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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수소탄 실험에도 불감증에 걸린 국민. 

用美 用中 策士가 아쉽다.  


국가 전략 대전환 할 때. 국민 핵 불감증

지난주 목요일 교차로에 계재 됐던 

조선일보 양상훈 주간(主幹)의 글중에 마지막 부분을 

다시한번 요약해 본다. 


우리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은 북핵있는 유지”로 흘러가고 있다. 

북핵실험에 놀라지 않았다는 국민이 놀랐다는 

“국민의 두 배”에 달했다는 불감증도 북핵있는 

현상유지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국민이)북핵 없는 세상에서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긴 얘기 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현상을 흔들 방안을 찾아야한다. 

북한 핵개발정도의 현상타파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한국의 핵 논의가 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든지 북이 요구하는 것처럼 

주한 미군 철수와 북핵 폐기를 맞바꾸는 것 같은 

국가 전략 대전환(國家戰略 大 轉換)을 시도하든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해야 한다. 

다만 우리에게 그럴 결의가 있고 실천할 능력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상이 조선일보 양상훈주간의 오피니언을 가감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는 또 미 의회 대북제재도 

이란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내용이고 

오바마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북핵은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미 언론에서도 북핵은 별뉴수거리도 아니다라며 

앞으로 북이 5,6,7차 핵실험을 하고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고 잠수함발사까지 성공해도 미국의

“핵있는 현상유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미국은 핵개발을 해도 

한국의 반발을 B-52 전개와 같은 

쇼로 무마하려 할것이라고 했다. 

양상훈 주간은 무엇인가 진전도 묘안도 탁방도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말한 것 같다. 


청와대는 북한 비핵화 6자회담틀을 

5자회담틀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 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이 5자 틀을 거부했다. 

6자회담 의장국이고 유엔 상임 이사 국인 중국이 

6자회담을 깨고 

5자회담에 참여 할 수는 없다. 

6자회담은 5개국 對 1(북한)로 북핵을 

대화로 풀겠다는 틀이다. 

5자회담은중국을 포함한 5개국이 

대북제재에 공조하자는 틀인데 

중국이 이에 참여한다면 중국은 한미일과 공조해 

대북재재를 하겠다는 것과 같고 

이는 중국의 한반도 비핵, 평화안정, 대화로 해결한다는 

대북 3원칙과도 맞지가 않는다. 

러시아도 북한 노동자(추방)문제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나타냈고 중국도 대북 원유공급축소에대해 

북한 일반 주민들이 고통을 겪게돤다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어 

미 중이 이를 두고 협의중에 있지만 북에 치명타를 멕이는 

고강도 제재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핵 6자 대화틀에서 5자 북제재 틀로 

2003년 베이징에서 첫 회담을 시작으로 출발한 

북 비핵 6자회담은 2008년까지 모두 여섯 번의 회담을 했고 

9.19 공동성명과 2.19합의가 있었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중단되지 않았고 북한은 

지난 1월 6일에 4차 핵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유엔 안보리는 핵실험을 할 때마다 

북한 제재안을 통과시키고 국제적인 공조가 이루워졌지만 

중국의 비협조로 크게 효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은 온 세계가 경고했음에도 

4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서 비핵화의 뜻이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냈다. 

이에 대해 홍레이 중국외교부대변인은 

그동안에 있었던 9.19 공동성명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며 

동북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을 재개해야한다고 주장 했다. 


지난 해 연말에 미국의 의지대로 한일간에 

위안부문제가 전격 타결됨에 따라 

한미일 3각 안보 체제가 공고하게 되자 중국은 북한을 

한미일 세력을 방어하는  안보 전략지로 

복원시키겠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북한의 생명줄을 끊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원유 중단과 같은 제재)은 

북핵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보다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이탈해 

미국으로 지나치게 기울 그 때 쓸 수 있는 

“마지막카드”라고 말했다. 

베이징대 국문제연구소 자칭궈교수도 

최근 홍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엄청난 피해를 줄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며 

모든 대북 원조를 중단하면 

더 큰 문제가 일어 날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은 원유공급 완전 중단이 아닌 

일부축소, 무연탄 수입차단, 무역과 건설자재 수출 중단, 

중국관광단 관광중단 등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당장 할(죽일) 수도 있다. 

세컨더리보이콧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기업과 개인 제재, 대북 금융제재) 

성패도 중국이 쥐고 있다. 

정부당국자는 북한 거래 대상의 대부분이 

중국 기업이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 없이는 

대북제재는 성공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정은도 중국이 북한을 극도로 제재해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군 철수와 안보. 닉슨독트린

한국과 미국은 혈맹이다.

