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정주영과 이병철 싸운 얘기

사명대사가 땅을 칠 황금의 땅.   

 

기가 막힌 땅, 강남 요지.

땅은 말도 없고 듣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지만 

항상 살아서 사람에게 큰 돈을 벌게 한다

인구 밀도가 세계 12위로 높은 한국 땅은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해 감에 따라 살아서 움직이며 

돈을 담아 두는 우아한 항아리가 됐다. 

쓸모 없다던 땅도 돈을 잘버는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8만2790배나 뛴 땅

평당 5천300원짜리 땅이 4억4천만원에 팔리다니 

사명대사가 살아 있으면 땅을 열번은 쳤을 것이다. 


이 땅은 원래 봉은사가 소유했던 것인데 

조계종단이 44년전 1970년 10월에 한전에 판 것인데 

현대 정몽구 회장이 지난 9월에 샀다. 무려 8만2790배가 올랐다. 


이 땅이 바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 전력 땅이다. 

정몽구 회장은 이 땅의 가격이 너무 과하지 않으냐는 말을 들었다며 

정 회장은 외국자본가나 기업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한전부지는 정부 재산이기 때문에 정부재산을 사는 것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고 했다. 

이는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며 

그룹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니 추진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고 임원회를 주재하며 

인수 팀의 수고를 치하했다.       

 

땅은 100년을 보고 산다.

정몽구 회장은 100년을 내다본 투자라고 강조 했다. 

총면적 10만평에 가격은 10조5500억원이며 

계약 당시 가격의 10%를 보증금으로 내고 

1년내인 2015년 9월 25일까지 3차례에 걸쳐 완납하면 된다. 


로이터 통신은 이 현대 한전 부지 입찰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아시아에서 단일부지로는 처음있는 최고의 규모라고 보도했다. 


인수 팀은 정몽구 회장에게 

4조원에서 상한 5조 1천억원으로 하자고 말했고 

삼성그룹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도 했는데 


정회장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기회를 놓지면 기회가 없다”며 

직접 10조5500억원에 살 가격을 제시했다. 

이렇게 해서 이 부지의 가격이 정해졌다. 


흥정은 수요에 의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게 돼 있다. 

이 땅은 공기업인 한전소유로 나라땅이다. 

그 판돈은 어느 개인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한전의 부채가 58조원이나 된다. 이 빚을 못갚으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한전 관계자는 매각 대금은 부채 갚는데 

들러갈 것이라고 했다.

 

년간 250만명이 찾아오는 차동차 타운

현대는 이부지를 자동차타운으로 

100 층짜리 빌딩 두 동을 세우는 등 

년간 250만명이 찾는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가 

공장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타운이 된 것 처럼 


현대는 이곳을 도심형 자동차 랜드 마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혼다자동차는 혼다홈 타운에 

학교 소방시설도 건설하고 

주민들의 복지시설도 주거까지도 만들었다.

 

현대와 삼성은 경쟁 하는가?

현대 인수 팀이 삼성도 이 땅에 관심이 있다는 

내부 소식통을 통해 들었다며 

5조원 안팍의 가격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도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 했다고 한다.


 정몽구의 아버지 정주영은 현대를 창설했고 

이건희 아버지 이병철은 삼성의 설립자다. 

이병철은 1910년생으로 1915년생인 

정주영과는 5살 차로 이병철이 5살 위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사업의 스타일도 다르다. 

하나는 경상도 대구사람이고 

하나는 북한땅 강원도 금강산 북쪽 자락 농촌 통천 사람이다.


정주영은 농부의 아들로 글방에 다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3번씩이나 아버지 몰래 나와서 

평양으로 서울로 인천부두 노동자로 

쌀가게 쌀배달 점원 등을 거치면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동차 고치는 공장으로 부터 

건설 중공업 등 아산만을 농토로 만들어 쌀을 생산하게 하는 등으로 

자수성가 한 재벌 총수였다. 


