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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조일전쟁. 

배꼽아래 북한野談이 더 재미 있다.  


백전 백승한 이순신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에 침입 해 7년 동안이나 

우리강토를 유린 한 지루한 전쟁이었다. 

해전海戰에서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부산으로 

들어오는 왜적을 바다 길목에서 물리쳤고 

스물네 번 싸워 스물네 번 다 승리하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감옥에서나와 마지막 남아 있는 

12척의 거북선을 수선 修繕해 바다로 나가 

왜선 200척과 대적 해 이기고 패잔병이 도주하며 

쏜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1598.11.8). 

세계 해전사(海戰史)에 기록될만한 대첩이다. 


육전 陸戰에서는 

도원수(육해군 참모총장)권율 장군이 있었다. 

권율은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수원 독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했다. 

그리고 지친 말들을 물로 씻겼는데 그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세마대(洗馬臺)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와 왜장 소서행장이 3개월간이나 

점령하고 있던 평양을 탈환 했다. 

신라 말에 마의태자를 도와 국권을 회복하려다 

실패한 이부상서 이 순유(성주 이씨)가 중국으로 망명 해 

철령 이 씨가 됐는데 이여송은 그의 후손으로 5 형제 중 장남이다.

 두 째 네 째 친동생과 4 촌 동생들을 동원 휘하 장군으로 삼고 

조선에 데리고 나왔다. 


권율은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이여송이 평양탈환에 이어 

개성을 회복하고 서울로 진군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여송은 직속부대 2 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개성으로 들어오는 길에 

일본 패잔병의 조총에 맞아 말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 

조선에 나온 것을 후회하며 다시 평양으로 후퇴했다. 

전라도 의병장 김천일은 권율이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서울로 진격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진을 쳤고, 

충청도 의병장 정걸은 수군을 거느리고 한강에서 

권율을 도우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배수진으로 

목책(木柵)을 높이 세우고 변이중이 만든 포차(砲車) 

300 문을 배치하고 군사를 조련하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 주둔해 있던 10만의 일본군은 좌우 두 진으로 

행주산성을 공격해 왔다. 

권율은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면 

명나라 이여송은 싸우지 않고 돌아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 조선은 왜적에게 짓밟힐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적을 섬멸해 꼭 승리해야 한다”고 

크게 외치며 전투 명령을 내렸다. 

권율은 4번이나 적의 공격을 받았지만 

네 번 다 승리했다. 

아낙네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한강 물을 길어다 

목책木柵을 적셔 적병이 불 지르는 것을 막았고,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다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병에 던져 

굴러 떨어져 죽게 했다. 그래서 이곳을 행주산성이라 했다. 

권율은 불과 4천명의 군사로 10만의 적을 물리쳤다. 

권율의 행주산성 승리는 이순신의 노량대첩, 

김시민의 진주 대첩과 나란히 임진왜란을 

우리의 승리로 이끈 3대 대첩의 하나다. 


권율장군의 사위 오성 이항복 대감. 

권율 대감의 이웃집에 의협심 깊고 장난끼 많은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의 집에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가지가 

권율대감의 집 담 위로 뻗어 나와 있었다. 

가을이면 가지에 먹음직스런 단감이 주렁주렁 

가지가 휘도록 달렸다. 

대감집 종들은 감을 맘대로 따갔다. 

감나무 집 청년은 화가 났다. 

어느 날 권율 대감이 사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장지문 틈으로 어떤 녀석이 주먹을 퍽 들이 밀면서 

대감님 이 주먹이 대감님 주먹입니까 제 주먹입니까? 물었다. 

대감은 별 녀석 다 봤다면서 

“이놈아 그것은 네 주먹이지 어째서 내주먹이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옆집 청년은 자기 집 감나무에 달린 감은 

자기 집 것임을 분명히 했다. 

권율 대감은 무남독녀 외딸을 이 청년에게 

시집보내고 장인이 됐다. 

이가 바로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오성 이항복이다. 


오성과 한음은 조선 해학諧謔의 태두

오성 이항복은 한음 이덕형과 친구였고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긴 해학의 거두다. 

어전회의를 할 때에도 오성은 장인인 권율대감을 넌 짓이 

해학적인 농담으로 놀리곤 했는데 

임금은 그럴 때마다 남얼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며 

오성을 칭찬했다. 

옛날에는 대궐에서 일하던 궁녀가 출궁해 

남자를 만나면 두 남녀를 간통죄로 다스렸다. 

도승지(비서실장)로 있는 이항복 대감 집에서 일하는 

남자종이 출궁한 궁녀와 눈이 맞아 두 남녀는 

간통죄로 감옥에 가게 됐다. 

임금은 이항복을 입궐하라고 했다. 

이항복은 자기종의 간통죄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일부러 늦게 입궐했다. 

임금은 늦은 까닭을 물었다. 