 6.25전쟁 때 미국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하기 위해 파병 했고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위해 파병했다. 

하지만 박정희 18년 동안 한미관계는 

친밀과 갈등 불화와 우의의 연속이었다. 

박정희는 공개적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말은 하지 않했다. 

미국은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우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압력을 가하거나 못마땅한 간섭을 해도  

국익을 위해 대통령은 할 말도 자제했다. 

박정희는 민족주의적 자존심이 강했고 

사대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JP 회고). 

한미관계에서 한국에 제일 크게 중압감을 주는 것은 

주한 미군의 철수다. 

1969년 7월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국가는 대미의존(對美依存)을 버리고 

스스로 집단체제(안보)를 수립해야한다”는 

독트린을 발표하고 

이듬해 71년 3월 7사단 병력 2만 명을 본토로 철수시켰다. 

한편 김일성은 자기 생일잔치를 서울에서 하겠다고 했다. 

그 때부터 박정희는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면서 싸우자는 

구호를 내걸고 자주국방태세에 돌입했다. 


1976년 카터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미국대통령에 당선 됐다. 

그리고 공약대로 모든 지상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다. 

미 군수뇌부가 미군철수는 동북아의 전쟁이라고 했지만 

카터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78년 12월에 1개 보병대대 3천400명을 1차로 철수시켰다. 

박대통령은 미국언론들과 인터뷰에서 

미지상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을 더 이상 요청하지 않겠다. 

한국은 이제 군사력에서 북한을 앞서 있다. 중국과 소련의 지원이 없는 

북한의 단독 남침이라면 한국자력으로 격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미국에 보라는듯이)

100년 전에 있었던 신민양요 때 

조선군이 미군함대와 전투를 했던 강화도 

전적지를 복원토록 지시했다. 

박대통령은 79년 6월 방한한 카터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안보문제에 대해 싫은 소리로 공박 했다. 

정상회담은 싸늘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20여일이 지난후 카터는 

북한의 군사력이 훨씬 증강됐다는 이유를 들며 

주한 미 지상군 철군을 중지하겠다고 했다. 

나갈 테면 나가라고 하자 

정작 미국은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지 못했다. 

용미(用美)는 박정희와 JP가 공조했고 

용일(用日)은 JP가 했다고 

김종필은 자서전에서 자화자찬했다. 

시국이 이렇게 어려운 이때 

한국에 

用美策士도 用日策士도 用中策士도, 

그중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쉽다.   


필리핀 수비크 만 기지 미군 재주둔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국토 영유권 분쟁이 가열되는 이때 

필리핀이 미국에 8곳의 군 기지를 허용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1월13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로부터 700km 거리에 있는 

루손섬에 위치한 수비크만 기지는 

베트남 전쟁 때 미 군기지였다. 

1992년 만료 된 미군주둔협정 연장을 

필리핀 의회가 부결시켜서 미군은 철수했다.  

미국은 철수한지 24년이 지난 지금 

수비크 만 해군기지와 크라크 공군기지 등 

태평양과 남중국해 군사기지를 확보하게 됐고 

필리핀은 미군과 필리핀 군과 공동으로 

기지를 사용토록 협정을 맺고 중국을 압박하게 됐다. 

수비크만은 미 군함 100여척이 기항 할 수 있는 규모이며   

8개의 필리핀 미군 기지들은 

한국의 평택 미군 기지와 더불어 

미국이 중국을 둘러 싼  울타리 교두보가 됐다.  


평택기지는 세계 제1의 미군기지 

평택 미군기지는 단일(單一) 미군기지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다. 

여의도의 5.5배이며 

총 부대 면적은 1천467만 7700 평방미터(440여만 평)다. 

기지 내에 건물수는 513개동이고 이중 미군이 287개동, 

한국군이 226개동을 쓰게 된다. 

한국에 있는 모든 미군기지는 2017년까지 

평택 미군이지를 중심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한다. 

철도로 병력 이동이 가능하고 

평택항과 오산 미공군기지와는 20Km(50리)거리에 있어 

유사시 미군 전력 이동이 용이하다고 

군 관계자는 밝힌바 있다(12/13/15). 

현안으로 대두 돼 있는 고고도 미사일(사드)배치도 

평택기지가 유력하다. 

평택기지 계획은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의 합의로 

2004년 8월에 결정됐다.  


