승한 반면에
일반 탈북자들의 입국은 2009년에 3천명이었던 것이
2014년엔 1400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10월까지 한달에 100명이하로 내려갔다고 했다.
거액을 소지한 탈북자들은 큰 돈을 들고
미국을 선택해 망명하려해도 돈에 대한 조사를 엄하게 하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서울을 택해 사전에 자금 이전(移轉)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협조해 줄 것인지를 꼼꼼히 따지며 담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외화벌이 일꾼들이 한국으로 입국하는
이유는 첫째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해외주재관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 송금하라는 압박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며
두 번째 이유는 김정일체제에 들어와 권력구조 지형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권력자가 실각하는 바람에 그 측근에 있던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면 장성택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관리 해 왔던 비자금의 상당부분이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며
차명계좌 등으로 금고직이들이 자금을 챙겼다는 것 등이다.
이들이 미국을 마다하고 서울로 오는 것은
미국은 망명 조건이 까다로워
개인이 자금을 들고 들어가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이들의 돈은 횡령 등 범죄와 연관된 돈인데다가
난민 자격을 획득해야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얼마를 들고 오던 문제 삼지 않고
더 많이 갖고 올수록 대 환영이다.
들고 들어온 돈은 얼마가 됐던 전액 본인에게 돌려 준다.
많은 현금을 유로나 달러로 환금해 한국으로 이송한다는 것도
개인으로서는 어렵고 큰 돈을 세관을 피해 비행기를 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돈 피난처가 있는 외국 국가의 금융기관에
차명계좌로 입금해 놓고 한국에 입국한후
한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회수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서울에 오자 여권이 회수되고 신분이 바꾸기 때문에
돈을 이송할 때 은행에 본인이 본인임을 입증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서울에 갈테니
정부가 이러이러한 편의를 봐달라고 담판을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입국해 심문을 받을 때 북한 국적의 여권을 차압하지 말고
돈을 서울로 이송하는 동안 소지하게 해 달라는 것 등이다.
거액을 들고 온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단체나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 정보원이 정부 공무원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공직에 있으면 여행도 맘대로 할 수가 없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사양한다고 한다.
이들을 보통 탈북자들이 곱게 봐주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북에서도 고급 관료로 호의호식했고
남한에 와서도 들고 온 돈으로 잘 살고 있다는 시각에서라고 한다.
일반 보통 탈북자 한명에 제공되는 정착금과 포상금이 전과 달리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아파트 보증금과 정착초기 기초생활 수급자격으로 받는 생활비와
자격증취득에 대한 격려금 등 모두 합쳐서 최대 3천에서 4천만 원 정도다.
탈북자가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포상금도 지급하는데
1990년대에는 1억 원이 넘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간 간부급이 겨우 수백만 원으로 크게 줄였다고 한다
(이 글의 출처는 주간 동아).
1983년에 북한 공군 소령 이웅평(1954-2002)은
소련제 미그19기를 타고 훈련 도중 이탈해
인천 상공을 저공 비행해 수원비행장으로 망명했다.
정부는 이웅평에게
당시 시가로 비행기 값과
정보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 보상 했다.
지금까지 탈북한 누구보다 많은 보상을 받았으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풍족한 부자로 살았다.
중공군 북한 진입 가능성 있다
랜드 연구소 선임 연구원 브르스 베넷은
얼마전에 서울에 와서 강연도 했다.
그는 통일 전후 해서 중국군대가 북한에 진입하면
미국도 한국도 물리적으로 대항해 중국군대를
되돌려보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북한에 투자한 막대한 재산과 자본을 통일이 됐다고
손해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 이 외에도
중국 군대가 북한에 들어올 구실은 많이 있다며
통일 전 후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주의 할 점을 지적하며
중국군이 북한 땅에 진입한 상태로 남북통일을 이룰수 있는냐 하는
질문을 아니할 수가 없다고 (염려)했다.
주한 미군 철수놓고 협상
그리고 중국은 통일 전후해 중국군이 북한 지역에 들어온 후
철수 하는 조건으로 (미군이 간섭하지 않고) 한국 군만이 북한지역에 들어가
질서를 잡아도 좋다는 조건을 내 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 지적은 한 편으로는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중국군도 철수하겠다는 조건을 내놓을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외교는 이런 만일의 일까지도
염두에 두고 탄탄하게 해야한다.
(이글은 www.seoulvoice.com과 www.daum.cafe.net/mkchicago에서 다시 볼수 있읍니다.
<한국민속연구원 제462호 20160107 www.charakw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