이 항복은 입궐하는 길에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 있어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가 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빈대와 모기에 대한 만담을 하는데 

그 얘기를 듣다 늦었다면서 거기서 들은 애기를 

임금에게 했다. 

빈대는 본래 남의 피를 빨아먹기만 하고 항문이 없어 

배설을 못하는 미물인데 마침 한 빈대가 배가 터지도록 

피를 빨아먹고 “내배 터지면 나 죽 는다” 면서 

옆에 있는 모기더러 “네가 갖고 있는 침으로 내 배를 찔러 

구멍을 뚫어 달라”고 애원을 하자 

모기는 “너 큰일 날 소리 하는구나 도승지 이항복의 남자 종이 

본래부터 뚫려있던 배꼽아래 출궁한 궁녀의 구멍을 뚫었다고 

감옥에 가게 됐는데 본시 있지도 않던 구멍을 

네 배에 뚫으면 내 죄가 훨씬 더 무거울 텐데 

내가 어떻게 네 배에 구멍을 뚫겠느냐 

나를 죽일 소리일랑 아예 하지도 말라”며 

모기는 활짝 날라 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이항복은 선조 임금에게 이야기가 하도 자미 있어 

다 듣고 오느라 지체 되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임금은 경의 이야기는 동방삭(東方朔)의 해학보다 

재미있다며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경의 종 간통죄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것 아니냐며 

종의 죄를 사면해 주었다. 

재미있는 야담은 임금도 좋아하고 

백성도 좋아한다.


야담은 북한 공산 사회에서도 인기가 있다.

북한하면 경직 된 사회로 낭만도 해학도 농담도 없이 

공산독재獨裁에 시달리며 일만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2000년 10월에 남한 출판사 현암사가 

북한 ‘사회과학원’과 협약해서 

‘야담삼천리’란 책을 엮어 남과 북이 동시 출간했다. 

철의 장막에 쌓였던 남과 북의 출판사가 

서로 협력했다는 데 뜻이 있고 

북한에도 야담이 있다는 것과 

어떤 야담인지 호기심도 풀리게 했다. 

80년대 중반에서부터 남한에서도 북한에서 나오는 

공산 서적을 볼 수는 있었지만 

그 보다는 남과 북이 합작해 출판한 책이 

야담삼천리가 첫 번째이므로 통일에 일조 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남한에서 출간되는 야담보다 품이 있게 썼고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교육적으로 평론을 몇자씩 곁드린 것이 

또한 남한 책과 다르고 야하지 않고 재미있게 썼다.

 ‘야담삼철리’가 야담이기 때문에 정부 당국자들도 

정치색이나 사상적인 색이 없으므로 야담책을 부담 없이 

합작을 허가했을 것이다. 

남한의 현암사는 실감을 내기 위해 북한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꾸지 않고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고 했다. 

야담삼철리는 1부 원수 갚은 두 처녀,

2부 밤묘기를 미리 익힌 처녀, 3부 기이한 인연, 

4부 금호 림교리 등 4 부로 구성되어 있고 256 쪽에 

120개의 야담이 실려 있다. 

이중 1부에 있는 ‘늙은 과부의 판결’ 이란 대목의 

일부를 소개 해 본다. 

이 책이 북한에서 처음 출판된 것은 

1951년이라고 한다. 6.25 동란이 일어난 

이듬해이었으니 난리통이었는데 피난에 쪼든 마음을 

잠시나마 이야기로 위로하려 했는지 

북한은 이 책을 출판 했다.  


늙은 기생의 명 판결 

<중략> 김진사가 먼저 “뭐니뭐니 해도 

계집이 좋아하는 것이야 사내의 쟁기가 굵직한 것이지”라고 하자 

리생원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만두게. 계집이 좋아하는건 잘 놀아주는 것일세. 

사내의 쟁기가 크건 작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리생원이 한사코 우겨대니 김진사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중략> “이것 보우. 누가 옳은지 몇마디 말로 좀 갈라주우, 

사내가 계집이 무얼 좋아 하는지 알수가 있나” 

<중략> 김진사와 리생원이 실갱이질을 하는 

리유를 들은 기생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일이라면 쇤네가 자신 있습니다. 

제가 겪을 대로 겪은 일이니 단 한마디로 여쭐 수 있습니다” 

기생은 리생원을  돌아보며 넌지시 말하였다.


<중략> “사내의 굵직한 쟁기가 음문에 쑥 들어올라치면 

녀자의 마음은 둥둥 뜨기 마련이랍니다.

나리께서는 밤재미의 여섯 가지 보배를 모르시는 가부죠? 

그걸 녀자들은 사내의 륙보六寶라고 한답니다” 

기생은 륙보를 내리 외웠다.

