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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이 비장한 무기. 잠자리 거부.

남성 항복 받기.어우동과 정인숙 


양반과 소실 

1894년에서 97년 사이에 영국의 지리학자이며 

황족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씨는 4번이나 조선을 오가며 

총 11개월 동안 머물면서「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기행문을 썼는데 

이 책이 당시 조선을 서구에 알리는 책으로 

조선을 방문하는 유럽 미국등 서양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지침서가 됐다(14번 재판). 

비숍씨는 여자로서 홀홀 단신으로 미지의 나라 조선에 머므르는 동안 

빈대와 벼룩이 들끓는 주막집에서, 

소 외양 깐 방 쇠 똥 내 나는 방에서 자고, 

변소에서 수채에서 시궁창 썪는 내 나는 서울 뒷골목까지 살피면서 

기행문을 썼다. 


여사는 일본을 통해 배로 부산에 도착했는데 

조선 사람은 볼수가 없었고 세관업무도 독일 사람이 했다. 

서울에서도 소련 군인이 조선 군대를 훈련시켰다. 

제물포(인천)에서도 조선인은 없고 부두에서 

중국과 일본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1897년 1월 현재 부산, 원산, 제물포의 항구에는 

외국인이 11,318명이 있었고 266개의 사업체가 있었으며 

일본 돈과 조선 동전과 수표가 유통되었고 일본인이 10,711명이고 

회사는 230개이었다. 

영국인은 65인이었고 중국인은 2천5백 명쯤 되었는데 

서울과 인천에 주로 있었다. 

비숍씨는 한국 땅인 부산과 제물포에 왔는데도 

일본 사람과 중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하고 조선사람얘기는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제물포에서 서울로 오는데 20리쯤 들어오니까 

비로소 지개를  등에 진 조선 사람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뱃사람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을 

뱃놈이라고 천시하고 혼인도 하지 않는 등 

고루한 유교사상에 저져 부두나 바다가에 사는 것도 일하는 것도 

기피했기 때문이다.

여사가 더 이상하게 여긴 것은 


조선의 선비들은 근엄하고 예의바른데 사랑놀이는 본처와 하는 것이 아니라 

첩실이나 기방의 여자와 한다는 것이다. 

본처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들을 생산하고 제사준비를 하고 

노비를 두고 집안 살림만 하게하고 남편은 밖에나가 바람을 피웠다. 

아내가 이를 힐난하면 질투는 칠거지악이라며 질투도 하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사랑방에 있다가 가끔 안방에 들어가 본부인과는 존댓말을 하면서 

가문과 집안일을 상의하고 다시 사랑방으로 나오는 이런 생활 습관이 

조선 양반님들의 생활상이었다. 

서양 사람으로서는 이런 선비 양반님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신성한 母性. 욕구의 과(過) 不過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 교수들이 6년 이상 동거(기혼자포함)한 

229쌍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남자들이 여자 파트너의 성적욕구를 지속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일로 과소평가 한다는 것이다. 

즉 성적욕구 불균형이 지속되는데서 불행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불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남녀간에 성적욕구의 

과(過)와 불과(不過)에 대한 불균형을 치유하는 방법은 

상호 소통을 잘 하는데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즉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배우자의 성적욕구를 

과소 평가하는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악처가 된 것은 

소크라테스가 아내의 성적욕구를 과소평가(무심)했기 때문이다. 

독수공방을 지키다못한 크산티페가 왜 부부관계를 멀리하느냐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당신은 아이들의 어머니요 신성한 모성이란 말이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모성으로서 존경하겠소라고 대꾸하자 

크산티페는 뭐라고요 내가 언제 당신의 존경을 바란다고 했단 말이오라고 

불만했다. 

다시 말하면 소크라테스가 악부(惡父)이지 크산티페가 악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설화집(고금소총)에 있는 동교이곡(同巧異曲)에 나오는 

선비 이야기도 이와 같다. 

