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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는 청교도파

창시자 장 칼뱅. 땡스기빙의 유래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통털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천주교와 신교로 대별한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는 11%, 신교신자는 22%다(불교신자는 23%). 

기타종교가 1%고 나머지 43%는 무종교다(2012 현재).

인천시 소사구는 100평방미터에 교회가 하나씩 있는데 

이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가던 뒤로가던 옆으로 가던 

10미터만 가면 교회가 하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범죄는 줄기는 커녕 날로 늘어만 간다.

 

한국장로교는 미국청교도

한국은 1884년에 미국 북장로교에 앨런이, 

1885년에는 언더우드가 선교 했다. 

그래서 한국은 장로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장로교의 창시자는 프랑스사람 장 칼뱅이다. 

신학자이고 법학자이고 교회정치가 이고 신정일치주의자로 

기독교 윤리와 도덕을 추창한 창시자다. 


천주교에 반항한 종교 분리자이고 종교개혁자로 

이단자로 발부칠곳이 없었던 종교 망명자였다. 


기독교는 천주교와 구분해 프로테스탄트라고 했다. 

천주교에 반대했다는 뜻에서 반항자라는 뜻도 된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독일사람 루 터는 

1517년에 95개조항의 천주교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부쳤는데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로부터 12년후인 1529년에 장 칼뱅이 

슈파이엘 국제회를 열고 천주교회의 부당성을 선포하고 

개혁파들이 항의문을 발표했다. 


이 때부터 천주교에 반대한다는 뜻인 

프로테스탄트란 말을 이들에게 사용했다.


1533년에는 파리대학 총장인 친구 니콜라 콥이 

루터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는데 

이연설문을 칼뱅이 써서 주었다는 이유로 

두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독일로 망명했다. 

이 일로 칼뱅은 파리에서 영영 살지 못하게 됐다.

 

기독교 강요로 개신교 대변 칼뱅 

1536년 칼뱅은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강요 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를 출판했다. 

이로서 칼뱅은 전 프로테스탄트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1541년 제네바에 정착해 23년동안 부패의 도시 제네바를 

도덕의 도시 종교 윤리가 살아 있는 도시 칼뱅주의 도시로 

종교개혁을 하고 신정일치의 꿈을 실현했으며 

노동윤리를 정립하고 주민의 생활 수단으로 

시계를 만드는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시켰다. 


칼뱅은 신학석사이면서 23살에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고 새벽에 일어나 

밤 자정까지 공부만하는 교회 정치가라고 할만한 정치가다.

 

교회 헌법에 당회 목사 장로

그는 제네바에 개혁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헌법을 만들었다

이 헌법은 수정을 거듭하면서 제네바 교회 헌법으로 

지금까지 내려 온다고 한다. 


그는 또 1537년 아카데미를 세우고 칼맹주의와 

목사가 될 사람들을  교육시켰으며 

1959년에는 정부를 설득해 제네바 대학교로 발전 시켰다. 

그가 만든 교회 헌법은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령에는 교회 정치는 국가의 간섭이나 누구의 간섭도 받을 수없으며 

오직 목사 장로 집사 교사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당회제도를 만들었다.

 

칼뱅은 종교 재판소 목사 판사

제네바시에는 당시 종교법원이 있었는데 

칼뱅은 이법원의 책임자로 4년동안 일하면서 

제네바시에 신정일치제도를 확립하고 

교회의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켰다. 


당시 제네바 인구는 1만3000명이었는데 

3개의교구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시민들이 일주일에 세번씩 예배에 출석케 했으며 

매월 수 금 예배에도 참석을 강요했고 

만일 이유없이 결석하면 벌금을 내게 했으며 

게으른 신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직분제도도 만들었다. 


종교법은 목사 5명 장로 12명 합 17명으로 조직토록했으며 

이를 제네비시의 신정일치제도를 실천하는 

중추기관으로 만들고  

교회의 규율과 시민의 도덕을 관장하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시 행정 제도를 혁신했다. 


