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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최순실 검찰조서와 신문기사 증거에서 배제. 

최태민과 전두환의 악연. 경제대통령은 자네야, 전두환


헌재, 최순실의 검사조서, 언론기사 증거무효


헌법재판소가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한 검찰의 신문조서를 

인정하지 않고 증거 무효화 시켰다.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검찰 신문조서와 

업무수첩(17개 중) 일부와 

영상 녹화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조서는 증거로 채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김승연 한화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의 조서도 채택했다. 

헌재 강일원 주심은 검찰 조서중에서 적법성이 확실한(담보되는)

경우에 대해서 만 증거로 채택했다고 말했다. 

최순실은 헌재 제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변호사 입회 아래 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서명 날인했느냐"는 

국회(소추인)측 질문에 "검찰 조사가 독일에서 오자마자 정신없이 이뤄져 

제대로 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며 

"특검도 검찰도 너무 강압적"이었다며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하려는 의지가 있나. 사람이 죽을 지경이다"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검찰과 특검이 최순실의 소유로 지목한 태블릿PC와 

관련해서 수사기관이 작성한 목록에 대해서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또 언론이 보도한 기사내용에 대해서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 곁을 떠나려했다. 대통령이 혼자 계시고 나도 혼자


최순실은 헌법재판소 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저는)정권이 교체 될 때마다 세무조사도 많이 받고 해서 

항상 박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에게서 멀리 떠나겠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고 실질적으로 그러려고 했다”며 떠나지 못한 이유를 

“박 대통령이 혼자 계시고, 저도 혼자였기 때문”이라며 

“독일에 이주하려고 결심했는데 마지막으로 지켜드리고 도와드릴 게 

있나 해서 그런 거지, 어떤 사익을 취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은 “증인이 없으면 박 대통령이 아무 것도 못해서 

곁에 두려 했는가”란 질문엔 “그건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박근혜가 의원시절 

‘최씨가 말하는 태도 때문에 (박근혜 의원에게)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좀 여성 스럽지 않게 딱딱 거리는 말투 때문에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며 말투 때문에 빚어진 오해라고 했다. 

또 “박 대통령에게 공손한 말씨와 태도로 했느냐”는 질문엔 

“네”라고 답했다. 

최씨는 박 대통령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면서 “그렇게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최순실은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서는 

의견을 보낸 적 있다”고 인정했다

(2년간 문자와 통화 2092번으로 확인, 하루에 2-3번 꼴). 


최씨는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부탁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했다. 

자신이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한 사실도 

박 대통령에게 말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정유라가 승마 선수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말한 적 있느냐”는 질문엔 

“말한 적 없지만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박 대통령과 돈거래나 채무 관계, 동업 여부나 

‘경제 공동체’ 논란에 대해 “그런 것 없다”고 모두 부인했다. 

최씨는 정호성·안봉근·이재만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국무회의 안건을 지시하는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적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세간에선 박 대통령에게 증인이 정책 관련 지시를 한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건 말도 안 된다. 

난 민간인이고 각 분야를 다 알지도 못한다”며 

“대통령이 정치 생활을 오래 했는데 그런 나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는 너무 왜곡된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또 

“대통령이 국가를 움직이는 철학을 분명히 갖고계셨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과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1998 년 대구달성군 보궐선거 때라며 전 남편인 정윤회씨는 

당시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이었고 했다. 

그 때 정윤회 비서실장이 

청와대 십상시(내시) 이재만(51),전 총무비서거관(구속) 

정호성(48) 전 부속비서관(구속) 등을 직접 뽑았다


최순실은  자신과 정 전 비서관이 이메일을 공유하며 

매일 국정 관련 의견을 나눈 데 대해 

“박 대통령은 직접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폭로된 ‘십상시 문건’에서 

전 남편 정윤회씨가 서열 1위, 최씨가 2위, 대통령이 3위로 

나타난 데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최씨가 청와대에 주말마다 들어가 식사를 하고 

‘문고리 3인방’ 등과 회의를 했다는 보도와 관련 해 최씨는 

“매주 청와대에 들어갔느냐”는 질문엔 아니라고 했으며, 

“왜 들어갔느냐”는 질문엔 “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옷을 챙겨주는 일 등“사적인 문제”라고만 했다

(이상 출처 조선일보)

  