“우로 처든 우뚝이 하늘보기 첫째요, 

화롯불에 데웠나 뜨끈이가 둘째고, 

송이버섯 큰 방망이 셋째며, 

아홉 치만 되어라 긴장대기 넷째고, 

보리방아 절구질 힘껏 하기 다섯째, 

겨울밤아 새여라 오래 끌기 여섯째. 

<참말이지 큰 대가리를 깊숙이 박아 넣고 오래 노는 재미란 

천만 냥을 주어도 못 사지요> 

<중략> 리생원과 김진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 모양을 본 기생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쇤네에게 늘 이런 송사를 맡기실 작정이면 

방금 제가 여쭌 말을 꼭 그대로 법조문에 올려주세요” 

기생의 말에 셋은 그만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자는 말한다. 

앞서의 판결이 리치를 따져서 한 것이라면 

늙은 기생의 판결은 실정을 꿰들고 한 것이다. 

세상에는 제 고집만 내세우면서 저만 잘한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실정에 밝고 사리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게 어찌 비하겠는가. 

여기 까지가 야담 삼천리에 있는 한 대목 이야기다. 

옛날 이조시대에는 야담과 잡기가 매우 성했었다고 한다. 

궁궐에서부터 시작해서 언문(한글)으로 된 오색 야담이 

살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퍼져 고달픈 삶을 달랬다. 

글 모르는 사람들은 글 아는 사람이 야담잡기를 읽으면 

크게 소리 내 읽으라면서 둘러앉아 들었다고 한다.


다시 임진왜란 일본 장수 金忠善 이야기

대구광역시 달서군 가창면 우륵동洞에 

일본 관광객들이 매년 1천여 명씩이나 찾아왔다. 

이 곳은 일본의 ‘사야가’라는 장수가 임진왜란 때 

조선군에 투항하여 1624년 72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살던 곳이다. 이가 바로 선조 임금으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은 김해 김 씨의 모하당 김충선이다. 

우륵동은 그가 녹동(사슴이 노는 동네)이란 

글방을 세워 글을 가르친 곳이며 지금은 모하당 후손들의 

집성촌이 됐다. 일본장수 가등정정의 좌(左) 선봉장으로 

조선 땅에 상륙한 사야가(沙也可)는 

조선 농부 일가족이 피란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감동했다. 

농부는 늙은 노모를 등에 업고 아내는 피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산길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저렇게 어질고 착한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밤을 고민하다 휘하 장졸 500명을 이끌고 

전투 한번 하지도 않은 채 경상도 병마절도사 의병장 

박진에게 투항하여 조선 의병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 의병과 같이 동래 양산 기장 등에서 왜군들과 싸워 

한 달 동안에 무려 여 덜번이나 이기는 큰 공을 세웠다. 

조선 의병장 박진은 그의 충정과 무훈을 

선조 임금에게 알리었는데 선조 임금은 

사야가를 친히 조정으로 불러 

그의 일본 이름의 모래 사(沙)를 따서 

일본의 모래가 현해탄 바다를 건너와 금(金)이 되었다면서 

성을 김해 김가로 이름은 충성 충(忠)자를 부쳐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는 조총鳥銃 만드는 기술과 화약 만드는 기술을 

조선군에게 가르쳐 총포부대를 창설하고 

의병장 곽재우와 연합하여 경주에서 싸워 승리하고 

정유재난(진주 논개가 죽은 전투, 논개는 기생을 가장한 의병대장의 첩) 때는 

명나라 원군과 같이 울산에서 

일본 대장 가등의 휘하 진지를 섬멸시키기도 했다. 

김 충선은 1600년에 진주목사의 딸을 아내로 맞아 

우륵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그 후에도 김 충선은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는 등 

북방 경비에 10년씩이나 자청해 변방을 지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기도 했다. 

김 충선이 조선으로 귀순한 이유는 풍신수길이 

일본을 천하통일할 때 이에 반기를 들었던 

장수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풍신수길에게 정복당한 철포부대에서 

항전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조선의 유교와 문화를 동경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조일 전쟁 

경상도 병마절도사에게 보낸 

김충선의 글 마지막 부분에는

‘저의소원은 조선의 예의 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서 예의의 나라, 

성인의 나라 조선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 입니다’ 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이조실록과 본인 자신이 쓴 모하당 일기에 

상세히 기록되어있다고한다.

이차대전 때까지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 충선은 무시되어 왔지만 4백년이 지난 지금 

그는 평화론자로 다시 각광을 받으며 연구하는 단체도 생기고 

그의 사상과 행적을 일본의 매스컴이 특집으로 보도 해 

많이 알려졌으며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있다고한다. 

왜병이 침략해 7년 동아이나 

우리 국토를 유린하며 난동을 부렸으나 

일본은 승리하지 못했고 

풍신수길이 죽자 일본군은 사기를 잃고 회군해  

임진왜란은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났다. 

투항하여 조선을 도운 왜병이 1만 명이나 되었다.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한다.


(이 글은 www.seoulvoice.com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 난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20160519 제480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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