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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욕하는 책이 베스트 쎌러라니. 한국절도단.

대마도 불상 돌려달라고. 허 허


일본에서는 한국사람 비판하고 욕하는 책이 나오기만하면 몇 십만부씩 팔려서 베스 셀러가 된다.

한국욕하는 작가들들은 신명 났다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비판하나? 한국을 사실대로 알고 써야 실감나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작가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독도를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사진을 찎으려 하니까 

대통령은 내가 내땅에 왔는데 무슨 특종이라고 사진을 찎느냐고 말했다. 

이후부터 일본에서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혐한 분위가 부쩍늘었고 

한국을 때리는 책이 나오면 무조건 20-30만부가 팔렸다고 

재일 언론인(JP뉴스 대표)이 CBS 래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책내용은 한국사람은 예의가 없다, 목소리가 크다, 지저분하고 위생 관념이 없다, 굉장히 거짓말 쟁이다, 잘못하고도 반성할줄 모른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이런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다. 

그뿐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한국사람들이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도 엄격하게 처벌한다고 한다. 

전같으면 가벼운 벌금으로 끝나던 것도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하고 두달 이상이나 내보내지 않고 있다가 벌금형을 내리거나 추방시키는 일도 비일비재라고 한다. 


일본에가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한류 스타들에게도 이승철 가수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서 

제2 제3의 이승철이 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이승철은 과거 일본을 15번이나 왕래했던 가수인데 독도에가서 음악공연을 했다고 

입국을 거부했다. 그 뿐이 아니다. 

박근혜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7시간 행적을 

무슨 의혹이나 있었던 것처럼 보도한 산케이신문 가토 서울 지국장을 기소 한 이후 

일본 신문들은 150여회에 걸쳐 입이라도 맞춘듯이 가토는 조선일보칼럼을 인용한것 뿐인데 

왜 조선일보는 놔 두고 가토 지국장만 기소하는냐고 비난했다. 

일본 언론은 청와대의 입장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일본 주민들의 혐한 분위기가 고조 됐다. 


이럴 때 한국인 김모씨(70) 등 5명의 절도단이 

일본 대마도 절(매림사)에 들어가 9세기 때 통일신라가 만든 동제 부처상(탄 생불)과 

14세기 일본제 대반야심경 300권을 갖고 나와 반출하려다 

일본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11월 24일 2014). 


때 맞추어 지난 29일 한국의 김종직 문화 체육부 장관과 일본의 시모무라 문부과학상과 

회담이 예정 돼 있었다. 이자리에서 시모무라 상은 2012년에 있었던 

또 하나의 대마도 불상 절도 사건을 거론하며 그 때 한국절도단이 절도해 간 불상을 속히 돌려달라고 재촉했다. 

이에 대해 김장관은  “일제 강점시기에 일본이 한반도에서 반출(약탈)해 간 

문화재 반환을 위한 협력기구를 설치하자”고 역제의했다. 

이에 대해 시모무라 상은 어이가 없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2012년 대마도 불상 절도 사건은 해신신사와 관음사에 있던 

두 불상” 동조여래”상과 금동관음보살좌”상이 한국 절도단에 의해 도난 당한 것을 말한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만든 기록이 있는 불상으로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인 만큼 소유주인 부석사가 되 돌려받아야 한다고 한국불교계가 

소송을 제기 했고 정부는 이를 보관중에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해 왔다. 


일본은 한국문화재 반환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나라다. 

임진왜란 7년동안에 그리고 36년간 한반도를 통치하는 동안 약탈해간 

문화재가 그 얼마인데 불상 한 두개를 돌려 달라며 국제법이니 뭐니 하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일본은 혜아릴수도 없이 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간 것이고 우리는 단 몇개 절도 해 왔다. 

약탈과 절도중 누가 더큰 잘못이고 누가 더큰 죄인가?. 


이 김에 일본으로 끌려간 인간 문화재 도자기공들의 얘기를 해야겠다. 

일본 도자기는 임진애란 때 잡혀간 조선도공들이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은 풍신수길이 1592년 이씨조선 개국 300년이 되는 해에 

총 15만 8천명의 군인을 9군으로 편성해 조선을 침공 해 

7년동안 조선강토를 유린하고 퇴각한 전쟁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상보급로를 차단하고 애국 의병이 일어나자 왜군은 남쪽으로 몰려와 

성을 쌓고 장기전에 들어갔다. 

침공 1년후인 1593년 강화교섭이 시작 돼 4년동안이나 지루하게 계속 됐다. 

풍신수길은 이에 불만을 품고 1597년에 14만의 군대를 재편하고 

다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난이 한참 치열했던 1597년 8월에 소서, 가등, 시마스 등 무장들이 

5만 6천명의 대군으로 남원성을 침공했다. 

이때 남원에서는 조선군과 명나라군 4천명이 사흘동안 밤낮으로 항전했지만 함락되고 

집 몇채만 남았다. 

이 때 시마스 일본 대장은 남원성 외각에 살던 도공들을 포로로 잡아 

배에 태워 일본 규슈로 보냈다. 


시마스 대장은 무장이지만 학문 예술 다도에도 조예가 깊었고 

그가 조선 도공을 무더기로 되려간 이유도 다완(다기와 여러 종류의 도기 주발과 찻그릇 등)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도자기가 귀해서 금 값이었고 대명(대지주)이나 

번주(도지사 등 고관 대작)들도 나무그릇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도공을 데려다 도자기를 만드는것은 황금을 줏는 일이다. 

남원에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은 박평일, 심당길 등 17성(신 이 박 변 림 증 박 차 강 진 최 노 김 정 하 주 심)을 가진 총 80몀이다.