박대통령과는 40년 지기. 혼자된 처지. 끝까지 충성 다하려 


최순실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에서 

최씨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 줬다고 했는데, 

어떤 도움을 줬느냐"는 국회(소추인)측 변호사의 질문에 

“5공 전두환 정권 시절에 박 대통령이 많이 핍박을 당했는데 

그때 굉장히 마음을 힘들게 가지셔서 우리 가택에서 계셨던 인연으로 

그때 많은 위로를 해드린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보궐선거 나갈 때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유라 아빠 정윤회씨가 도와 줬다”며 

“제가 박 대통령 곁에서 떠나지 못했던 이유도 

본인이 필요한 개인적인 일을 해주실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 “나름대로는 충인(忠人)으로 남고자 했는데,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한 마음”이라며 흐느꼈다. 

최순실은 박근혜가 1998년 보궐선거에 나오기 3년 전인 

1995년에 정윤회와 재혼 했다. 두사람이 다 재혼이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구 보궐선거. 2억 5천 만 원.


박근혜양은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한나라당 원내 총무로 있던 

서청원의원(8선)이 후보로 추천 공천했다. 

최순실의 친어머니 임선아(최태민의 6번째 마지막 부인, 사망)씨가 

1998년 보궐 선거 때 돈 보따리를 싸들고 대구로 내려가 

박근혜 후보를 도왔는데 17년간 최태민 일가에서 일했던 

김씨 운전사는 임선아씨가 우리 딸 넷하고 나까지 합쳐 

한사람 당 5 천만 원 씩 2억 5천 만 원을 나누어 가지고 

대구에 내려 가라 말해 임씨와 최순실씨와 함께 돈 가방을 싣고 

박근혜양이 살던 달성군 대백 아파트멘트 105동 202호실로 

내려갔다 고 말했다. 김 운전사는 대구 대백 아파트에는 

임선아씨와 순득(순실 언니)이네 있던 가정주부와 

박근혜 후보밖에 없었다며 임선아씨는 박근혜의 말동무였다고 했다. 


전두환과 최태민의 악연. 삼청교육대


10.26 사건 당시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 됐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재규와 차지철의 사이가 나빳던 이유중 하나가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인 박근혜씨를 둘러싼 힘 겨루기였으며 

최태민 목사 문제였다고 밝혔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가 재벌들을 불러 

꽤 많은 돈을 모았는데 차지철 청와대 실장이 

최태민의 청와대 출입을 방조하고 있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당시 박근혜 영애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재규를 많이 비난했는데 

자기가(최태민과)하는 일에 (김재규)가 감시하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한다고  박대통령에게도 보고 했으니라고— 

김계원은 말했다(2007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육영수여사가 1974년에 살해된 후 최태민은 3번에 걸쳐 

“영애가 여왕이 될 것”이라며 애절한 편지로 

어머니를 읺고 슬픔에 잠겨 있는 박근혜에게 접근하면서 

청와대를 출입했고 구국봉사단 총재자리까지 양보하고 

이를 기화로 재벌들로부터 큰돈을 모았다. 

그랬으니 정보부장 김재규가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그러자 10.26 사건이 터졌고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자 

최태민을 삼청교육대에 보냈다. 

최태민의 5번째 부인에게서 출생한 최순실의 이복오빠 

최재석(64)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1/12/17)에서 

자기 아버지(최태민)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 테 삼청교육대 일로 

당했기 때문에 복수심이 생겼다며 

그래서 (전두환에게 압박받는)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그러자면 1조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돈을 모았다고 

아버지가 자기에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아버지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후 R호텔 사우나에서 나한테 

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건  무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5공 시절 3허(許 씨 3인방)중 한사람인 허화평 전의원은 

최태민이 생애 중 가장 성공적인 사기를 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태민 목사가 현몽(現夢)을 내세워 박근혜에게 

접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3번의 편지에서 내가 꿈에 육영수여사를 만나서 

이런 저런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허화평 전의원은 10.26직후 최태민 목사가 횡령사기혐의로 

조사를 받고 강원도에 격리(삼청교육대)됐던 상황에 대해서는 

조사에서 몇 억 원이 나왔다며 사기로 이득을 취한 것이라고 했다. 

온갖 사람들 여자관계를 중안정보부가 다 수집했다고 했다. 

그리고 허화평은 청와대에서 나온 후에 이순자영부인께 

최태민이 어찌되었는지 물었더니 박근혜양이 새마을 봉사단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을 두 번 한 적이 있다고 해요라고 

했다고 한다(11월10일 교차로 참작). 