칼뱅은 목사로 종교 법원  판사역할도 했다

(당시에는 목사가 되기 위한 안수제도는 없었다).


그의 성경해설여하에 따라 죄의 경중이 결정됐다. 

그는 시정을 관리하며 음주 방탕 저속한 노래 등을 금지시키고 

교회 규율을 어기면 신도들을 투옥시키고 

추방하고 사형도 했다. 

춤췄다고 투옥하고 

설교를 듣지 않고 웃엇다고 투옥하고 

부모를 때린소녀를 목잘라죽이고 귀신 쫓는 마법사도 사형시켰다. 


4년동안 종교 재판소에 있으면서 

76명을 추방하거나 투옥시켰고 

54명을 처형해 죽였다. 

칼맹은 “기독교 강요”와 맞지않는 해석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처형 했다. 


그의 친구이고 스페인의 철학자이고 신학자로 

혈액순환을 발견한 의학자(미카엘 세루베투스 1511-1553)가 

칼맹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비판했다고 

감옥에 투옥시켰는데 탈출했지만  

한 달만에 잡아 화형시켰다(42세) 

 

영국의 청교도는 한국 장로교

영국 등 유럽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칼뱅이만든 교회조직 헌법으로 제네바시를 개혁한 것처럼 

당회와 장로를 중심으로한 칼뱅주의 신학으로 

종교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칼뱅의 종교윤리가 기독교 복음주의 신앙의 기본이라고 믿었고 

신앙생활을 청렴결백하게 잘 했다. 


그래서 이들을 분리주의자 또는 청교도puritan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1560년). 


당시 영국교회는 국법으로 운영하는 체제였고 

허가 없는 교회는 불법이고  위반자는 투옥 추방 사형 시켰다. 

헨리8세가 만든 성공회가 있었지만 

모든 의례는 천주교와 같았기 때문에 

장로중심의 칼뱅신학에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칼뱅신학에 맞는 회중교회

(당회와 목사 장로 집사 교사가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었지만 이는 불법이어서 왕실과 지주층과 구 세력들로부터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결국은 종교적 대립과 정치적 투쟁으로까지 번지게 되었고 

신앙생활을 할수없게 됐다. 


영국에는 청교도들이 세운 두개의 회중교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1608년에 네덜란드 암스텔담으로 피난했고 

다른 하나는 1609년에 네덜란드 라이덴시로 피난을 했다. 


이들은 12년간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인쇄소를 만들고 칼뱅주의 교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책을 

인쇄해 영국으로 밀수하다 적발 돼 

목사는 투옥되고 인쇄소는 몰수 됐다. 


이들의 칼뱅주의 신앙은 조금도 굴함이 없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

 

신앙의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일을 선두에서 주장한 사람은 

존 로빈슨 목사와 신자 윌리암 부르스터였다

로빈손 목사는 아메리카로 가는 데서 빠지고 

부르스터는 부인 등 35명의 청교도들과 함께 아메리카로 이주하기로 했다. 


이들 35명의 배삯은 700 파운드였는데 영국 런던의 무 역회사에서 

담보 없이 후에 미국에가서 갚기로하고 빌렸다. 


35명의 청교도들 The Pilgrim Fathers 은 

영국 싸우샘튼 항구에 도착했다가  미국으로 향하려 했지만 

배가 두번이나 고장이 나서 플리머스 Plymouth항에서 

미국 으로 떠나는 181톤급 메이풀라워Mayflower 호에 합승하게 됐다. 


이 배에는 일확 천금의 꿈을 갖고 아메리카로 이민가는 

상인들이 이미 승선 해 있었다. 

메이훌라워호는 1620년 9월16일 시속 2노트로 

미국을 향해 떠났다. 

남자 72명(이중 성인은 44명), 여자 29명(부인 18명, 미혼녀 11명)

합계 101명이다(100명이란설도 있고 102명설 도 있다). 

배에서는 물이 없어 세수도 못하고 

불이없어 찬음식을 먹는등 고생했다. 

 66일만인 11월11일에 보스턴 남단에 있는 

케이프 코드Cape cod 반도 프로빈스타운Provicetown에 도착했다.