기생들과는 외도로 날을 새우며 아내와는 가뭄에 콩나듯 잠자리를 치루는 

선비의 아내가 화가 단단히 나서 힐난하자 

선비는 “나와 부인으로 말하자면 서로 공경하고 존귀하게 여겨서 

함부로 하지 못하므로 욕정을 풀수 없지만 

기생은 정이 통하는 대로 할 수 있고 음탕한 재주를 다 할 수 있으니 

그런 연유로 이리 된 것이오” 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언제 나를 높여 달랬소 공경해달랬소”라며 

남편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고 한다.


철학자 이황 이 퇴계는 수크라테수와는 달라.

동양철학자 퇴계는 밤퇴계와 낮퇴계라는 두 이름을 갖고 있다. 

그는 활기찬 부부생활을 했다. 제자들에게도 부부금실에 대한 서신을 

심심치 않게 보냈다. 성욕은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2대 본성이라며 

성욕은 인간의 본초적 본성이기 때문에 억지로 막으면 좋지 않다고 했다. 

식욕은 참을 수가 없다 굶으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욕은 참고 있어도 생명에는 당장 지장이 없다. 

그래서 성욕의 소중함을 식욕만큼 소중하게 깨닫지 못하지만 

이는 씨를 이어가야하는 인간 본능의 사명도 있다. 

활달한 부부금실은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생활에 활력이 된다. 

여성도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면 건강은 물론이고 

삶에 활기가 넘쳐나 가정생활에도 충실해진다고 했다. 


질투의 상징 윤비. 질투 없는 사랑. 

이조 9대임금 성종은 13세에 왕이 되어 25년 동안 보위에 있다 

38세에 죽었는데 왕비 3 명과 9 명의 후궁을 두어 12 명의 부인을 거느리면서 

16남 12여 28 남매를 두었다. 

성종이 임금이 되기 전 어려서 사가에 있을 때 정분이 났던 

연상의 여인 윤 씨가 우여곡절 끝에 후궁으로 입궁했다. 

마침 중전 한씨(공신 한명회의 딸)가 죽자 

후궁 윤씨는 왕비가 되었고 왕자 융(10대 연산군)을 생산했다. 

중전 윤 씨는 꿈에서만 그리던 연하의 옛 연인(戀人)인 성종과 만났으니

금실은 남달리 좋았다. 

하지만 임금 옆에는 후궁들이 있었으니 성깔이 영악했던 윤 비는 

허구한 날 질투심이 격발했다. 

질투는 사랑에서 나는 것이 맞다. 사랑이 깊을수록 질투 또한 깊다. 

질투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이고 

사랑이 행복의 극치라면 질투는 한 수 아래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의 발로다. 

성종은 후궁 귀인 정소용과 엄숙의도 총애하여 윤비는 

이들 후궁에 대한 질투로 왕과 자주 다투었다. 

임금과 가까이하는 후궁들을 죽이기 위해 비상도 숨겨두고 

무당을 불러 후궁들을 저주하는 주문을 외우게 하는 등 질투심을 이기지 못했다. 

중전 윤비는 종래에는 왕자와도 격리되어 아들도 보지 못했다. 

윤비는 밤늦게 찾아온 성종에게 왕자를 만나게 해달라며 

성종과 싸움(질투)을 했다. 끝내는 임금님 얼굴에 상채기를 냈다. 

이로 인해 윤비는 폐비가 되어 사가로 내침을 받았다. 

급기야는 사간들의 간(諫)에 못이겨 성종은 윤비의 뉘우침이 없다하여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했다. 

야사에 의하면 희대의 연애 사건을 일으킨 어우동은 

성종과도 만났다는 말도 떠돌았다.  


은장이와 어우동의 첫 만남 

어우동(1430?-1480)은 9대 성종 임금때 궁궐에서 

궁정을 총괄하는 응문원 지사 벼슬을 했던 “박윤창”의 딸로 

충북 음성 태생이다. 

어우동은 세종의 둘째형 태종의 서증손자 이동과 결혼 해 

귀족 족보에 등재 됐다.

옛날에는 지체 높은 양반 집에서는 은장인(銀匠人)을 데려다 

집안에 풀무 깐을 짓게 하고 그릇도 만들 게하고 제기(祭器)도 만들었다. 

