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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차지철

김재규 2만불 금시계와 그의 운명    


10월 26일은 35년전에 

200년만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 나랏님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날이다. 

또 이날은 묘하게도 중국 하얼빈에서 105년전에 이등박문이 

안중군 대장에게 죽은 날이기도 하다. 

같은 날 이등 박문은 중국 하얼빈 만국공원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아침에 죽었고 

박대통련은 삽교천 방조제와 KBS 송전탑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와 

안가에서 신하들과 뒷풀이를 하다 심복 신하에게 죽었다(1979년). 


박정희와 안중근은 한국에서 영웅이고,

이등 박문은 일본에서 영웅이다. 이등 박문의 본명은 하야시였는데 

이등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가 양자를 갔기 때문에 제조상의 성이 아닌 

이등 박문(이도 히로부미)으로 개 성명 됐다. 


해군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에 유학도 했고 

초대 총리대신에 올라 일본 헌법제정을 주도 했으며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군부에 휘들리지 않은 유일한 문관정치인이었고 

궁벽한 농민출신으로 총리대신에 4번, 추밀원의장을 4번이나하고 

공작작위도 받은 사람으로 일본에서는 영웅대접을 받았다. 


그는 초대 조선 총감이 돼 조선 주권을 침탈하기에 이르렀고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원수다.

 당시 대한 의군 참모중장이었던 안중근이 

일본 추밀원의장 이도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다. 

일본입장에서 보면 안중근은 일본 추밀원 의장을 죽인 테러리스트다. 


안중근 의군 참모 중장은 여순 법정에서 

“교전 중인 군인이 적장을 살해한 것은 범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악한이 일본의 악한을 암살한 것이 아니라 

동양평화를 위해 조선 영웅이 일본의 영웅을 단죄한 것이다.


박어흥 박어종. 김재규 2만불 금시계  

지난 10월 26일 전 박정희대통령이 죽은 날 중흥회가 

그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식에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는 5천500여명이 모였다. 

정작 있어야 할 자식들은 하나도 나타나질 않했고 

심지어 청와대 수석들도 없었다고 한다. 


상주(?)도 없는 추모식에 빈 객들만 발디딜 틈이 없이 모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했건 못했건 따지기 이전에 

그래도 한나라의 대통령인었는데 죽어서, 

또 자식중 하나가 현직 대통령인데 그 자식들이 

아버지 제삿날 성묘도 맘대로 못하게 됐다니 

이렇게 무정한게 정치인들의 세상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정치가 죽은 사람에게까지 

이렇게 인정도 사정도 없다는 것인가 해 슬프기도 하다. 

아니면 독재자딸이 독재를하다 죽은 아버지 추도식에 

참여 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가? 


현직대통령이 전 대통령이고 친아버지의 추도식을 

민간단체가 주최한 것이라며 이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불참했다고 한다. 육영수 8. 15 추모식에도 불참했다. 

하지만 다행한 것은 아들 지만과 근령은 하루전날, 

박대통령은 다음날 극비리에 성묘를 했다는소식은 반갑기까지했다. 


워싱턴에 있는 보림사 경암스님은 한국에 있을 때 

김재규의 인생상담을 했을 만큼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10.26 사태가 일어나자 워싱턴으로 왔다(망명?). 


그는 박정희의 관상은 박어흥 박어종이라고 했다. 

스스로 흥하고 스스로 끝을 맺는 다는 뜻이다.


90세로 1992년에 죽은 박재완 이라는 유명한 명리학자가 있었다.


쪽집게 운명학자 도계 박재완 

명리학자란 서양에서는 예수가 올것을 예언했던 

요한을 선지자라고 하는 것과 같이 

동양에서는 예언자를 도사, 주역을 푸는 사주쟁이, 

점쟁이라고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한문 학자고 철학자이며 수리학자다. 


박재완(1903-1992)의 호는 도계다. 

도계는 죽기 전에 병원에 있으면서 

그의 제자 유충엽과 조철수에게 

내가 9월 4일 몇시를 넘겨야하는데 란 말을 했는데 

정말 도계는 9월4일날 자기가 말한 시간에 죽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알아내는 데는 생년월일(4주)을 본다. 

그러나 단지 4주만으로는 사람들의 운명을 알수 없다고 한다. 


정확한 운명을 알아내자면 4주에 작용하는 “환, 혼, 동, 각” 

네가지 요인을 더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은 동물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희노애락과 정신세계다. 