 

메이플라워 규약

이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메이플라워 규약The Mayflower Contract을 만들었다. 

“하난님의 이름으로 아멘하라 (중략)버지니아 북부지방에서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하고자 항해를 시도 했다.(중략)우리는 모두 여기에 

복종할 것을 계약한다. 이에 우리의 이름을 서명하다.


이 규약으로 모두 청교도인 월리암 부르스터의 지휘아래 

단결했고 행동통일이 가능해 졌다. 

이로서 101명은 모두 엄격한 청교도 신앙을 지키게 됐다. 


청교도들은 “제네바성경”을 들고 왔다. 

이 성경은 칼뱅의 도시 제네바에서 1560년에 만든 것인데 

최초로 성경에 숫자를 달아 장과 절로 나누어 만든 

최초의 영어성경이다.

 

청교도들의 미국도착은 이민 제2진

이 청교도들의 미국도착은  이민 제2진이다. 

최초의 제1진은 이미 1607년에 105명이 제임스타운에 정착했다. 


제2진으로 도착한 청교도들 101명은 11월11일에 

프로빈스타운에 도착해 있다가 12월21일에 

플리머스Plymouth로 정착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원주민 인디언의 

식량저장소에 들어가 옥수수를 약탈했다. 

한겨울에 먹을 것도 없고 겨울옷도 없어 

추위에 떨다 모두 폐결핵과 독감에 걸려 50명이 죽었다. 

생존자는 51명이었지만 그중에 성한사람은 6-7명이었다.


주위에 있던 원주민 인디언들은 

주위에 들어온 백인들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인디언 추장 마사소잇이 청교도촌을 포위고 처들어 왔다. 


마사소잇은 병들고 굶주리고 헐벗고 떠는 그들을 보고 

식량과 침구를 주어 연명하게 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농사를 지어야 할텐데 땅이 없었다. 

인디언들은 놀고 있는 땅(2.5 에이커)을 주어 농사를 짓게 했지만 

농사법을 아는사람이 없었다.

원주민들은 옥수수 보리 밀 감자 호박 등을 재배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바다에서 고기 잡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마사소잇 추장은 청교도들을 도와 

가을 추수하기까지 돌보아 주었다.

 

추수감사 축제

마침 그해에는 큰 풍년이 들어 

많은 추수를 하게 됐다. 청교도들은 기쁨에 넘쳐 감사제를 했다. 


추장 마사소잇은 부하 90 여명을 거느리고 

사슴 5마리와 야생 칠면조, 옥수수튀김 등을 들고 축제에 참가했다. 

그 때가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축제는 여러날 동안 이어졌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들은 승리의 기쁨이었다. 


이 축제가 미국의 땡스기빙의 시초가 됐다. 


마사소잇과 청교도들은 이와같이 평화적이고 친밀하게 잘 지냈지만 

인근의 다른 인디언 부족들은 

마사소잇추장은 친 청교도파라고 낙인찎고 공격해 왔다.

 

믿을 수 없는 청교도 야비해

청교도들은 이들과 평화교섭을하자며 

특별한 만찬을 베풀고 인디언 추장 4명을 초대했다. 

만찬에 참여한 추장들을 일시에 공격해 죽였다. 

그리고 목을 잘라 긴 장때에 매어 20년 동안이나 

프리머스청교도 타운에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영국에서는 

제 3진 4진 등 신천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고 

미국을 식민지화 했다. 


인디언들은 이 아메리카 넓은 땅을 백인에게 

뺏기며 쫓기며 노예가 됐고 교육도 못받고 착취를 당하며 

백인이 만든 수용소에 같혀 바깥 세상도 모른채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신세가 됐다. 


백인의 평균 수명은 78세로 80 에가깝지만 

인디언은 40세도 안 된다고한다. 

인디언은 문자가 없어 그들의 역사적인 기록이 없다. 

청교도들은 재산과 경제관념이 강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뺐다. 


(이 칼럼은 www.seoulvoice.com에서 다시 볼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20141120 제 408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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