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2 20:19
깡촌 길 가고 싶다 평택 방여울 두고 온 통학 10릿길
깡촌 길. 가고 싶다. 평택 방여울
어려서 다닌 통학길이 10리나 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고간 산과 들꼴 길이다. 산을 북쪽으로 하나 넘으면 용인 땅이고 서쪽으로 하나 넘으면 안성 땅으로 관할은 평택군에 위치한 적막한 동네다. 해 짧은 겨울 방과 후 캄캄한 산길을 건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도깨비 나올까 무서워 뛰어다니기도 했다. 철없을 때 걸어 다니던 그 길은 꿈을 키워온 오솔길이다. 촌에는 시계도 없었다. 해가는 것을 보고 아침 점신저녁을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맞추며 사는 곳이다. 빨간 우체통이 있고 기차 정거장이 있는 산 넘어 읍내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유일하게 정오 시간을 알리는 시계였다. 그것도 날이 화창한 날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모기소리처럼 들렸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들에서 논매고 밭 매는 일꾼들은 아낙네들이 점심을 언제 내오나 동네 쪽을 바라본다. 동네 앞에는 교실이 두개 있는 시골학교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학교를 강습소라고 불렀다. 큰 마루방이 두 개가 있는 양철지붕으로 돼있고 유리창이 달려 있다. 유리창과 양철지붕을 한 집은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운동장에는 철봉 틀도 있었다. 학교 옆에는 작은 내깔이 있어 장마가 지면 물이 넘쳐나기도 했고 뚝에는 아카시아 꽃도 피고 미루나무도 줄서 있었다. 강습소라고 부르던 두칸짜리 학교를 가운데 두고 아랫말 간뎃말(가운데에 있는 마을의 사투리) 큰말에 8호나 되는 집들은 다 초가집이었다. 언제 서립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필경 동네 구장이 주동해 목매한 문맹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한 것일 것이다. 동네 구장은 큰 어른이었고 세도가 당당했다. 양복 입은 면서기와 제복에 칼 찬 순사들이 가끔 구장 집에 들르기도 했다. 해방되기 훨씬 이전 제정 때는 국민하교(초등)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이 이 강습소에서 공부를 했다. 일본어로 된 책을 국어라고 가르쳤고 한글로 된 조선어교본을 가르쳤다. 여기서 1년 공부를 하고 10리나 되는 주재소(파출소)와 면사무소가 있고 기차정거장도 있고 우체국도 있는 곳에 국민하교가 있었는데 그 곳으로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을 보러 온 아이들은 한국나이로 10살 먹은 애들이 제일 많았다. 학교 직원실 밖에서 줄을 서 있다가 순서가 되면 시험관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가서 부동자세를 하고 선다. 양복 입은 일본 선생이 산수를 할 줄 아는지, 일본어를 아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본 말로 질문을 했다. 선생은 숫자가 쓰여져 있는 장기 쪽만한 나무토막을 손에 들면 거기에 쓰여진 아라비아 숫자를 일본 말로 알아맞히고 책이나 연필을 들면 일본말로 책이다 연필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등이었다. 시험을 치고 며칠 지나면 합격증이 구장 집으로 온다. 합격증을 받은 아이는 학교에 가고 못 받은 아이는 또 1년 기다렸다가 다시 시험을 봐야 학교에 갈수 있었다. 새로 학교에 들어온 애들은 전부 한국 애들이기 때문에 일본말을 잘 듣지도 하지도 못해서 한국인 선생님이 담임이고 한국말로 가르쳤다. 학년이 올라가면 담임선생이 일본 사람일 때도 있고 한국 사람일 때도 있지만 산수 국어 도화 수신 음악 등 모든 교과서는 일본어였고 수업도 일본 말로 했다. 교문에 들어가면 조선말을 하면 안 된다.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훈시도 다 일본 말로 하고 출석도 일본식으로 바꾼 일본 이름으로 불렀다. 친구들과 이야기도 할 때도 일본 말로 대화를 했다. 애들이 잘못하면 벌도서고 회초리로 맞기도 했고 조선 말했다고 매도 맞았다. 직원실로 불려가 두 손을 만 세 부를 때처럼 위로 올린 채 서 있기 도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방과 후 교문을 나오면 전부 한국말을 했다.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방과 후에도 놀 시간이 많다. 