혼은 조상을 말한다. 부친 조부 증조부 등 조상이 훌륭했으면 

자손도 그 조상의 영향을 받아 훌륭해 질수 가 있고 

주위에 있는 형제자매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즉 내력과 가정 교육에서 얻어지는 인격이다. 

동은 태어난 세상, 어떤세상에 태어 났느냐다. 

즉 시대적 환경이다. 

각은 본인의 깨달음과 생각을 말한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날 같은시에 태어 나 4주가 같은 사람들은 

똑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로는 4주에는 51만 8000가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0가지 갑자에 12가지 달을 곱하고 거기에다가 

60가지 일진을 곱하고 또 다시 12가지 시간을 곱해서 얻은 숫자라고 한다. 


지구상에는 똑같은 사주(생년 월 일 시)가  한 사주마다 

평균 1만명 쯤 있는데 세계인구 60억을 

5행의 가짓수로 나누면 그런 숫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운명은 개척할 수가 있다.

이와같이 똑같은 4주를 타고 났어도 

각자의 운명이 다른 것은 

”환 혼 동 각” (후천적 으로 형성된 인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혼동각을 빼놓고서는 

인간 운명에 대한 철학을 말할 수가 없다. 

인간의 운명은 자가자신이 할 수 없는 선천적인 사주와 

후천적인 환혼동각으로 크게 2분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사주는 나쁘게 태어 났지만 

환혼동각이 훌륭하면 그 나쁜 사주를 환혼동각이 

밀어낼 수가 있고 환혼동각이 나쁘면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복을 받는 수가 줄어 든다는 

이론은 역술적이긴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럴듯하게 맞는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7 기3이라는 것도 

우리 운명의 70%는 사주대로 살고 나머지 30%는 

본인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느냐에 의해 

운명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30%의 운명은 내가 개척해야하는 것이다.  

즉 자기 기량 자기 재주 자기 노력 등이다. 


수(4주)로 인생운명을 점쳐보는 운명 철학은 동 서양이 같다. 

통계학이고 순열조합의 수학이고 과학이다. 


 복잡한 숫자놀음을 범인은 알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니 복잡한 것 다치워버리고 

30%에 해당하는 환혼동각 

즉 건전한 생각을하고 건전한 행동을하고 만인을 사랑하면서 

1년 365일을 지헤롭게 자기기량을 개척하며 살아가면 

나에게로 향해오던 모든 하자(악운)를 피해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을 역술에서는 액운을 피한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사탄의 침범을 막는 것이라하고 

불교에서는 악연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경대로 소망을 갖고 믿고 만인을 사랑으로 

1년 365일을 대하면 나를해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복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사주 팔자가 핀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나는 내운명을 내가 개척한 것이다. 


도계 박재완은 사주학과 환혼동각에 대한 철학을 깊이 

각성했던 명리학자 였다고 한다.


도계는 김재규의 사주로 10.26사태를 예언 했다.

김재규는 도계 박재완이 점을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1970년대 초반에 사람을 보내 사주를 보아 오라고 했다. 

박재완은 김재규의 사주를 종이에 


“ 풍표낙엽차복전파  

楓飄落葉 車覆全破라고 써주었다. 


이 사주를 본 김재규는 단풍들 무렵에 

차가 엎어져 전파된다고 해석을 하고 10년 무사고 운전사를 고용하고 

차동차를 아주 조심했고 운전기사에게도 운전 잘하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차지철 애기를 할 차례가 됐다. 

혁명주체의 한사람인 차지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집사 홀어머니를 지극히 모신 효자이기도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곧 대한민국이라며 충성을 다한 부하였다. 


차지철은 혁명당시 대위에 불과 했지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분에 넘치는 월권을 많이 했다. 

김재규는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박대통령의 십복이었다. 


이 두사람은 박정희의 우청룡 좌백호였다. 

이들은 대통령에 대해 과잉충성 경쟁을 했다. 

결국은 박대통령 앞에서 김재규는 차지철을 죽이고 

내친김에 대통령도 죽이는 10.26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점술계에서는 도계 박재완이 봐준 

김재규의 점꽤를 다시 해석하기에 이르렀고 

이 점꽤는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됐다. 