이동의 집에서도 장인(匠人)을 불러 그릇을 만들게 했다. 

어우동은 장인이 풀무 깐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늠름한 모습을 

문틈으로 훔쳐보고 설레였다. 

어우동은 꾀를내어 종차림을 하고 풀무 깐으로 가서 장인과 말도 부치고 

심부름도 하면서 친숙해 졌다.

어느날 어우동은 “마침 집에 어른들도 없으니 술이나 한잔 하고 

좀 쉬도록 하라”며 안방으로 유인 해 정열을 불태웠고 

눈이 마주 칠 때마다 잠자리를 했다. 

이로 인해 어우동은  내침을받고 여종과 함께 집을 나왔다. 

그 후 어우동은 기녀수업을 받고 기녀가 됐다. 

어우동은 재색이 뛰어 났고 춤과 시문과 가야금을 잘 다루었고 

그의 여 종도 얼굴도 잘생겼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큰 길가에 집을 얻어 놓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여종이 데리고 들어와 

“마님 이 남자는 잘 생겼으니 마님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런 소문은 승정원 도승지 김계창(지금의 대통령실 비서실장)까지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어우동에 대한 어전회의가 열렸다. 

당시에는 이런 불륜으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남자는 곤장 80대 여자는 60대를 쳤다. 그래서 임금 성종은 어우 동에게도 

곤장을 치고 무마하려 했지만 사간원과 언관들의 사형에 처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 치자 어우동은 결국 처형됐다. 

어우동은 이 일로 죽임을 당한 최초의 여자가 되었고 

왕실족보에서도 삭제됐다고 이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어우동이 남긴 시; 구슬은 흘러 밤을 밝히고/ 구슬은 눈물처럼 흘러 밤을 밝히고/ 

흰 구름은 높이 흘러가니 달빛은 더욱 밝아/ 한 칸의 작은 방에는/ 

임의 향기가 남아 있고/ 꿈결 같은 그리운 정/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겠네. 

이로부터 600 년이 지난 20세기에 大丘판 어우동이 나타났다.  


대구에서 온 정인숙과 丁一權

1970년 정인숙 사건 직후에 나훈아의 노래<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정인숙에 대한 노래가 한때 유행했다.

(눈물의 씨앗은 당시 금지곡이 됐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무르신다면 /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만약에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영원히 우리만이 알았을 걸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성일이가 누구냐고 무르신다면 /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걸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정인숙 나에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장사공

1970년 3월17일 밤 11시 마포구 절두산

(切頭山: 천주교 대원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 목을 친 산)인근 

강변도로에서 검은 색 코티나 차에서 

정인숙이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고 현장에서 죽었다. 

정인숙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4년 대구 남산 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정도환은 해방 후 대구시 부시장까지한 

자수성가형 관리로 7남매를 두었다. 

정도환은 딸이 없던 집에 쌍둥이 딸이 생기자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 

이름도 큰애를 금지(金枝), 작은애를 옥지(玉枝)라했다. 

쌍둥이 동생 옥지는 1년 후 죽었지만 언니 금지는 잘 커서 

후에 서울장안의 사교계를 주름 잡던 고급요정 

선운각(仙雲閣)의 미녀 왕언니 정인숙이다. 

그때 정인숙의 나이는 26세였고 집에는 3살 먹은 정성일(1968년 생)이 있었다. 

그가 차안에 남긴 빨간 가방 안에 있는 수첩에는 

대통령을 위시해 정일권 국무총리 이후락 박종규 등 27명의 

최고위급 정치인들과 사회인사 들의 연락처가 있었다.  


사실 정인숙의 첫애인은 장사공이었다. 

정인숙이 살해되기 전에 친구에게 사는 게 골치 아프다며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그립고 잊혀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장사공은 KBS 라디오 방송국에서“태양은 늙지 않는다”를 

집필 중에 있는 잘나가는 피디였다. 

