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3 16:29
유배문화가 꽃 핀 호남. 시대적이고 풍류가 있는 고장
유배문화란 유배당한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다.사대부들이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면서
남겨 논 생활 풍습 언어 등이
그 지방의 서민들에게 스며들어
그 고장의 문화로 고착화 됐다.
궁에는 항상 600 명이나 되는 궁녀와 내시가 있었다.내시는 임금의 최 측근이며
지밀상궁은 임금의 잠자리 수발까지 드는 나인으로
임금에 대해서는
중전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궁녀다.
바느질하는 궁녀는 바느질만 하고 임금님 수라상 차리는 궁녀는 수라상만 차리고
물 깃는 궁녀는 물만 길면서 각자 맡은바 자기 일만 하면서
일생을 궁에서만 살다 궁 밖 구경을 못하고
죽어서는 아무 흔적도 없이 궁녀들 만 묻히는
공동묘지(지금 여의도 1번지 국회의사당 자리)로 갔다.
내시나 궁녀들이 궁중의 비밀을 제일 많이 알고 있지만
궁녀나 내시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문서가 없어 궁중의 비밀을 알 수가 없다.
단지 궁을 드나드는 사대부 양반들과
임금의 연척이나 중전(왕비)의 연척을 통해서 만
궁중 문화가 이조 500년을 내려오면서 점차적으로 대중화 됐다.
음악도 궁중음악을 정악이라 했고
악기도 궁중 연회를 위한 것 들이었다.
연회가 있을 때면 악공들이 궁에 들어가 풍악을 울렸고
환쟁이들도 궁에 행사가 있을 때 들어가
행사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다.
서민들의 의식주와 관혼상제에 대한 의식도
궁중에서 유래 됐다.
죽어서 마지막으로 꽃상여 타고 가는 것도,
장가 들 때 신랑은 관복입고 신부는 쪽두리 쓰고 가마 타는 풍습도,
제사 때 지방 쓰고 상 차리는 것도 궁중의식에서 왔다.
이렇게 궁중 문화가 일반 서민들에게 확산되는데큰 몫을 한 사람들이 바로
귀양살이 한 사대부 양반들이다.
이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귀양살이 한 사대부들은 모두 1905 명이다.
이들이 실록에 기록된 것은그래도 한다하는 거물 고관대작이다.
곤장이나 몇대 맞고 죽어간 조무래기들은 실록에 기록할 리도 없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나라에 크게 영향을 줄 만큼 큰 죄를 지고
귀양 간 양반 쯤 돼야 실록에 기록 됐을 것이다.
또 역적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당장 죽임을 당했으니
귀양살이 목록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귀양살이 한 사람들은적어도 귀족이나 그 인척 사대부로 나라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
큰 죄를 짓거나 당쟁으로 죄도 없이 죄인이 된 최상류 층 사대부 와 양반계급이나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재나 임금의 연척 등이다.
귀양살이 한 1905 명 중에 거의 반에 해당하는
이는 전체의 반에 가까운 48 %나 되는 수치다.915 명은 호남으로 귀양을 갔는데
영남으로는 670 명이 갔는데 전체의 35%이고충청도에는 320 명으로 17 %에 불과하다.
함경도나 평안도 강원도에도 있겠지만
이조실록에 없는 것을 보면 별 볼일 없었던 사람들이 갔을 것이다.
이조 말에도 궁에 돈이 없어요즘말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다.
임금 앞에서 춤을 추던 무희들과수라간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이 궁에서 나오게 되자
이들을 모아 “명월 관”이란 신식 요릿집을 내서큰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 동아일보 사 자리 근처에 있었던 명월관이다
동시에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3층짜리 조선 기와 집이었다고 한다.
명월관의 주인은 안순환이라는 사람인데수라간 숙수(요리사)로 궁중요리를 하던 사람이다.
궁중에 연회가 있을 때임금 수라상을 차리던 일류 궁중요리사와
악공들을 모아다 논 명월관은임금님 앞에서 춤추던 궁중 무희들과
궁을 방불케 하는 축소판 궁궐이었다.
장안의 큰 지주(地主) 집 자식들, 사대부 자식들,장안은 물론 조선 천지에서 한다하는 할량들이 몰려와
밤낮으로 가무를 즐기며 도까자루 썩는줄 모르고 술타령을 했다.
명월관 주인 안순환은 또최신식 원형의 극장 “원각사”(1908)를 세우고
이인직의 신소설 “은세계”를 무대에 올렸는데
당대의 명창 김창환도 여기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 소설은 탐관오리가 백성을 잡아다 매를 치고재물을 뺏는 내용이었고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 신소설의 효시로 장안의 인기가 대단 했다고 한다.
대원군 이하응의 손자인
이원군은 이 연극에서 양반을 탐관오리로 묘사한 것을 보고창(唱)을 하는 김창환을 불러
공연을 중지 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이조 문화는 궁중 문화다. 이조뿐이 아니다. 서양의 크래식 음악이나
조선의 고전음악이나 의상도
왕과 황제를 중심으로 발전 해 왔다.
호남이 한양의 궁중 문화와 사대부와 양반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계승한 고장이다.
그래서 호남의 먹 거리는 궁중음식에 가장 가깝고
풍류 또한 그러하다.
삭탈관직 된 사대부들의 유배생활이란
인간이 참기 어렵고 깊은 인고의 날 들이다.
써어 빠진 고려 천지를 개벽 한 삼봉 정도전도
라주에서 10년동안 호남 서민들과 부대끼면서 국정철학을 터득했다.
고려의 썩은 불교 문화를 타파와 토지제도 개혁을 명분으로
이씨 조선을 개국했다.
임금이 무능을 보충하는 방편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내각제개혁도 했다.
그가 쓴 경국대전은 이씨조선 국정경영의 교본이 됐다.
송강 정철은 정약용과 같은시대 사람으로 유배지에서
정약용을 강진으로 수차 방문해 차를 마시며 담론 했으며
“사미인곡”과 “속 사미인곡” 등 인간 고뇌를 담아 낸 글을 지었다.
정조 임금 때 천주교 신자로 서학자인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를 방해 하고 중국 신부인 주문모의 도주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영남으로 유배됐다 호남 강진으로 옮겨18 년의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책을 썼다.
호남은 궁중 문화의 영향을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고장으로
풍류가 있고 먹 리가 있고 다도(茶道)가 있고
지필묵(紙筆墨)이 있어 서예가 있고
물 깜이 있어 사군자와 그림이 있는
인심이 좋은 고장이다.
요즘에도 샘터 등 양질의 출판사가호남에 많이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호남인 들을 풍전세유(風前細柳)라 했다.
시대 감각이 있고 시대에 맞추어 살 줄아는
시대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이 고장이다.
(이글은 www.seoulvoice.com 과
www.cafe.daum.net/mkchicago 문경 난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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