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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 북한 무기구입. 세계 2 강국 맞나.

고르바초프, 통독 문열 고난의 행군 단초.

한국 대통령 9명중 6,5 감옥사리. 구소 붕괴, 고르바초프 감옥 갔다

 

푸틴 ", 北에서 미사일·포탄 간다! 세계 2 군사국이 맞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최근 북한으로부터 수백만개 미사일과 포탄을 구매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미국의 기밀 정보가 공개됐다. 우크라이나 침공(2/24/22) 이후 국제사회 제재로 군사 물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과의 긴밀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왔다. 95(2022) 뉴욕타임스(NYT) 정부 당국을 인용해 군사 공급망이 막힌 러시아가 최근 왕따 국가(parish state)” 북한에서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정확한 무기 명칭, 선적 시기, 구입 규모 세부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물자 지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국제사회 비판을 의식한 중국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NYT 전했다. 무엇보다 북한으로부터 재래식 구형 포탄류를 구매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으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군사 전문가 케이건은 "러시아가 전쟁에 필요한 군사 물자도 스스로 생산할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와 북한 양국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 재건 사업에 북한의 건설노동자를 파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의라는 기사도 있었다.

 

고르바초프 공산당 1서기. 독일 통일 대문 열었다

소련 공산당 1서기 고르바초프가 91세를 1기로 830(2022) 유명을 달리 했다. 고르바초프는 우크라이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5 54세때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소련 역대 최연소 서기장이다. 이후 6년동안 소련 2 혁명이라 불릴 수도 있는 개혁개방 시장경제에 박차를 가하는 동구 소련 연방국들의 국민의 알권리를 찾아 주는 개혁 개방을 단기간에 밀어 부치다 실각했다. 하지만 혁명가라 만한 족적을 남겼다. 소련 대통령으로 김일성의 결사반대 중에서도 외교를 맺었고 4번이나 정상이 만나며 차관협상까지 마무리하는 공산주의 종주국이 하는 소공조에 중국도 북한도 할말을 잃을 밖에 없었다.

 

구소련 붕괴 당시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감옥에 갔다

1980 구소련 경제는 쇠퇴일로에 있었고 사회는 부패가 심각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침체된 경제를 일으키지 못한 1991년에 엘친에게 정권을 넘겼다. 이로서 소련연방은 붕괴됐으며 나라이름도 러시아로 개명 됐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는 구소련을 구하지 못하고 서방에 넘겼고 붕괴의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프로필이나 뉴스에 그가 재판장에 섰다 느니 감옥에 갔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고르바초프가 자기가 태어난 우크라이나로 여름 휴가를 있을 보수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쿠데타는 2일도 안돼 끝이 났다. 그리고 같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한국은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검사들에 의해 시달리고 감옥에 가고 죽기도 하는 선진국에서는 없는 수모가 따랐다. 1980년이후 문재인까지 9명의 대통이 있었지만 감옥에 안간 대통령은 문재인 빼고는 사람(김영삼과 김대중 2)뿐이고 나머지 6명은 심문 당하고 감옥사리 했고 하고 있다. 선진국대열에 있는 나라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이렇게 많은 대통령이 감옥간 예는 한국 밖에 없다.  

 

고르바초프, 독일 통일 열었다

1985 대통령이 6개월만에 고로바초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대통령 레이건(이리노이 출생) 대통령과 만나 전략무기 등을 감축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50만명의 소련군을 베르린에서 시작 유럽 소련 연방에서 철군하는 결단을 내렸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병했다.

사건이 승전국들이 점령했던 독일이 통일되는 단추가 되었고 동구권 구소련 공산국들의 민주화 되는 촉매가 됐다. 당시 소련은 15 연방국으로 구성 있었다. 1989 몰타에서 고르바초프는 레이건 미대통령과 정상회담 미소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그러자 동독주민들이 일어나 독일 수도 베르린 장벽을 무너트리고 자유 왕래하게 됐으며 2차대전 승전국들에 의해 4 5열된 독일은 자유를 찾고 서로 왕래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2차대전 승전국(미소 영중)들은 독일통일 때가 아니라며 반대하며 승인을 거부했다.

