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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충성한 사람들

2015.03.17 15:02

남송 조회 수:464

신에게 충성스런 사람들

정종진 

오래 전 서양에서는 물론이고 터키에서도 신전은 거창하게 지었다. 벽 두께가 10피트이상 되게 지었던 빌딩의 반파 옛터도 있고, 지금 여유가 생기니 다시 복구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기둥도 없이 돔 형식으로 지어졌던 어마어마한 신전들이 지금은 다른 신을 섬기는 성당이나 모스크의 얼굴로 존재하기도 한다. 

옛날엔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스탄불에 들어와 멋대로 설쳤고 이 땅의 역사를 이끌었고 신전을 건축해 놓았다. 그리스인보다 더 사나운 로마인들이 침공해 들어오니, 건물들은 정복자들이 원하는 로마 신전으로 만들어져야만했다. 땅은 터키 땅인데, 북 치고 장구 친 기술자들은 그리스인들이며, 신전과 신권을 실제 장악한 주인은 로마인들이었다. 

어떤 신전 현관에는 신에게 제물 바치던 제단격인 대접 모양의 거대한 돌 항아리가 있다. 돌 항아리 주위에는 신의 위력을 보이는 뱀 두 마리가 칭칭 감고 올라가는 형상이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이 뱀들은 당시 집권층이던 로마인들이 신성시하고 숭배하던 동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터키에 동로마제국이 형성되면서 예수를 섬기게 되니, 신전은 성당으로 바뀌었다. 성당에서는 그 돌 항아리를 성수 담는 성수그릇으로 사용했다. 크리스천들은 뱀을 악마의 상징으로 보아 성스러운 성당 안에 뱀의 형상을 둘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당시 신자들은 뱀의 형상이 둘러싸인 돌 항아리의 물을 찍어 바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 중얼거렸다. 뱀이 감싸고 있는 항아리의 물을 찍어서 십자가를 긋기는 좀 기분 잡쳤겠지만, 너무 거창하고 정교한 돌 항아리를 파손시키기 또한 아까웠던 모양이다. 

이런 예는 많아서 성당으로 표정을 짓게 된 로마신전들 내부에 여기저기 예수상과 마리아상을 조각하든가 모자이크해 놓았다. 그러나 세태는 또 바뀌어 전쟁 승리자들이 그곳을 이슬람 세상으로 만드니, 성모상과 예수상을 벽으로 가리고 꾸란의 성구를 써 붙여 놓았다. 성령 충만하던 성당은 이교도의 사원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무슬림들은 그들 신앙에 따라 건물 안팎을 색칠하고 장식하여 겉보기에는 흠 없는 이슬람 사원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모하메드 이외 구원자는 없다”나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꾸란의 성구가 새겨진 벽을 깨면, 성모상과 예수상의 모자이크가 미소 지으며 나타난다. 오랜 세월 동안 숨 못 쉬고 가려져있던 성모상과 예수상은 먼지를 닦아내니 아직도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그러나 또 한 껍질을 벗겨내면 로마 신들이 거주했던 신전의 잔해가 천천년 동안 벽속에서 멀쩡하게 숨 쉬고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 마지막 정력까지 평생 신을 위해 생애를 바치며 신전을 짓던 수많은 벽돌공이나 타일 기술자들은 죽은 뒤 어디로 갔을까? 천국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신선이 됐을까, 길 잃은 영혼으로 우주진과 함께 태양계 은하계를 떠돌까? 

신전엔 많은 신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다보니까, 평생을 신에게 바친 신자들도 낙동강 오리알이 됐을 수 있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신들의 비위맞추며 일했어도, 여러 신 중 아무도 도맡아서 책임져 주지 않으면 허탕이다. 공동부모를 가진 아기가 갈 데 없듯이, 어떤 신이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것인가? 다행히 당시 그리스인들은 사후에 천국 가기 위해서가 아니고, 살았을 때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서 신을 섬겼다. 신을 노엽게 하여 신이 당장 목숨을 빼앗아 가면, 농사지은 쌀은 누가 먹으며, 약혼해 놓은 여자는 어떤 남자가 차지할 것인가? 살려고 섬긴 신이니까, 천국 못가도 억울할 건 없다. 

그러면 한 분만을 신으로 모시는 크리스천으로서 예수상을 조각하고 성전건축을 위해 최후까지 일하다 죽은 모자이크 화가나 미장이는 어디로 갔을까? 또 성당을 개조하여 모스크로 리마들링하고, 꾸란 성구를 조각하며 알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인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 역시 자기 신을 위하여 운명하는 순간까지 죽도록 충성했다. 신앙의 미흡한 데가 있든가 그들이 개인적인 욕심을 생각했다면, 저 천장에 매달려 평생을 바쳐 일하진 못했을 것이다. 전심전력으로 신에게 헌신한 영혼을 이 핑계 저 교리로 뒤틀어, 지옥으로 보낸다면, 그 신이 이상한 신이고 그 신의 세계가 무가치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여기서 신을 위해 몸 바쳤으며 그들의 신앙은 얼마나 돈독했을까? 온갖 신들의 멜팅팟인 이 자리에서 삶을 바친 일꾼과 신자들이 믿던 신은 시대에 따라 모두 달랐다. 그들의 신앙심은 엄청났으며 소망 가운데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틀림없이 천국이건 극락이건 각자 믿는 대로 서운하지 않게 좋은 데로 찾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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