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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이방원. 왕자의 끼

2014.04.20 07:45

남송 조회 수:1094

임금도 못 말린 바람 끼 


양녕대군은 세종대왕의 맏형이고 

태종 이방원의 장남이다. 

몇 년 전에 불에 탄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의 

현판을 쓰기도 한 명필이었으며 

세자 책봉을 받고 14 년 만에 폐 세자가 된 왕자로 세기의 풍류객이었다. 


남대문은 서울을 둘러 싼 성의 정 남쪽에 위치한 정문이다. 

임진 왜난 병자호란 등 수없이 많은 큰 난리에도 훼손 되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고 있던 국보 제 일호다. 

양녕이 쓴  현판은 이번 화재로 불에 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긴 하지만 조각조각 파손 됐다고 한다. 

글씨체가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옛날 양녕이 쓴 그대로 복원 되었으면 한다. 


제 3대 임금 태종은 장자인 양녕을 세자로 책봉했지만 

마음에 차지가 안았다. 

양녕은 궐의 담을 넘어 다니며 바람을 피웠고 조정의 

행사에도 참석치 않고 꾀병을 앓곤 했다. 

양녕은 태종의 눈 밖에 났고  

4번씩이나 선위파동을 거치면서 국론이 분열되어 

정승들이 귀양까지 가곤 했다.  


결국은 양녕은 폐 세자 되고  3 남인 세종이 임금이 됐다. 


이씨조선 27명의 임금 중에 장자가 임금이 된 것은 7 명에 불과 했고 

나머지 20명은 적장자가 아니었으며 

서자도 있고 양자도 있고 먼 친척 나무꾼이 대를 이어 왕이 되기도 했다. 


양녕의 바람기는 이조실록에까지도 기록되어 있고 

야사에서도 그의 행적이 많이 기록 되어 있을 만큼 풍류를 즐겼다. 


세종의 아버지이고 양녕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수차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동생들을 다 죽였으며 

수많은 동기간, 친척, 친구 등 

처남까지도 왕도에 거추장스런 사람이면 

충신이었건 공신이었건 아버지 이성계의 친구까지도 가리지 않고 

죽이면서 제 3대 임금에 등극했다. 


임금이 된 후에도 그랬다. 

삼봉 정도전도 이방원의 칼에 죽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이씨조선을 개국한 사람이고 일등 공신이다

친구 남온의 소실 집에서 

술 마시며 담론 하는 중에 이방원이 소실의집을 포위 했다. 

겁에 질린 정도전은 옆집 안방으로 피신 했지만 결국

끌려나와 이방원 앞에 무릎을 꿇고 나리 살려 달라 했지만 

이방원은 봉화백 벼슬도 주었는데 부족한 것이 무어냐며 

목을 쳣다. 

이유는 이성계의 막내 방석을 임금으로 옹위하려 했다는 것 때문이다과 


임금이 죽고 몇 년이 지나면 조정중신들이 편집위원이 되어 

그 임금에 대한 공덕을 기록하는 신록을 편집했는데 

덕이 많았던 임금에게는 칭호를 정하고 

그 밑에  종(宗)자를 부치고 

공이 많은 임금에게는 칭호 끝에 조(租)자를 부쳤다. 


실록에 나오는 임금의 칭호는 

임금이 죽은 후에 기록을 위해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임금 생전에 자기를 후세들이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고 죽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고 왕이 된 이방원에게도 

클 태 자에 종을 부쳐 덕이 있는 임금이었다고 

태종(太宗)으로 기록해 

덕이 많았던 임금의 상징인 종자를 부쳤다. 


태종은 12남 17녀를 두어 29 명의 자녀가 있어 

자녀가 제일  많은 임금이 되었고  

역사에 기록된 부인만 12명이었으며

안방출입을 제일 많이 한 임금으로 되어 있다.  


29 남 매 중에 장남인 양녕대군은 

세자책봉을 받아 장차임금이 되어야 할 재목이었는데 

태종은 선위파동을 네 번씩이나 일으키면서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셋째아들 충녕(세종)을 세자로 삼았다. 

세종은 셋째 아들로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 세자하는 바람에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세종은 형 양녕대군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실의 큰 어른으로 형 대군을 극진히 대했고 

종사에 대한 일을 의논하곤 했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종친을 대표하는 어른으로 모셨다. 

그러니 양녕대군은 만고의 팔자가 핀 왕자였다. 


양녕대군이 평양으로 유람을 떠나게 되었다. 

촌수로는 세종이 동생 벌이지만 임금에게는 형도 신하이기 때문에 

인사차 대궐에 들어가 세종을 만났다. 


세종은 형 에게 부탁을 했다. 

형님 이번 여행에서는 바람을 피우지 마시고 

구경이나 잘하고 오라고 당부 했다. 


그리고 평양감사에게 비밀리에 명을 내렸다.

양녕 형님이 평양으로 유람을 갈 것인데 

만일 평안도 어느 고을에서든 수 청드는 계집이 있거든 

즉시 그 기생을 역마에 태워 대궐로 보내라고 했다. 


양녕대군은 임금의 부탁도 있고 해서 

근신하면서 평양으로 가고 있었다. 

정주에 도달했는데 절세의 미인이 양녕 앞에 나타났다.

황홀한 기분에 임금의 당부도 잊은 채 

그 계집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했다. 


아무도 모르게 풋사랑에 하로 밤을 지내게 된 것이다. 

미인계집과의 밤을 보내면서 흥이 절로 난 양녕은 시를 읊었다.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 사람의 베개를/ 드려다 보진 못할 것이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홋 이불을/ 걷어 올리는가! 


이튼 날 날이 밝자 정주고을 수령은 

평양감사에게 이를 알렸고 감사는 

그 계집을 역마에 태워 서울 궁궐로 보내라고 하명했다. 


세종은 말에 실려 온 기생으로 부터 

자초지종이야기를 듣고 

양녕대군이 읊어 준시를 외워두라고 부탁했다. 


이런 세종의 비밀을 알리가 없는 양녕은 

서울로 돌아와 무사히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세종을 알현했다. 


세종은 잘 무사히 다녀 오셨습니까하고 안부를 물으면서 

떠나실 때 제가 당부한 약속은 잘 지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양녕은 어명을 어찌 거역 하겠습니까 시치미를 떼면서

분부대로 한 번도 기생을 만나지 안 했다고 했다. 


세종은 웃으면서 고맙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형님의 노고를 풀어드리기 위해 가무를 준비했습니다. 


가무를 한참 즐기고 있는데 한 미녀가 나와 춤을 추면서 시를 읊었다. 

처음엔 누구 인지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가만히 듣자하니 자신이 정주에서 어떤 계집에게 지어 준 시구였다. 


시구에 있는 것처럼 

신방의 비밀을 밝은 달은 몰랐지만 

홋 이불을 들 친 바람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양녕은 임금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시치미를 떼고 거짓을 고한 것에 대해 송구해 하면서 


뜰아래로 내려와 임금에게 용서를 빌었다. 

세종은 웃으며 양녕의 손을 잡아 올리면서 위로 했다. 


그리고 그 길로 그 기생을 양녕과 함께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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