그래서 집으로 곧 돌아가지 않고 가게가 있는 장터로 가서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렸다. 그 때 중국집이 하나 일본사람이 하는 잡화상회가 몇 개 있었다. 간판도 없는 중국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우동 국물 냄새가 나서 침이 나오고 더 곺아 지기도 했다. 한 키나 되는 빨간 색으로 된 편지 넣는 우체통에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문방구에 가서 딱지 그림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10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온다. 등교 시간은 9시로 동네아이들이 일찍 한데 모여 떼를 지어 학교로 간다. 방과 후 집으로 올 때는 학년에 따라 하학시간이 달라서 한 반애들 두세 명이 따로 집으로 오게 된다. 어떤 날은 교실 청소 당번이 되면 청소를 끝내고 나면 혼자인 때도 있다. 10리나 되는 길을 아침에 갔다 다시 되짚어 올 때는 지루 할 때도 많다. 여름에는 집에 오자마자 책보는 집에 던지고 내깔에 가서 멱 감고 붕어 송사리를 잡기도 하고 원두막에 가기도 한다. 소 풀 띠끼러 풀이 많은 오솔길이나 묵은 밭이나 논둑길로 소를 몰고 간다. 시골 논 밭 사잇길은 일꾼들이 농사일을 하기위해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다니기 때문에 들길이나 밭길이나 산길이 잘 트여 있다. 어떤 날은 읍내에 영화나 서커스단이 들어오는 날엔 저녁을 일찍 먹고 영화 보러 가기도 했다. 역전에서 무료영화가 가끔 있었는데 무성(無聲)영화 시대여서 영화스크린에 나오는 화면을 보고 변사(辯士)가 대신 말을 했다. 그러면 그 변사가 한 말을 외우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겨울엔 연 날리고 썰매도 타고 새답치기 만들어 새도 잡고 소나무 깍아서 만든 뺑이(팽이)도 치고 딱지치고 구슬치기도 했다. 눈사람도 만들기고 했다. 봄이 되면 어리장사(방물)가 딸랭이 흔들며 동네로 들어오고 엿장수는 가위질 쇳소리 내며 온다. 마루 밑에 굴러다니던 헌 고무신 갖다 주고 엿도 사먹는다. 방아 찧는 발동기 소리 나면 얘들은 발동기 구경하러 모인다. 발동기는 피스톤이 하나있는 1기통이고 석유로 움직인다. 겨울에는 뻥튀기 아저씨가 뻥튀기 기계를 지게에지고 오면 동네 애들 어머니가 가져온 강냉이를 기계에 넣고 장작불을 피우고 뻥튀기를 해준다. 애들은 좋아하며 한 주먹씩 얻어먹는다. 봄이 오면 애들은 기지개를 피며 쥐불을 논는다. 사랑방에서 동네 애들이 모여 옛날 귀신 나오는 얘기도 한다. 밤중에 길을 가는데 잘 곳이 없어 혜매이는데 멀리서 불빛이 깜빡이어서 찾아갔더니 오두막집이었었고 주인을 찾았더니 산발한 여자 귀신이 피를 흘리며 나왔다는 둥 귀신 얘기를 듣고 집으로 올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높은 하늘엔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 가기도 한다. 기러기는 이 찬바람에 하늘 높은 곳 날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명일 때면 새 옷 입고 자랑하고 다니던 동네 계집애들, 줄넘기 술래잡기하던 계집애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종알대며 남의 흉보던 계집애들 이제는 많이 변해 있겠지! 만나면 옛날얘기 할 것도 많은데. 들과 산 원두 막가던 길, 소 띠끼러 다니던 길, 동네 우물가든 길들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꿈을 키운 고향이 있다.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은 언제나 가고 싶고 그립다. 그 곳은 나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철없던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다 추억이고 그 것들은 다 그 곳에 있다. 촌 아주 벽촌에서 자란 촌 떼기가 미국에 와서 큰 도시에 살고 있다. 벽촌 10리길을 오갈 때는 이런 미국 도시에 와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추억이 있고 꿈을 키웠던 곳, 이제는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쉬운 곳, 돌아가도 옛날 같지가 않은 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짝사랑하면서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할 곳이다. 아무리 짝사랑해도 억울하지 않은 그 곳 그 길을 한 번 더 걷고 싶다.
