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4 13:20
시카고 문경 카페 www.daum.net/mkchicago 6월 24일자에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는 제목으로 송재연 씨가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 대한 칼럼이 나왔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서울대학 국문과 대학원생인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학원생 친구들에게 일부분씩 떼어 나누어 주고 번역해 달라하고 이를 모아 출판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원저자는 영국 황족으로 지리학자이고 여행가이다. 동양을 수차례 왕래 했고 조선에는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며 네번 들린것으로 소개 돼 있다. 이 책을 읽고 써 놨던 독후감(?)이 생각 나 여기에 첨부해 본다. 양반과 소실 1894년에서 97년 사이에 영국의 지리학자이며 황족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여자가 4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11개월 동안 머물면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기행문을 썼는데 이 책이 당시 서구에서는 매우 희귀한 책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서양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귀중한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14판을 거듭했고 이 책을 쓰기 위해 비숍은 빈대와 벼룩이 들끓는 주막에서, 소 외양 깐 방 쇠 똥 내 나는 데서 자고, 변소에서 수채에서 시궁 내 나는 서울 뒷골목 까지 살피면서 기행문을 썼고 서양인으로서는 고종황제를 제일 가까이 하고 민비와도 친해서 수시로 궁에 드나들면서 재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100여년 전에 한국말도 못하면서 한국 토속종교와 무당, 박수, 신 내림굿에 대한 것, 푸닥거리 등 귀신 서열 36 개를 나열한 것이라든지 경제사회 문화정치에 대하여 그렇게 자세하게 쓴 기행문을 아직까지 본 일이 없다. 일본을 통해 배로 부산에 도착하여 보니 한국사람보다 외국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고 세관에는 한국인은 없고 독일사람이 세관 업무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나, 서울에서는 쏘련 군인이 한국 군대를 훈련시켰다는 것 등은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물포(인천)에서도 한국사람들은 안보이고 중국사람과 일본사람들이 부두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897년 1월 현재 부산, 원산, 제물포의 항구에는 외국인이 11,318명이 있었고 266개의 사업체가 있었으며 일본 돈과 한국 동전과 수표가 유통되었고 일본인이 10,711명이고 회사는 230개이었다고 한다. 영국인은 65인이었고 중국인은 2천5백 명쯤 되었는데 서울과 인천에 주로 있었다고 한다. 비숍씨는 왜 한국 땅인 부산과 제물포에 왔는데도 일본 사람과 중국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면서 한국사람에 대해서는 말이 없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왜 그랬을까? 분명 한국 땅인데도 한국사람은 눈에 띠지 않아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다. 한 때 뻬스트 쎌러 였던「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읽고서야 해답이 나왔다. 양반사상에 젖은 우리 조상들이 장사하는 사람, 뱃사람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을 쌍놈이라고 하여 혼인도 하지 않던 고루한 유교사상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다나 바다 근처에서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장사를 하는 것을 천시했기 때문이다.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공자 맹자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리학이 한국에 들어온 후 몇 백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공자와 맹자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판해서는 안 되었다. 특히 이조시대에는 공맹 사상에 젖어 이 사상이나 가르침에 어긋나면 관리든, 고관 대작이든 누구 던 탄핵을 받고 역적이 되어 탈관직되기도 하고 귀양도 갔으며 절대권력자인 왕도 공자와 맹자의 이론을 들고 나오는 신하에게는 꼼짝달싹 못하고 그 말을 들어주었고 훌륭한 신하라고 칭찬까지도 했다. 비숍이 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의 양반들은 근엄하고 예의바른데 사랑놀이는 본처와 하는 것이 아니라 첩실이나 기방의 여자와 한다는 것이다. 본처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들을 생산하고 제사준비를 하고 노비를 다스리며 살림을 하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 질투를 하면 투기(질투)는 칠거지악이라고 질투도 못하게 해 놓고 자신은 밖에 나가 바람을 피우고 다녔으니 서양 사람으로서는 이런 양반 님들을 이해 할 수가 있었겠는가. 남편은 사랑방에 있다가 가끔 안방에 들어가 본부인과는 존댓말을 하면서 가문이나 집안 일을 상의하고 다시 사랑방으로 나오는 이런 생활 습관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 양반 님들의 생활상이었다. 임금과 궁에서 정사를 보다가도 해가 지면 모든 남자들은 누구나 다 퇴궐해야 되므로 궁내에는 쓸만한 남자는 임금 하나이고 나머지는 궁녀들과 쓸모 없는 내시들 만 있어 궁 안은 온통 여자세상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임금은 무치(무슨 일을 해도 부끄럼이 없다)라 하여 누구와 무슨 일을 저질러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임금이야말로 산해진미와 꽃 같은 궁녀들 틈에서 살다 일찍 죽었다. 11대 중종 임금 때 개혁파 조광조는 당파 싸움으로 온 나라와 조정이 혼란해짐에 임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실로 해 진 뒤에도 퇴궐하지 않고 궁에 남아 있다는 죄로 탄핵 상소를 받아 삭탈관직되고 귀양가서 죽었다. 임금은 무치다. 물 깃는 무수리나 침모나 밥짓는 궁녀나 누구든 정사를 했고 그러다 왕손을 생산하면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임금의 은혜를 받았다하여 빈이니 숙이니 하면서 벼슬을 내렸다. 그러니 궁녀들은 임금 하나만 바라보고 일생을 보냈다. 역대 임금 중에는 무수리 아들도 있다. 이 때에 비한다면 지금의 대통령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그때에 대통령이 되었어야지. 지금의 ‘통’ 들은 그런 시절 다 지났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고 ‘통’은 그 때 했어야 하는데 지금에 와서야 어찌 ‘통’은 무치라 할 수 있겠나! 만시지탄이란 말은 여기에도 딱 해당되는 말이다. 만시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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