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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팔자

2014.02.27 16:11

남송 조회 수:1868


여자 팔자 시간 문제. 한국판 신드레라                   


이 조 때 궐내에는 약 600명이나 되는 궁녀들이 항상 있었다. 


임명장(궁녀증)을 소지하고 일하는 여자들을 내명부(內命婦)라 했고 

외(外)명부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는 고관과 종친의 부인들에게 

남편 벼슬에 준해 작위를 주었는데 이들을 외명부라 했다. 


내명부는 임금의 정실인 중전이 다스리었으며 임금은 간섭하지 않았다. 

궁녀를 궁관(宮官) 또는 나인이라고 했으며 

직급은 종9품부터 정5품까지 있었다. 

궁녀로 제일 높은 직급은 5품이고 상궁이 정 5품이다. 

후궁들의 직급은 1품에서 4 품까지 있는데 궁녀가 임금과 합 궁하지 않으면 

4품 이상의 벼슬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후궁도 임금을 위해서 일하는 궁녀이었고 직급이 있었다. 


왕손을 얻기 위한 씨받이, 임금을 즐겁게 하는 기쁨이, 이쁜이, 아양이등도 

임금님 맘에 들면 후궁이 되어 직급을 받았다. 

후궁으로 승진하면 5 품인 상궁과 9품까지의 나인들의 시중을 받게 된다. 


금 혼령을 내리고 후궁을 간택하기도 했다. 

서울 변두리 구파 발이란 촌에 최씨 성을 가진 가난한 집에 효자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서 초근 목피로 연명하면서도 

아들은 막걸리를 담가 아버지에게 드리곤 했다. 

아들은 아버지 친구 안씨를 모셔다 술친구가 되도록 했다. 

안씨도 가난한 지관이었는데 술을 얻어먹을 때마다 최씨 아들에게 

자네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묘 자리는 봐 주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안씨는 약속대로 죽은 최씨의 묘 자리를 정해주면서 

이 묘 자리는 내가 봐 두었던 내 자리인데 자네 아버지에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 아들은 사양했지만 안씨는 묘 자리는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며 

자네 아버지 것이라고 했다. 


장사를 지내고 안씨는 최 씨아들에게 한양으로 이사 갈 것을 권했다. 

아들은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외지에 가서 어떻게 살겠냐 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네는 한양에 가야 살 길이 있다고 했다. 

아들은 어린 딸 둘을 데리고 한양으로 왔는데 갈곳이 없었다. 


다행히도 어느 부자 집 양반 댁에서 일꾼으로 일을 하면 

방 하나를 주고 입은 먹여 주겠다고 해서 그 집의 머슴이 됐다.

 딸들이 장성하니 단칸방이 너무 옹색하고 불편해하던 차에 

일이 잘 되느라고 딸을 궐 안의 궁녀 무수리로 보내지 않겠느냐는 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최씨의 딸은 중전을 모시는 상궁나인 홍씨 밑에서 물긷는 무수리가 됐다. 

민 중전은 희빈 장씨의 모함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폐비가 되어 궐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상궁으로 있던 홍씨도 궐을 떠나고 중궁전에는 

최 무수리 혼자 빈방을 지키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희빈 장씨에게 싫증이 나기 시작한 숙종은 

마음씨 고왔던 폐비 민씨가 다시 그리워졌다. 


숙종은 중전이 생각 날 때면 중전이 거처하던 중궁전을 둘러보며 

자기 잘못을 후회하곤 했다. 


어느 한날 숙종은 중천에 떠있는 밝은 달을 보고 폐비 생각이 나서 

중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불이 꺼져 있어야할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누가 있는가 하고 문틈으로 들여 다 보니 

한 궁녀가 비단옷을 차 곡 차 곡 개면서 

“어느 때나 중전 마마께서 이 비단옷을 입으실 꼬.

 상감마마께서는 희빈 마마 꾐에 빠지셔 중전 마마의 착하시고 

인자하신 진심을 왜 모르신 단 말인가!” 라고 한탄하면서 

비단옷을 함 속에 넣고 다소곳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마침 민씨가 그리워 중전의 거처를 찾아왔는데 중전은 없고 

한 궁녀가 그 방에 앉아 바느질하는 것을 보니 

중전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숙종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궁녀는 임금을 보고는 엎드려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너는 누군데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마마 쇤네는 중전마마를 모시던 홍 상궁의 무수리였나이다”. 


숙종은 내관을 시켜 소주방에서 주안상을 차려오도록 했다. 

숙종은 방에 놓여 있는 바느질 꼬리를 보고 물었다.

“누구의 옷을 짓고 있었느냐? 

폐비마마의 겨울 내복을 만들고 있었나이다. 

민씨의 내복을? 에에 마마, 언제 올 찌 기약도 없는 폐비의 내복을 어째서 짓는단 말이냐? 

중전 마마처럼 곱고 착하신 분은 언제고 꼭 돌아오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 숙종은 무수리의 말에 감동하였고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숙종은 술에 취해 그 밤을 무수리와 보냈다. 

그후 숙종은 무수리의 일을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무수리 최씨가 용 종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최 무수리 생각이 떠올랐다. 


곧 최 무수리는 내명부 종 4품인 숙원(淑媛)이 됐고 

왕자를 생산하자 정2 품 소의(昭儀)가 됐다. 


이 왕자가 임금이 되어 친아들 사도 세자를 죽인 이조 제 21대 영조이다. 

어머니는 아들 금의 등극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영조는 외조부에게는 영의정을 외할아버지에게는 좌찬성을 제수 했다. 


 장희빈도 폐비가 되어 사가에서 사약을 마실 때 

아들 균의 하 초를 못쓰게 만들어 성불구가 된 균(20대 경종)은 

자식 없이 8년 동안 임금을 하다 죽었다. 

그래서 경종의 이복동생인 최 무수리의 소생 

금이 21대 영조 임금이 된 것이다. 


숙종은 정비가 3명이었지만 후사가 없었고 

후궁 장희씨에게서 20대 균(경종)과 

무수리 최씨에게서 금(영조)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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