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05 10:54
성직자와 바람 핀 여자 성직자와 결혼하는 여자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도대체 목사님이나 기타 성직자들과 결혼하고 애들 낳고 사는 사모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도대체 사랑놀이를 어떻게 하는지 무슨 재미로 사는 것일까 궁금했다. 신자들 중에는 예쁜 성도도 있고 귀여운 사람도 있고, 또 말을 붙이는 것조차 징그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어찌 이런 느낌이 없겠는가. 이런 감정이나 느낌이 없다는 것은 무 감정인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돌이나 나무토막이 아닌가. 목사님이나 성직자들도 직책상 공평하게 대하고는 있으나 개중에는 말 한 마디 더 붙여보고 싶은 어여쁜 여성분도 있을 것이다. 또 사모님에 대해서도 가끔은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굳게 고쳐먹고 기도도 염불도하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러면 그럴수록 뜻한 대로 안 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설교나 강론이나 설법이나 기도도 많이 했을 것이므로 더더욱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이상해서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 마음이지만 다스리기 매우 힘들어질 때도 많은 것이 우리 인간이고 창조물이다. 어린이 학교 교사나 직분 맡은 독신 여성이 목사님, 스님 하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종교에 대한 일을 상담해 오면서 종래에는 자기 개인 일을 상담하기 시작한다. 개인 상담은 물론 단독대담으로 발전한다. 시카고에는 약 30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우선 300개의 교회를 보면 신자가 불과 100명도 안 되는 교회가 대부분이고, 몇 개의 교회는 몇 백 명 또는 천명이 넘는 신자들이 매주 모이며 여러 조직체들이 있어 제각기 활동하고 있다. 부흥회도 많이 한다. 우선 교회가 300개이니 최소 300명의 담임목사가 있고 이에 부 목사와 교육목사를 합치면 350명이 훨씬 넘을 것이며, 또 교회를 하지 않는 무임 목사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목사님들이 하나같이 성경대로 살수는 없을 것이다. 이중에는 훌륭한 목사도 있고,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주는 돌팔이 의사 같은 목사도
있을 것이다. 불교 불당도 시카고에 7,8개가 있다. 법회나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해서 1부, 2부 3부로 나누어서 몇 백 명씩 신자들이 찾아와 설법과 설교를 듣고 은혜 받고 또 아무개 목사님 교회 아무개 불당에 다닌다고 하며 자랑하기도 한다. 어라,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누구는 누구와 친하다, 자주 만난다, 심방을 자주 간다, 등등 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신자들은 소문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받드는 성직자는 내가 잘 아는데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극구 감싸고 보호한다. 그러나 평상시에 성직자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던 신자나 감사헌금을 많이 안 내고 건축헌금도 많이 내지 못해 주눅이 들었던 신자들이 차츰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피며 발언하기 시작한다. 또 헌금도 안 내고 건축헌금도 안 낸 이유를 성직자의 탓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성직자 옹호하는 편과 반 대 하는 편으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외부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신도들은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회의도 한다. 자세히 알아보니 모 여자신자와 연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는 아니라고 잡아뗀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사실은 여하간에 소문을 낸다. 언론에서도 알게 되어 세상을 더 놀라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사랑이다. 목사님들이나 스님들이 자비와 사랑을 외친다. 사랑하는 방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 많이 들은 성경구절이다. 그러나 이웃이라고만 했지 누구란 구체적인 지칭이 없고 사랑의 질이나 깊이나 양을 어떻게 하라는 지침이나 방법을 이야기하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했다. 얼마나 어느 정도로 어느 만큼 어떻게 사랑하라는 요령과 방법이 없다. 다만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 했다. 인연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하튼 항상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인데, 생각해보자 목사님이나 스님과 연애한 여자를 생각 해보자 성직자와 연해한 여자를! 몰래 성직자와 밀회를 할 때 이 여자는 얼마나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을까! 수많은 신자 틈에 끼어서 사랑하는 이의 설교를 들을 때, 설법을 들을 때 구구 절절 마음에 와 닿고 구구절절 얼마나 좋았을까. 여자 쪽에서 더 즐겁고 기뻐했을 것이다. 왜냐구요? 이 기쁨은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몰래하는 사랑의 깊이는 당사지만의 비밀이다. 신자들이 알면 당장 목사님은 교회를 떠나야 되고 스님은 불당을 떠나야 하고, 세상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당해야할 수모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며, 성직자로서는 성직을 떠나야 하는 사형선고다. 누구보다 이 여자는 이것을 잘 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시련과 고통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이를 무릅쓰며 생명을 걸고 자기를 만나준다는 것에 사랑의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직자와의 연애는 이 세상 누구와의 연애보다 한 수위의 사랑이 아닌가! 내가 이래 뵈도 이런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만나러오는 이 사람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