전두환의 회고록이 곧 출만 된다고 한다.   


5공 시대 향수. 최저 범죄율. 중산층 70%.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추징금 미납으로 29만원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온갖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제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하도 수상한 이 시절에 뜯이 있다하겠다. 


1.야간통행금지 해제-야간통행금지는 

밤12시부터 새벽5시까지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불문하고 

경찰이 잡아갔기 때문에 이시간은 모든 사업과 산업 생산이 죽어 있었다. 

생산이 없는 5시간을 과감하게 활성화 시켰다. 

2.칼러 tv 보급-칼러tv를 보급해 국민들이 여가생활을 즐기게 했다. 

패션과 디자인 tv 문화 등 광고가 활성화 돼 경쟁하는 시대를 열었다. 

3.사교육폐지- 공교육을 중시하고 사교육을 중지시켰다. 가나한 집 

자식들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학교 가는 길을 열어 희망을 주었다. 

4,탁월한 대북정책-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버마의 아웅산 사건

을 일으키는 등 북한의 도발이 심해지자 

대북강경(전쟁)책을 주장하는 군 지휘관들도 있었지만 

친북국가들을 상대로 아웅산 테러를 만행으로 규정하고 

미얀마 등 많은 국가들을 설득해 북한과 외교를 단절하시키는 등 

북한 고립화에 성공했다. 북한 고립화는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시작됐다. 

5,제2석유파동을 극복하고 물가 안정-5공화국 출범당시 

물가 상승률이 21.4%였던 것을 1년 만에 7.2%로 하락시켰다(1981). 

1987년에는 3.0%까지 내려갔으며 경제가 안정 됐다. 

탁월한 경제 관료들을 발탁 등용하였다. 당시 전두환은 

밤을 새워가며 개인강사 김재익(아운산 폭파 때 사망)과 함께 경제공부를 했다. 

기업가들의 담합해위가 일어나면 탱크로 밀어버리겠다며 

압박하며 경제를 안정시켰다. 

6.역대 최고의 성장이룩-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야’라고 했던 이 말도 유명하다. 

전두환이 취임한 1980년에 1.5% 적자 성장이었던 것을 

1년 만에 6.2%로 상승시켰고 1983년에는10.85%까지 고속 상승 시켰다. 

이렇게 되자 미국 예일 대학 대학원생들이 

그 비결을 알아보겠다고 찾아오기 도 했다. 


3대 경제목표 한꺼번에 달성한 전두환

1987년 미국 월스트리트wsj는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불가사의한 인물이라며 재임기간에 경제 성장 물가안정  

국제무역수지개선이라는 3대 경제목표를 한꺼번에 달성한 

사람이라고 보도 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도 2,300달러를 달성 하게 되었다. 

또한 수출입도 1986년을 고비로 경상수지가 사상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됨으로써 86년에는 46.2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나타내으며 임기 말인 1986-88년에는 3저 호황을 맞았다. 

전 국민의 70%가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며 삶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1988년 당시의 가계 저축율 24,3%를 아직도 깨지 못하고 있다. 

이때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을 육성한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발전의 거름이 되었다. 

7.역대최고의 치안 율 90% 달성-삼청교육대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강력범죄도 줄었다. 최저범죄율도 전 세계 모범이었다. 

8 체감상(體感上) 대학 등록금 최하-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일하면 

일당이 5-7 만원이었는데, 그때는 한 학기 등록금이 70만 원을 웃 돌았는 데, 

한 열흘 일하면 등록금을 벌었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대학교 

등록금은 보통 오른 게 아니에요. 이는 한 아르바이생의 예다. 


이외에도 국민의료보험 확대, 최저 임금제 도입, 한미관계개선, 

최초로 일본에게 사과 받은 것, 86년 아시안 게임 성공, 

88 올림픽 유치 등이 다 성공적이었고 야구 등을 칼러로 중계하는 등  

스포츠도 크게 장려해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했다. 


해방 후 70동안 경제 최고 최호황기가 5공 때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하면 5공의 향수가 있고 

데모하면 대학가의 화약연기, 5공을 떠올리고 있다. 


(이 글은 www.seoulvoice.com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문학회 난에도 있음) 

<한국 민속 연구원 제514호 20170119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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