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9 14:41
한국 장로교는 청교도파. 창시자 장 칼뱅. 땡스기빙의 유래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통털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천주교와 신교로 대별한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는 11%, 신교신자는 22%다(불교신자는 23%). 기타종교가
1%고 나머지 43%는 무종교다(2012 현재). 인천시 소사구는 100평방미터에 교회가 하나씩 있는데 이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가던 뒤로가던
옆으로 가던 10미터만 가면 교회가 하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범죄는 줄기는 커녕 날로 늘어만 간다. 한국장로교는 미국청교도 한국은 1884년에 미국 북장로교에 앨런이, 1885년에는 언더우드가 선교 했다. 그래서 한국은 장로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장로교의 창시자는 프랑스사람 장 칼뱅이다. 신학자이고 법학자이고
교회정치가 이고 신정일치주의자로 기독교 윤리와 도덕을 추창한 창시자다. 천주교에 반항한 종교 분리자이고 종교개혁자로 이단자로 발부칠곳이 없었던
종교 망명자였다. 기독교는 천주교와 구분해 프로테스탄트라고 했다. 천주교에 반대했다는 뜻에서 반항자라는 뜻도 된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독일사람
루 터는 1517년에 95개조항의 천주교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부쳤는데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로부터 12년후인
1529년에 장 칼뱅이 슈파이엘 국제회를 열고 천주교회의 부당성을 선포하고 개혁파들이 항의문을 발표했다. 이 때부터 천주교에 반대한다는 뜻인 프로테스탄트란
말을 이들에게 사용했다. 1533년에는 파리대학 총장인 친구 니콜라 콥이 루터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는데 이연설문을 칼뱅이 써서 주었다는 이유로 두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독일로 망명했다. 이 일로 칼뱅은 파리에서 영영 살지 못하게 됐다. 기독교 강요로 개신교 대변 칼뱅 1536년 칼뱅은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강요 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를 출판했다. 이로서 칼뱅은 전 프로테스탄트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1541년 제네바에 정착해 23년동안 부패의 도시 제네바를 도덕의 도시 종교 윤리가 살아 있는 도시 칼뱅주의 도시로 종교개혁을 하고 신정일치의
꿈을 실현했으며 노동윤리를 정립하고 주민의 생활 수단으로 시계를 만드는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시켰다. 칼뱅은 신학석사이면서 23살에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고 새벽에 일어나 밤 자정까지 공부만하는 교회 정치가라고 할만한 정치가다. 교회 헌법에 당회 목사 장로 그는 제네바에 개혁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헌법을 만들었다. 이 헌법은 수정을 거듭하면서 제네바 교회 헌법으로 지금까지 내려 온다고 한다. 그는 또 1537년 아카데미를 세우고 칼맹주의와 목사가 될 사람들을 교육시켰으며 1959년에는 정부를 설득해 제네바
대학교로 발전 시켰다. 그가 만든 교회 헌법은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령에는 교회 정치는 국가의
간섭이나 누구의 간섭도 받을 수없으며 오직 목사 장로 집사 교사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당회제도를 만들었다. 칼뱅은 종교 재판소 목사 판사 제네바시에는 당시 종교법원이 있었는데 칼뱅은 이법원의 책임자로 4년동안 일하면서 제네바시에 신정일치제도를 확립하고 교회의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켰다. 당시 제네바 인구는 1만3000명이었는데 3개의교구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시민들이 일주일에 세번씩 예배에 출석케 했으며 매월 수 금 예배에도 참석을 강요했고 만일 이유없이 결석하면 벌금을
내게 했으며 게으른 신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직분제도도 만들었다. 종교법은 목사 5명 장로 12명 합 17명으로 조직토록했으며 이를 제네비시의 신정일치제도를
실천하는 중추기관으로 만들고 교회의 규율과 시민의 도덕을 관장하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시 행정 제도를 혁신했다. 칼뱅은 목사로 종교 법원 판사역할도 했다 (당시에는 목사가 되기 위한 안수제도는 없었다). 그의 성경해설여하에 따라 죄의 경중이 결정됐다. 그는 시정을 관리하며 음주 방탕 저속한 노래 등을 금지시키고 교회 규율을 어기면 신도들을 투옥시키고 추방하고 사형도 했다. 춤췄다고 투옥하고 설교를
듣지 않고 웃엇다고 투옥하고 부모를 때린소녀를 목잘라죽이고 귀신 쫓는 마법사도 사형시켰다. 4년동안 종교 재판소에 있으면서 76명을 추방하거나
투옥시켰고 54명을 처형해 죽였다. 칼맹은 “기독교 강요”와 맞지않는 해석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처형 했다. 그의 친구이고 스페인의 철학자이고
신학자로 혈액순환을 발견한 의학자(미카엘 세루베투스 1511-1553)가 칼맹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비판했다고 감옥에 투옥시켰는데 탈출했지만 한 달만에 잡아 화형시켰다(42세) 영국의 청교도는 한국 장로교 영국 등 유럽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칼뱅이만든 교회조직 헌법으로 제네바시를
개혁한 것처럼 당회와 장로를 중심으로한 칼뱅주의 신학으로 종교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칼뱅의 종교윤리가 기독교
복음주의 신앙의 기본이라고 믿었고 신앙생활을 청렴결백하게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