두번째가출은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서울로 찾아와 

아들을 잡고 대한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야 네 동생들은 어떻게 할려고 장남인 네가 왜 그러는냐고 했다. 

이에 마음을 잡은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통천으로 가기로 했는데 

아침이라 청량리에서 차를 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버지가 주영아 창경원에가서 호랭이나보고 가자며 

창경원 앞에까지 갔는 입장료가 대인10전 소인 5전이었다. 


아버지는 나는 호랭이 많이 봤다. 너나 들어가 보고 오라고 했다. 

아들도 아버지가 입장료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알고 

저도 그림에서 호랑이 봤다고 했다는 말이 

정주영 자서전에 나와 있다. 


반면 이병철은 집안이 부유했고 

일본에 건너가 유학도 했으며 

돌다리도 두둘겨보고 건너가는 치밀한 성격으로 

주로 소모품과 소비재사업으로 삼성을 제일가는 재벌로 키웠다. 

삼성은 후에 조선과 건설분야에도 손을 댓지만 

재벌로 크는 과정은 두사람이 판이 했다.

 

너는 골동품이나 만지고 나는 막노동자냐 이거야 ?

그런데 이두사람은 언제 부터인가 이렇다 할 단초도 없이 

감정이 좋지 않게 됐다

무엇 때문에 감정이 상했는지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현대는 동아일보를 끼고 

삼성을 못마땅해 하는 구설을 올렸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변명하고 반박하는 길이 없었다.


이병철은 당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되자 

중앙일보를 창간하고 정주영에 대항했다. 


지금 삼성가와 중안일보 운영진은 사돈 연척간이다. 

이로 인해 삼성은 중앙일보를 통해 

현대는 동아일보를 통해 사소한 사업상의 일까지도 

서로 상처를 주기에 일으렀다. 


이렇게 두사람 사이가 악화 일로에 있을 때 

어느 사석 측근들이 있는 앞에서 감정이 상해 노기에 찬 

정주영이 이병철에게 

“그래 자기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 유학도 가보고 

기업을 일궈서 국보급 골동품으로 가득한 서재에 앉아서 

고려자기나 만지고 쓰다듬으며 

정원에 노는 공작새를 감상하는 고상한 양반이고 


나는 막노동자 출신이라 무식한 사람이다 이거야?”했다고 한다.

 

결자해지하고 이들은 죽었다.

1985년 11월 25일 정주영 생일날이 됐다. 

전경련이 정주영회장의 고희연을 열었다. 

정회장은 검소한 것을 좋아해 반대 했지만 

전경련 회장단과 재계원로 회장들이 우겨서 직원들에게 부탁해 

전경련 빌딩 20층에 오찬 형식으로 고희연을 열었다. 

재계의 현역들과 원로들이 모두 축하객으로 모였다. 


정회장은 그 특유의 재담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여러 내빈들앞에 나타난 것은 이병철이었다.

 간호사와  의사의 부축을 받으며 아주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며 

이병철 회장이 들어 왔다. 


당시 이병철은 지병으로 오랜동안 

거동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좌중은 더 놀랐다. 


당장 무슨일이라도 일어 날것 같이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보였으니 당혹스러웠다. 

또 좌중들은 두사람사이가 뿌리깊게 반목이 

오랜동안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놀랬다.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침묵이 계속 됐다. 

반목해오던 두재벌 총수가 한자리에서 난났다는 것 만으로도 

그자리는 매우 뜻이 있는 자리이다. 


이병철은 마련해온 선물을 수행원에 건네주었고 

수행원은 정주영 앞으로 닥아가 두 손으로 선물상자를 주며 

저의 회장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약소하지만 받아 수시기 바랍니다. 


상자에서 나온 선물은 우아한 백자였다. 

거기에는 정주영회장에 대한 헌사가 색여져 있었다. 

사회자가 읽었다. 정주영은 답사를 했다. 


재계의 지도자 이신 이병철회장님으로 부터 

선물을 받고 보니 (중략)정말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찌 모르겠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온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는 

실내를 한동안 진동시켰다. 