 

고르바초프, 1990 독일 통일 승인

고르바초프는 1990 동서독 베르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 여름에 이르러 동서독 통일을 수락했으며 통일된 독일이 나토회원국으로 있게 되는 것에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나토는 냉정시대 소련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동맹이다. 서독은 1955년에 이미 나토nato 회원국이 되었다. 베를린은 2차대전 까지 독일 수도 였다. 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독일 수도 베를린은 승전국 소련이 지배하는 동독과 서방국이 지배하는 서독으로 크게 2 있었다. 그리고 동서독 주민들의 왕래를 차단하는 장벽이 쳐져 있었다. 장벽은 스탈린의 뒤를 이은 구소련 흐루시초프가 만든 냉전의 상징물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태생으로 고르바초프와 같은 우크라이나 태생이다. 고르바초프는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 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정전을 권고 했다.

 

고르바초프의 몰락. 공산체제 개혁개방

고르바초프는 1990 개혁파인사들이 추진해오는 500 경제개혁안을 거부하며 속도 조절하다 개혁파들과 틈이 벌어졌다. 1991 8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흑해 연안으로 여름 휴가 중에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파들에 의해 강제 연금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보수파들의 쿠데타는 2 천하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때부터 고르바초프의 세력은 힘을 잃었고 독일을 외치는 엘친에게 구소련은 넘어갔다.

 

세계냉전 종지부. 고르바초프 노벨평화상

고르바초프는 반세기에 이르는 냉전으로 소요되는 막대한 군비를 경제부흥에 쓰겠다고 판단했다. 영국경제학자들은 소련체제가 부패하고 경제적으로 쇠퇴한 소련이 갈수 있는 길은 오로지 개혁개방 시장자본주의 경제였다며 고르바초프는 길을 택했다 했다. 1989년에는 조지 부시(아버지) 당시 미국대통령을 만나 회담에서 정상은 세계냉전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 워싱턴에서 다시 만나 미사일과 전략무기를 감축하는데 합의했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에 기여했고 냉전해체의 주역이 됐다.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89 민주화시위가 동유럽 소련 연방국가에서 불붙듯 일어났고 자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5개월만에 동권 공산국가들이 삭으리 구소련에서 분리 독립됐고 동구권 소련연방은 무너지기 시작 했다. 그때까지 소련은 공산국가들에 무력행사를 정당화 했기 때문에 소련은 연방국가를 진압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무력행사를 폐기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도 묵인하는 동서독 통일도 용인하는 이들 연방국가에 자유를 허용했다. 그리고 1991 여름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일어난 보리스 옐친이 주도해 소련해체를 요구하고 나서자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1991 1212일에 사임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냉정을 종식시킨 대통령으로 영웅대우를 받았지만 자국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이자 동국 공산권을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로 비난도 받았다.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개방 시장주의를 밀어붙여 갈등과 소련 붕괴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고르바초프와 한국의 인연. 수교 물꼬는 열렸다

소련연방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한국은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그는 한국외국어 대학에서 2021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소련은 세계공산주의 국가의 대표국으로 미국다음의 2 대국이다.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하자 공산 3 중국 북한도 고르바초프의 한소 수교를 감히 말리지 못했다. 노태우와 고르바초프는 미국땅 샌프란시스코에서 1990 64일에 한소수교에 합의했다. 한국은 수교를 선호 했고 소련은 경협 수교를 원했다. 한편 북한 김일성은 소련이 한국과 수교는 물론 관계를 갖게 되면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모든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만큼 당시 소련은 경제형편이 어려웠던 것이다. 소련 붕괴직전에도 고르바초프는 일본 방문하고 다음날 제주도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은 고르바초프의 임기중 4번째 회담이다..   