38선 초안 만든 딘 러스크 대령(후에 미 국무장관)

1962년 11월 미국에서 

로버트 케네디법무부장관(JFK 대통령 동생)을 만났을 때 

나(김종필)는 처음에 건방진 태도를 보인 케네디 장관을 향해 

“당신네 나라가 우리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분단의 아픔을 안게한 원인을 만들었소”라고 따졌다. 

그가 “그 원인이 무엇이오?”라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38선을 누가 만들었소 

딘 러스크 육군대령이 긋지 않았소 왜 아무 죄 없는 한국을 

반으로 갈라 놓았느냐 말이오 우리를 분단시켜 

(남과 북이)싸우게 만든 것이 바로 미국이오”(JP 회고록). 


다시 말하면 

미국이 한국에 병주(38선)고 약준 것이라고 

케네디 장관에게 항의한 것이다. 

딘 러스크(1909-1994) 대령은 

일본이 항복한 날인 1945년 8월 14일(미국 시간) 

한반도에 38선을 초안한 장본이다. 

그의 회고록(As I Saw It; 내가 본 것)에는 

2차 대전이 끝난 당시 아시아에 배치된 미군의수는 

소수인데다가 최선봉 부대가 한반도에서 

1천km 밖인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었는데 

4년간의 긴 전쟁으로 군대는 지쳐있었다고 했다. 

소련군은 함경북도를 통해 북한에 들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2차 대전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자 

미국과 소련은 서로 더 많은 나라영토를 점령하려 경쟁을 했다. 

미군이 점령한 나라는 미군이 군정을 하고 

소련이 점령한 나라는 소련 관할이 됐기 때문이다. 

대전이 끝나자 소련군은 빠른속도로 북한에 들어왔고 

미군은 오키나와에 있었으니 한반도에 누가 먼저 들어가 

무장 한 채로 있는 일본 패잔병을 무장해제 시키고 항복을 받느냐에 따라 

한반도가 미군정이 되느냐 소련군하에 있게되느냐가 결정 되는 순간이었다. 

소련군은 자동차로 남하 해 내려오기 때문에 

부산까지 일사천리로 점령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배를 타고 부산으로 상륙하고 

다시 자동차로 북상해야 하기 때문에 

미군이 부산에 도착할 시간이면 소련군은 이미 부산까지 내려와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하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미 국무성과 미 군부가 한반도에 대한 회의를 했다. 

이 때 딘 러스크가 한반도 지도를 펴 놓고 

북위 38도선이 한반도 허리를 지나간 것을 알게 되었고 

조선의 수도 서울이 38도선 이남에 있는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무성과 국방성이 이선을 기준해 

소련군은 38도선 이북에서 

미군은 이남에서 일본 패잔병을 

항복(무장해제)시키도록 하자는데 합의를 봤다. 

그리고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와 그 이북에서만 

일본군을 항복(무장해제?)시키고 

그 이남은 미군이 하겠다고 제의를 했는데 

소련은 놀랍게도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당시 소련군은 북한에 들어와 있었고 

미군은 오키나와에 있었기 때문에 

만일 소련이 그 중간지점으로 하자고 고집했으면 

무장해제선이 

38선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을것이고 

딘 러스크(미국은)는  

그렇게 될까봐 염려를 했다고 한다. 


학국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1955년 출판한 회고록에도 

소련이(미국이 38선으로 하자는 제안에)이의를 제기하고 

소련군이 남하하고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북상하면서 

병력이 서로 만나는 거리에다 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다면 

그 선은 지금의 38선이 아니라 

훨씬 남쪽에 그어졌을 것이지만 

북위 38도선을 따라 군부(딘 러스크)가 선을 그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의 옛 수도 서울에서 일본의 항복(무장해제)을 

받을 수있게 됐다“고 했다고했다.  


앗차 소련군이 부산에까지 왔다

만일 소련군이 부산까지 내려와 한반도를 점령했었다면 

한반도는 소련위성국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 북한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38선 이북에 까지 들어온 소련군은 

38선을 봉쇄하고 소련군 대위 김일성 

(당시 33세)을 앞세워 

38선 이북을 공산화 시켰다. 

이런 현상은 독일이 1945년 5월7일 항복하자 

소련은 전쟁 중 자기네들이 점령한 동부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폴랜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부유럽 나라들을 전부 공산화시켰다. 

이 나라들은 1989년 소련이 붕괴되자 

자유를 되찾았지만 북한만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인권이 없는 고립된 나라로 남아 있다. 


(이글은 www.seoulvoice.com과 www.cafe.daum.net/mkchicago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연구원 제465호 20160128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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