가을엔 한국에 가고 싶다. 코스모스 피는 곳
무덥던 한 여름 햇볕 내려 쪼이고 하늘에선 뭉게구름 일고 천둥 치더니 어느새 장마철도 끝이 나고 이슬 내리는 늦여름 봉선화 씨 떨어질 때 여름내 잎만 무성하던 코스모스가 꽃을 피운다 장마 비 맞으며 길고 덥던 그리고 화창한 여름날들 다 보내고 이제 와 꽃을 피운다. 며칠 후엔 서리도 내릴 것인데 꽃 피우고 씨 만들고 겨울 준비에 바쁘겠다. 유난히도 따가운 가을 햇볕에 꿀 따러 온 벌도 이슬 내리고 서리 내릴까 분주하다 장마 끝 들에서는 벼 이삭 머리 숙이고 코스모스 핀다. 내가 살던 시골엔 아침 햇살 퍼치는 이른 아침에 동네 애들 이슬 차며 소리 길 버섯 따러간다 송이버섯 갓 버섯 청 버섯 딴다 소쿠리에 반쯤만 찬 버섯 흙 떨고 다듬어서 묵은 된장햇감자 솔 파 썰어 넣고 묵은 지렁으로 간 쳐서 뚝배기에 된장국 끓인다. 김장할 무 배추는 아직도 밭에 있는데 아람 분 밤은 낙엽위에 떨어진다 담 넘어 장감도 가을 인양 앙상한 가지에 달려 있다 가을이면 정든 고국에 가고 싶다 거기도 여기처럼 단풍이 한참일 텐데
가을, 씨앗은 가을부터 봄을 기다리며 잠에 든다.
한 아름 가을이 안 마당에 왔나 했더니 어느새 가을은 하늘에도 가득 하다 기러기 날아가는 하늘은 높고 창창하고 푸른데 산골짜기 개천엔 마음도 생각도 없이 무심한 낙엽이 떨어진다 어느 새 한입 두입 늘어간다 저 넘어 산 골짝에 떨어져 여기까지 흘러 왔왔다 얼마나 멀리 또 아래로 가떠 내려 갈까 여름 내내 그렇게 푸르고 싱싱하던 잎 가을엔 낙엽 되어 산 골짝 물에 떨어지고 아래로 아래로 떠나려 간다. 높은 하늘을 높고도 맑다 기러기는 하늘 끝까지 가는 가보다 넓고 높은 하늘 끝으로 간다. 기러기 하늘 끝에 날고 낙엽은 물 따라 아래로 또 아래로 간다. 실개천에 흐르는 물은 유난히도 맑은데 여름내 놀던 송사리 떼 그렇게도 쏜 살 같이 오르고 내리더니 이 제는 여름 같지가 않은 가보다 늦가을 살얼음 얼고 쓸쓸한데 아직도 할 일이 남았나보다 조용히 조용히 오르고 내리기만 한다. 안 마당에 흙 내 나 한 아름 가을이 왔나 했더니 가을은 어느새 산에도 가득 하다 녹음이 우거진 숲 새가 둥지 틀고 새끼치고 뻑 국이 울던 숲 거기에도 빨갛게 노랗게 산에도 들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단풍잎 바람에 흔들리고 낙엽은 더 짙게 물든다 텃밭에 흙 내 나 한 아름 가을이 왔나 했더니 어느새 들에도 가을이 가득 했다 밭고랑 빛바랜 옥수수대 듬성듬성 서 있는데 참새 보던 정애비는 쓸쓸하다 무 배추 걷어 간 밭고랑엔 우거지 무청만 있다 가을은 모든 생명이 겨울 준비에 분주하다.그리고 잠에 들며 봄을 기다린다 씨 떨어트리기 위해 그렇게 긴긴 여름 뙤약볕에 서 있었나보다 씨 떨어지니 단풍이 든다 이는 가을에만 있는 일이고 땅에 떨어진 씨는 봄을 기다리며 잠에 든다(이 칼럼은 뉴욕에만. 시카고와 엘에이는 휴간).
한국민속 연구원 문경문학회 남송 차락우 www.seoulvoice.com
이 칼럼은 매주 목요일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