자동차가 전복돼 전파한다는 것이아니라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운세를 예고 한 것이라며 


점꽤에 나와 있는 차는 차지철을 가리키는 것이고 

전은 1212 거사의 주역이었던 전두환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다.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을 맞고 엎어져 죽었고 

김재규는 군부 세력 이였던 전두환 사령관에 의해 

전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재규가 점꽤에 나온 차가 차지철이고 

전은 전두환이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오늘의 대한 민국은 

좀 달라 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언이라는 것이 지난일을 놓고 지금 따져보면 

그럴듯하게 해석이 될 때가 있다. 

도계가 본 김재규의 점꽤는 수년 후에 있을 궁정동 사가에서 

대통령이 죽은 10.26사건을 예언한 것이다.  


김재규의 2만불 짜리 금시계

김재규는 1979년 박대통영을 살해하기 전 인 8월에, 

석달 후에 있을 박대통령의 62회 생일(11월 14 일)선물용으로 

스위스 명품 회사 파텍에 2만불짜리 시계를 주문 했다. 

하지만 선물 받을 사람은 선물 줄사람에게 죽었다. 

사람속은 알수 없지만 김재규가 만일 박정희에게 잘보이기 위한 

충성심에서 금시계를 주문했다면 

김재규는 유신독재에 반대해 박대통령을 죽이려 

사전 계획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북한은 변한게 없다.

지금은 판문점이나 군사 전통문을 통해 

남북간에 소통하고 있지만 1970년대에는 

적십자회담을 위한 통로가 유일했다.

1970년대에 적십자회당을 할 때부터 북한은 믿을 수가 없는 대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적십자 회담 대표에게 내린 회담 수칙을 보면 

지금 남북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1차 고위급접촉을 지난 2월에 하고 6개월이 지난 8월에 

우리 정부가 제2차 고위급 접촉을 하자고 제의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가 

2개월이 지난 10월4일에 북한 실세 서열 두번째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일행이 

돌발적으로 인천으로 방남해 졸지에 인천접촉을 하게 됐다. 

황병서 총정차국장은 인천 접촉에서 청와대 국가안보 실 김관진 실장에게 

10월 말이나 11월초에 남이 원하는 날 제2차고위급회담을하자고 제의 했다. 

이에 따라 우리정부는 10월 30일하자고 통보 했지만 

응답이 없다가 또 갑자기 이런분위기에서 고위급 접촉이 가능하겠나며 

우리 민간단체가 전단살포를하는 마당에 고위급 접촉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이는 정부가 민간단체가 하는 일을 막을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수차에 걸쳐 이야기 한바 있다. 

그런데도 북 국방위원회 명의로 청와대 안보실로 

전화 통지문을 보내왔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북이 제2차 고위급 접촉을 할 진정성이 있는지 

입장부터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현재로서는 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은 물건너갔고 

따라서 5.24 제재 조치 해제도 물건너갔다.  


박정희의 남북회담 지침은 지금도 유효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후 

1달만인 8월에 평양에서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렸다.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은 회담 대표에게 열가지회담 지침을 내렸다 

1.평양에서 있었던 일은 공식이던 비공식이던 다 보고해야한다 

2.공산주의 자들과 회담 할 때는 사전에 전략을 세워야 한다 

3.북한위정자들과 우리의 핏줄이 같다는 것은 오산이다 

4. 우리는 적십자사업이 인도적사업으로 보나 북한은 정치적 사업으로본다 

5. 북한요인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적이다  

6. 우리의 한마디는 신념이 있어야 하다  

7. 술을 마실 때도 상대가 공산당이라는 것을 잊지마라  

8. 북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상적으로 흐르지마라  

9. 남한 언론을 비판하면 즉각 반박하라 

10. 대표단과 자문위원 사이는 긴밀한 협의를하되 매일저녁 결산하라 등이다.


한반도 평화조약은 미군철

그리고 1979년 1월 29일 박대통령이 죽기전 

남북 조절위원회가 있었는데 이 때도 박정희 대통령은 

남조절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대표들에게 

“북의 평화공세는 미군 철수 주장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북한은 휴전조약을 

평화조약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휴전 조약이 평화 조약으로 바뀌면 

북은 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평화조약 체결로 이제 한반도는 평화의 나라가 됐는데 

왜 무장한 미군이 주둔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명분을 잃게 되고  

우리는 이에 대한 답변이 궁해질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기지라고 

변명 할 수도 없다.  

 

(이 칼럼은 www.seoulvoice.com에서 항상 볼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20130930 제 405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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