장사공은 모르는 여자한테서 전화를 받고 나가보니 생면부지의 그가 정인숙 이었다. 

정인숙집에서는 장사공을 한때 사위 깜으로 대하기도 했지만 

정인숙이 요정에 나간후 부터는 장사공이 찾아가도 문전 박대했다. 그 때 

까만색 지프차가 대문에 와 있곤 했는데 차번호는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차가 대통령이 타고 온 차인줄 알고 있었다.

한번은 정인숙이 애를 업고 반도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봤는데 

귀가 박대통령 귀와  닮은 것 같아 그 애는 대통령 자식일거라고 

장사공은 자서전에 썼다. 

정성일은 외할머니(정인숙의 어머니기 키웠다)가 

네 아버지는 정일권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컸다고 했다. 


남자들이 제일 아쉬워하는 것 뺏자. 

남자는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걸 빼앗겨야 정신을 차리는 

동물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자들이 남자를 부리는 비장(秘藏)의 무기(武器)를 갖고 있다는 협박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은 나라보다 여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본성을 알게 되자 

“잠자리 거부하자”는 섹스파업이 등장했다. 

“여성들이여 남자들이 정신 차려 나라를 구할 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자”며 

비장의 무기를 쓸 때가 됐다고 외치고 나온 것이다. 

“남자는 정치보다 섹스가 더 급하다. 여성들이어 잠자리를 거부하자”며 

벨기에 상원 여성의원이 성(姓)파업하자고 주장했다. 

벨기에는 선거가 끝 난지 240(8개월)일이 지났는데도 정쟁만 하고 

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있었다. 

케냐에서도 대통령과 총리가 갈등해서 정치가 

무려 1 년 동안이나 무정부 상태로 혼란을 겪을 때 부인들이 성 파업을 해서 

일 주일 만에 해결 했다. 


인간의 본능. 현대판 성희롱 

인간의 본능은 먹는 것과 씨를 유지하기 위한 성적욕구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교 사상에 젖어 여성의 소양은 정숙인데도 

우리 역사에는 여성들의 성적용구의 불만으로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우리 여자들은) 문 다 닫았어요/ 바람기로 열린 치마만큼 열어놓고/

다 닫았어요 꼭꼭 잠갔어요/ 문틈으로 새어드는/ 노란 노략질/ 

정조대 열두 개도/ 막지 못하네 등의 민요를 통해 여성들은 욕구불만을 나타냈다. 


남성들의 외도도 많았지만 여성의 바람기도 이에 못지않게 유발했다. 

조선개국 공신 변계량은 이성계의 개국을 도운 정몽주 이색 등 

당대 최대문장가들과 어깨를 겨눈 당대의 문장가이고 황희정승과 더불어 

재상으로도 명성이 자자했지만 여동생의 바람기 때문에 곤경을 겪었다. 


첫 남편과 성적욕구를 채우지 못해 노비인 사안과 포대와 사통했다. 

남편이 죽자 재혼했다. 조선시대는 재혼이 가능했다. 

그녀는 새 남편과 살면서도 노비들과 간음하기를 끊지 못했다. 

급기야 시댁에게 꼬리를 잡히자 후환이 두려웠던 그녀는 

권력자인 오빠 변계량에게 남편의 성격이 사나워서 같이 살기가 힘들다며 

이혼 허락을 간청했다. 오빠가 거절하자 

그녀는 남편(박원길)과 오빠 변계량이 여러사람들과 공모해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고 거짓말 밀고를 했다. 

이 보고를 받은 임금은 관련자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 

남편 박원길은 매를 못이기고 형장에서 죽었다. 

하지만 무고임이 밝혀지자 변계량의 여동생과 간통한 노비들은 참형 당했다. 


이런 일은 과도한 성적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있어온 사고다. 

누구도 인간의 본초적인 욕구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성희롱의 과불과는 예부터 있어왔지만 감성이 있는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원초적인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누구도 막을수는 없다. 


(www.seoulvoice.com 과 www.cafe.daum.net/mkchcago 에서도 볼수 있음) 

<한국민속연구원 20160721 제489호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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