해묵었던 감정이 한 순간에 없어지는 박수다. 


이 두사람은 생전에 갖었던 감정의 응어리를 

다 없애고 떠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며 

그렇게 하겠다는 결심이 있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이런 일이 있은후 이태가 지난 후 

76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정주영회장은 90세가 되면 손을 놓고 편히 쉬겠다고 했지만 

84세로 2001년에 돌라갔다.

 

이들은 일본과 대한민국 이중 국적자 

이 두사람은 

일본 식민 통치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로 

해방이 되면서는 대한 민국국적자가 됐고 

해방과 6.25 전쟁을 치루는 과도기에 

부를 축적한 풍우나적인 재벌들이다. 


이들과 한 시대를 수 놓고 간 잊지 못할 또 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는 1917년생이다. 


이들은 격동했던 한 세대를 같이 겪으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적인 인물들이다. 


김진이라는 기자가 “청와대 비서실”이란 책을 쓸때 

각 대통령들의 측근 부하들을 면담담했는데 


그들은 그들이 모셨던 대통령이지만 

장점도 말하고 단점도 몇마디씩 했다. 


오로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측근들로부터는  

이구 동성으로 그는 애국자였다고 

칭찬하는 소리만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글은 www.seoulvoice.com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난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2014116 제 406호 charakwoo@hotmail.com>             

 
번호 이름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차락우 악마들의 전쟁. 미국의 고민, 휴전이냐 교전이나? 북, 연달아 재외공관 폐쇠. 재중 탈북민 북송 재중 탈북민 남송 2023.11.02 407
583 차락우 트럼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미국이 최우선. 나는 부채 왕 [193] 남송 2016.05.10 1375956
582 차락우 성경은 무지 막지한 책인가? 지옥은 없다. [222] 남송 2014.09.22 1209189
581 차락우 나도 부자 된다. 통일은 대박 남송 2014.02.13 381508
580 차락우 성직자를 사랑한 사람. 황진이는 서화담과 실패 지가 소문내 남송 2014.09.05 21047
579 차락우 한국인 성 45%가 가짜 남송 2014.09.27 17371
578 차락우 부자신랑깜 꼬시는 법. [1] 남송 2014.05.15 16782
577 차락우 대통령 고만두니 집에갈 노비가 없다 [1] 남송 2014.03.01 15646
576 차락우 과부와 머슴. 정조 임금과 심환지. 혜경궁 홍씨 남송 2014.11.07 15583
575 차락우 조선 인민군 남한에. 북 실세 3인방 통일 오솔길 열고 갔다. 남송 2014.10.07 15557
574 차락우 천주교는 안 된다. 선교사 알렌 일기 남송 2014.09.18 15330
573 차락우 정조 임금이 쓴 어서에 한글 한마디. 한문으로 표현 못해 한글로 남송 2014.10.01 14736
572 차락우 남북대화. 북은 박 대통령에 기대. 청와대에 두번 통지문 남송 2014.09.17 14730
571 차락우 박정희와 정주영. 돈 먹으면 벙어리 남송 2014.10.11 13827
» 차락우 정주영과 이병철 싸운얘기. 사명대사가 땅을 칠 황금의 땅 남송 2014.11.05 12607
569 차락우 통일선언. 박근혜 남송 2014.03.25 12605
568 차락우 임 오실날은 되었는데 남송 2014.11.20 12387
567 차락우 김대중 납치와 주한 미대사 고별 인터뷰 남송 2014.10.15 11845
566 차락우 김정은 서울 방문. 9월 평양선언 젼문. 문재인, 평양시민에 감사연설하고 김정은과 백두산 간다 남송 2018.09.19 11574
565 차락우 박정희와 차지철. 김재규 2만불 짜리 금시계와 그의 운명 남송 2014.10.29 10796
564 차락우 한국 장로교는 청교도파. 장로교 창시자는 칼뱅. 남송 2014.11.19 6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