 이들을 태운 배는 풍랑을 마나 표류하다 인적도 없는 해변에 착륙했다. 

생존자는 43명이다. 지금도 이들이 처음 도착한 곳에는 이 사실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고 한다. 


도공들을 포로잡았던 무장 시마스는 1천여척의 함선으로 조선 장군 원균의 함대를 격파했으며 

사천성 싸움에서도 조선군과 싸워 이겼고, 

왜군이 축성한 순천성에 포위 돼 죽게된 소서행장을 구하기 위해 5백척의 전선을 이끌고 가다가 

이순신 장군(노량해전)에게 패하고 간신히 퇴로를 뚫고 목숨만 유지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살아남은 도공 43명은 정착할 곳을 찾아 다니다 

풍광이 고향 남원과 너무도 비슷한 “미산”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도자기를 생산했다. 

여기에 단군을 모시는 자그마한 궁(옥상궁)을 짓고 제사를지내며 

추석에는 조선옷을 입고 콩으로 된 고려병 시루떡을 차려놓고 

조선말로 축문을 읽고 조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다. 


지금도 양력 9월 15일이면 제사를 지내는데 제기와 장구 징 괭과리는 모두 조선제다. 


미산마을에는 지금도 도공 심수관집안에 내려오는 “사쓰마야기 도감(도자기굽는 가마 도감)에 그 때 부르던 조선 노래가 있는데 이노래는 

청구영언에 있는 “오늘이 오늘이소서”로 여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 후손들은 이 미산 마을에서 400년동안 대를이어 살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실화소설 “어찌 고향을 잊히리오”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1968년). 

이를 쓴 저자 시바 료타로(1926-96)는 밀리온 베스트 셀러 소설만 20종을 쓴 일본의 우상 작가다.


남원에서 잡혀온 심당길은 제1세 도공이다. 그 자손들은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구며 

400년동안 현재까지 대를 이어오고 있다. 


12대자손 심수관은 뛰어난 도공이었다. 그는 후손들이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대대로 사용하며 

가업을 이어가도록 했다. 서양식으로는 헨리 1세 2세 3세 하는 식이다. 


십수관은 심당길의 12세 손이다. 

12대 심수관은 1873년에  오스트리아 세계 도자기 전에서 

높이 155 cm의 대형 화병으로 인기를 끌었고 

1876년에도 파리 만국박람회에 122cm 화병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13대 심수관은 교토대학 법학과를 나온 수재로 당시 총리 비서까지 했지만 

아버지 유훈을 받아 도자기기업을 위한 도공이 됐다. 

14대 심수관도 와세다 대학을 나와 도공의 길을 걸었으며 

제 나름대로 독창적인 창작품을 만들려 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말리며 

네가 할일은 네 아들이 도공이 되도록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아들이 15대인 현재의 심수관15세다. 

1998년에 한국 일민 미술관에서 140점의 심수관가문의 도예전이열렸다. 

전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다. 


반면에 심당길과 같이 남원에서 끌려온 도공 박평의의 후손들에 대한 얘기도 전해 내려 온다. 

심당길의 후손들과는 많이 달랐다. 

미산 마을에서 도공들은 도자기로 많은 돈을 벌었다. 

박평의의 12대손은  성을 도고라는 일본 성씨로 바꾸고 일본사람으로 귀화 했다. 

그의 아들은 5살 때 도고 시게노리로 이름을 바꾸고 

도쿄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기대한 대로 외무고시에 합격했다(31세). 


외교관이 된 그는 미국 스위스 독일 등지에서 근무했다. 1941년 2차대전 당시 동조내각의 외무대신이 됐다. 많은 외교관들이 전쟁을 싫어하는 것 처럼 

도고 시게노리도 태평양전쟁을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평화주의자였다. 

하지만 당시 동조내각은 군부내각이었기 때문에 그 뜻이 관철 될 수가 없다것을 알고 

외무대신을 사임하고 야인이 됐다. 


날이 갈수록 전쟁의 패색이 확실해지자 동조 내각은 총사퇴하게 됐고 

스즈키 간타로 내각이 들어서자 평화주의 외교관 도고 시게노리(도공 박평의의 13 대손)를 

다시 외무대신으로 임명했다. 

그는 어전회의에서 포츠담회담 선언을 놓고 군부와 정면 충돌했다. 


포츠담 선언은 13개조항으로 된 일본 항복에대한 문서로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원자탄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지자 

일본 내각은 이를 8월10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천황은 8월15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 때 도고 시게노리는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 하도록 직접 건의하는 등 

인류사상 제일큰 전쟁을 끝내는데 한 몫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전후 전범재판에서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할 때(1941년 12월 7일 새벽) 

도고 시게노리는  외무대신으로 있으면서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20년형을 받고 복역중 1950년 67세로 죽었다. 


그가 수감 생활을 할때 13대 심수관 도공이 면회를 갔었다고 한다. 


도고는 A급전범으로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 돼 있다. 

도고의 자손들도 모두 외교관이 되었으며 일본외교가의 명문이 됐다.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들이 정착한 미산 마을에는 지금도 도자기 마을로 

10여개의 가마가 있고 심수관가와 박평의 집안에 대한 도고 시게노리 기념관이 있다. 


도공 심수관가는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25명의 도공들이 일하고 있고 

전시관에는 심수관가의 역사와 역대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심수관 전시관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도리 시게노리 기념관이 있는데 

이는 시가 세운것이며 동상도 앞에 세웠고 사진과 옥중수기 등이 있다고한다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 일본판참조)

 

(이 차락우 칼럼은 www.seoulvoice.com에서 언제나 볼수 있습니다)

<한국민속 연구원 제 409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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