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5 11:22
박근혜의 통일선언. 독일과 한국관계
독일은 한국과는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에 성공하고 나라를 경영할 돈이 없어서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쿠데타한 군인에게 돈을 꾸어줄 수 없다며 거절 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7천명이 일하고 있는 독일에 착안했다.
마침 독일국민들에게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터키나 파키스탄 등에서 온 노동자들보다 성실하고 일도 잘해서
독일 생산에 크게 기여 한다는 찬사하는 뉴스가 TV에도 수차 소개 되어서
한국에 대한 독일 인심이 아주 좋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정부와 어려운 경로를 거처 정상회담을 하기로 약속이 되었고
서북항공Northwest Airline과 전세기를 계약했다.
서북항공은 별안간 왜라는 말도 없이 계약을 취소했다.
당시에는 서북항공 하나만 한국에 들어 왔기 때문에
정부는 별안간 비행기를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독일 정부에 이렇다는 사정을 애기 하고 비행기를 보내 달라고 사정했다.
독일정부도 난처해하면서도 부탁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나
독일 민간 비행기 루프탄자의 사전 예약 일정을 변경시키면서까지 비행기 편을 주선해 주었고
루프탄자는 일정에도 없이 서울에 들어 왔다.
독일 정부는 우리정부의 요청에 협조 해 주었다.
7개국을 거쳐 28시간 만에 일행은 독일에 도착했다.
대통령 행차로서는 매우 초라한 나들이였다고 한다.
후에 서북항공은 미국정부가 쿠데타한 군인에게 전세하면 안 된다고 압력을 가했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8일간의 독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귀국 성명을 냈다(12/15/1964 7시).
"라인 강의 기적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필연이었다.
전후 폐허위에서 복지구가를 건설한 독일은 공산국가에 승리를 이룩하고
"통일의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독일을 우리는 다만 부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도 경제 재건을 더욱더 서둘러야 하겠다."며 경제 재건을 피력했다.
1964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이 76달러였던 것이
지금은 2만 3838 달러가 돼 그 때보다 314배가 많다.
박근혜는 2006년 9월 국회의원자격으로 독일 아데나워(초대 수상)재단을 방문해
"독일은 한국과 저에게 정말 특별하고도 고마운 나라다.
차관을 빌리기 위해서 서독을 방문했던 아버지께서
함보른 탕 광에 찾아가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때
동석한 뤼브케 대통령이 눈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내주었던 손수건을 기억한다.
그 수건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을 만든 역사적인 수건이었다.
당시 독일이 제공한 차관 1억4천만 마르크(3천 만 불)는
근대화 경제개발에 너무나 소중한 종자돈이 됐다"며
독일에 대해 한 고맙다는 연설을 했다.
박근혜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독일은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시장을 선도 하는 나라이며
숨어 있는 챔피언 중소기업이 1300개인데 우리나라는 23개뿐이라고 아쉬워하며
독일은 통일 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은 건 중견기업의 견실한 성장 덕분이라며
우리 중소기업의 2.7%만이 수출에 참여하고 있는데
독일은 11%가 넘는다고 독일에 대해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1차 5개년 경제 계획을 의욕적으로 세웠지만 추진 할 수가 없었다.
박대통령은 차관을 얻기 위해 서독수상 에르하르트와 정상회담을 했다(12/8/1964).
에르하르트는 독일 경제를 일으킨 경제 대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에게 말했다. “각하 우리도 독일처럼 분단국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처럼 우리도 경제를 살려 차관을 갚겠습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은 약속을 지킵니다.
"에르하르트는 대답했다.
“각하 이승만 대통령 때 한국에 두 번 갔었는데 산이 많던데 그러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대동맥을 뚫으세요. 독일도 산이 많았는데
1932년 본에서 쾌른까지 아우트반(고속도로)을 건설했고
히틀러가 아우트반을 전국적으로 확장 건설한 것이 경제부흥의 동력이 됐습니다.
히틀러는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으며 포크스바겐(국민차)을 만들고 철공장도 만들었습니다.
각하도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 자동차와 물동량을 늘리고 제철공장도 만드세요.
중소기업을 육성 하세요 그리고 일본과도 국교를 맺으세요.
지도자는 과거보다 미래를 중요시하고 앞을 봐야합니다.
이에 대해 박정희는 말했다.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안했는데 어떻게 손을 잡겠습니까?
에르하르트는 놀래면서 “아직도 사과를 안했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가 일본수상에게 말하겠습니다. 그 후 에르하르트의 권고로 한일회담이 열렸다.
혁명으로 집권한지 3년 만에 에르하르트 수상의 권고를 듣고
박정희는 크게 감동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족적을 살펴보면 에르하르트의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것같이 보인다.
그 때 통역관은 독일에서 유학한 경제학 박사 제1호 백영훈이다.
박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수상과 벤스를 타고 아우토반(고속도로)을
시속 160 킬로미터(시속 100마일)로 달리면서 아우토반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 때 차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면서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돈 꿔달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고 한다.
눈물을 하도 많이 흘리니까 에르하르트 총리는
“고만 우시라”면서 손수건까지 내 주었다고 그 당시의 정황을 백 통역관은 회고 했다.
박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자세히 살펴보며
독일 정부 의전실장에게 건설계획, 수리, 건설방식, 관리방법까지
꼬치꼬치 캐묻고 백 통역관이 통역해 해주는 내용을 손수 메모 했다.
한국은 서독에 파견된 노동자 임금을 담보로 1억4천만마르크(3천만 불)의 차관을 얻었다.
박정희는 2년후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경부고속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 세웠다.
1968년 2월에 착공해 2년5개월만(1970년 7월)에 완공했다.
총 거리 428 km(107마일)로 총 공사 바는 429억 원이다.
그리고 재철 공장도 세웠다. 자동차 생산도 육성시켰다.
박근혜대통령은 톡일 통일의 상징인 옛 동독 땅인
"드레스덴"에서 통일선언을 한다고 한다.
이 도시 드레스덴은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85%가 초토화 됐던 곳이다.
1989년에 드레스덴 동독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5일간이나 경찰과 대치한 곳이며
동독정부가 시위대와 처음 대화를 시작한 곳으로 통일의 첫 물꼬를 튼 역사 깊은 곳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독일 베르린에서 북한에 보내는 선언(3/9/2000)을 했다.
이 선언요지는 진지한 제의라며 미리 판문점을 통해 김정일에게 알렸고
북한도 재빠르게 반응해 선언 하루 전에 싱가포르에서 남북 비밀회담을 했고
이어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잇달아 회담을 했다.
그리고 선언한지 한 달 만에 6월15일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박근혜대통령도 대박 서울 선언으로 통일을 공론화하고
이어 통일 선언을 이 드레스덴에서 한다는데 기대 되는바가 크다.
더구나 미국을 포함해 통일의 고리를 잡고 있는
중국 미국 일본 정상과 회담을 마친 후이니 더 기대가 크다.
(이 칼럼은 www.seoul.com 문경 난과 www.daum.net/mkchicag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민속연구원 20140327 제 375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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