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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일기. 한줄도 안 바꿔

2014.05.17 13:48

남송 조회 수:1282


노무현 5년 청와대  5년 실록은 . 


18 년 간 장기 집권한 

박 정희 대통려령의 기록보다  많다.     

         

한국의 사극을 보면 진짜 역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본 줄거리에 약간의 초를 쳐서 맛을 내 

사극을 더 재미있게 시청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지만 

맛을 내기는커녕 사극인지 

가짜로 꾸민 것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도 왜곡이 많다고 걱정한다. 


흥행 위주로 고증도 없이 벼락치기로 만들어서 그런지 

왜곡된 사극이 판친다. 

사실(史實)로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명감을 띠고 정사(正史)에 충실하면서 약간의 초를 쳐 

맛을 내는 것이야 이해 하겠으나 그렇지가 않다. 


당나라 군대와 고구려 군대가 싸우는 장면은 

마치 서양 사극에 나오는 병정들 같다.

중국 땅 일부에 있었던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사극이긴 했지만. 

중극이 동공정을 들고 나와 고구려가


중국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판에 

갑옷이나 투구 등 전쟁 도구들이 고구려 풍은 없고 

서양풍인지 중국풍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고 


배경 음악도 서양 음악이 압도적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과 대사만 한국말이다. 

칼 쌈, 마차, 뿔 달린 투구, 갑주, 군복, 방패, 

수통까지도 한국 고전  풍은 없고 영락없는 서부 활극의 한 장면 같다. 


한국의 사극을 현대화한다는 것은 곧 

서양 화(化)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고유 문화를 서양화하는 것은 

한류의 흐름을 타 한국사극을 외국에 수출하겠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 같다. 


옷고름, 저고리, 버선, 대님 맨 바지, 집 세기 군화, 빨간 상모, 

술 달린 군 모, 고깔 옷, 두루마기 군복을 입고 전대를 등에 메고 

전쟁하는 장면을 외국인에게 보여 주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너무 시대에 뒤진 옛날 것 것보다 

약간 서양화 한 것이 보기에 좋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고유문화를 

송 두리 째 빼 버리는 것은 안 된다. 


오히려 한국문화를 알리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조실록과 승정원 일기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우리의 역사기록이고 

세계문화재에 등록 돼 있다. 


잘 보전되어 내려오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우리는 잘 지키고 간수해야 한다. 


이조 500년 역사는

 사관들이 현장에서 직접 기록한 살아 있는 일기다. 

절대 권력자인 임금도 사관의 기록을 

볼수도 없고 

바꾸지도 못했다. 


그래서 승정원 일기는 승자의 기록이긴 해도 

사실에 가깝고 정확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0대 왕 연산은 생모 폐비 윤씨에 대한 승정원 일기 


사초(성종이 연산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유언한 부분)를 보고 


중전이 자기 생모인줄 알고 자랐는데 

길러준 계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모 윤씨는 폐비가 되어 사가로 쫓겨 나 

남편 성종이 내린 사약을 들고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산의 외할머니는 생모 윤씨에 대한 이야기를 

외손자 연산 왕에게 들려주면서 

생모가 사약을 마시고 죽을 때 입었던 

피묻은 옷을 보여 주며 폐비 윤씨가 

죽을 때 입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 때부터 연산은 자기 어머니를 

폐위시켜 사가로 내 쫓고 

사약을 내리게 한 조정 중신들을 죽이고 


성격이 난폭해 져 툭하면 사람을 죽였다. 


어느 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조정 중신들은 

왕 앞에선 벌벌 떨며 입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박원종이 주도한 반정(중종)이 일어나 

연산 왕은 임금에서 왕자로 강등

강화도로 유배 된지 두 달만에 31세로 죽었다. 


임금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것이 승정원 일기다. 


승정원(지금의 비서실)의 도승지(비서실장), 승지(수석 비서관, 6명) 


그리고 문서 출납하는 사관(비서실 공무원 약 30명)이 

임금과 같이 집무 하면서 임금의 거동, 출납문서 등 

국사에 대한일기를 썼는데 

이 기록이 승정원 일지다. 


실록은 임금이 죽은 후에 사관들이 

승정원일지를 참고하여

 임금생전의 치적을 요약한 것이다. 


임금은 실록에 자기의 치적이 

어떻게 기록될는지를 모르고 죽는다. 


 노무현에 대한 

현대판 승정원 일기가 

엉뚱하게 봉하 마을 노무현 사가로 내려 가 

행방이 묘연 해 시비가 일어나자  

시비 끝에 대통령 기록관으로 돌아 왔다. 


노무현일지는 무려 3백 76 만 건이나 된다. 


사석에서 있었던 일, 전화하며 메모한 것까지도 

사료로 기록했다고 한다. 


승정원 일기는 이조 2 대 정종 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해서 

26대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15대 광해군까지의 일지는 소실되고 

16대 인조 이후의 일지 3천 51책 원본(?)은 남아 있다고 한다. 


근대 대통령에 대한 사극이 나올 때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보다 

노무현의 사극이 훨씬 실 감 있게 묘사 될 것이다. 

탄핵에 대한 것도 눈 쌍 까풀 수술 한 것도 있을 것이고 

김정일에게 저자세 정상회담을 했는지도  

nll북방한계선도 양보한다는 말도 

김정일이 먼저 했는지 

노무현이 먼저 했는지도 거기에는 있을 거다. 


이승만 7천 4 백 건, 

18년 집권한 박정희 3만 7천건, 

전두환 4만 2천건, 김영삼 1만 7천건, 

김대중 20만 건의 기록이 있지만 


다 합쳐도 30만 3천 400 건으로 

노무현일지의 12분의 일도 안 되는 분량이다. 


이는 중국, 일본의 수상들보다도 많고 

미국의 클린톤의 8년 기록 7천 7 백만 건보다는 적은 분량이다. 


노 대통령은 자기 청와대 일지에서 단 한 줄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쳐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한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기록은 성남시에 있는 

기록 관(館)에 영구 보존된다.  


이명박 대통령일지도 인수위원회 때부터 기록했다고 한다. 


기록 관은 2007년 11월에 신설되었는데 

지진이나 폭격에도 견디고 

전자 탐지기가 있어 보안이 잘 된 

최 현대식 건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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