 

, 대북 무상원조 삭감

소련은 11(1991)부터 새로운 대외원조법을 시행하면서 소련의 위성국(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공식 중단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의한 대외원조법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무상원조의 75% 삭감하고 무역거래는 국제시장가격에 따라 달러 한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조치는 북한의 경제위기를 더욱 가중시켰고 동구 각국에도 경제에도 심각한 문제 됐다. 북한은 해방이후 소련으로부터 무상원조만도 13억루블(215천만달러) 제공받아왔다. 북한은 원유수요의 40% 소련에서 수입해왔고 대외무역의 6070% 의지해왔다. 뿐만 아니라 기계제작·야금·화학·동력공업 분야에 대한 기술제공도 3천건에 이르며,소련의 기술·설비지원으로 운영되는 70여개의 공장들이 북한전체의 전력,원유제품의 50% 강철의 30%,알루미늄 철광석의 40% 담당해왔다. 인해 소련이 경제난으로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 것이다. 만큼 소련은 경제력이 쇠퇴해 있었다. 북한은 소련의 원조가 끊어지자 일본 접근뿐 아니라 미국·호주·대만 등과도 관계개선을 시도 했으며 27 서방국가의 대표단을 초청하기도 했다. 한바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88 7 7. 노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일본과 관계 개선을 한다면 협조할 의지가 있으며 우리도 소련·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른바 7·7 선언’을 발표했다. 올림픽 개막 전날인 9 16, 고르바초프는“ 한국과의 경제 관계를 공고히 하는 기회가 겼다며 노태우 7·7 선언 받아들였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시베리아 투자를 바라고 있었고, 이를 위해 북방 영토를 테이블 위에 놓고 거래를 하고자 했으나 되지 않았다. 소련 카멘체프 부총리는 88 11 10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한국은 극동지역에서 가장 유망한 경제 파트너라며 한소수교를 제의하자 고르바초프 이를 받아들여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차관협정 내용.

-소는 경협차관 자금 30 달러로 결정하고 3년에 걸쳐 15 달러는 한국 소비재 수입을 위한 차관으로, 10 달러는 현금차관, 나머지 5 달러는 플랜트 지원이었다. 91 12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30 달러 가운데 147300 달러가 지원됐다. 1993 김영삼 정부 러시아 수교를 주고 샀다 비난하며 러시아에 독촉 했다. 이에 대해 김종휘 당시 안보수석은 한·소 수교로 얻은 안보 경제 이익은 막대합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소련이 김일성을 원조하면 차관 중단하겠다

김종휘는 구소련 마슬류코프 경제부총리를 만났을 자신이 얘기를 들려줬다 한다. 소련이 북한에 군사 원조를 계속한다면 차관 반대론자가 수밖에 없다 하자 마슬류코프가 자기 책상 위의 서류를 보여주며 북한이 보낸 T-80 전차 지원 요청서라며 이것부터 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소련은 그후 미그-29기와, 최신형인 수호이 전투기, 미사일 대북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작. 군사 훈련도 하지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우호적으로 북한에 제공되던 유류와 식량 지원도 중단했다. 그리고 1992 11 소연방 해체 러시아 대통령으로 방한한 옐친은 대통령에게 대북 군사지원을 중단했다는 말을 거듭하며 소련·북한 상호원조조약 1 군사자동개입 조항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북한소련 군사동맹이 깨진 것이다. 김종휘 수석은 “북한이 90년대 이후 유류 부족으로 비행 훈련을 하지 못한다는 분석 있지만 실상은 소련의 부품 공급 중단이 이유”라고 했다. 소련 해체 러시아는 한국차관을 현금 대신 러시아산 헬리콥터, 탱크, 미사일 부품 방산물품으로 빚을 갚았다.  수교를 너무 서둘렀다, 돈으로 샀다 등의 비난에 대해 종휘 수석은 한·소 수교 서둘러 하지 했다면 한소수교는 불가 했다며 수교 1 뒤인 91 8 고르바초프는 실각하고 국내 정치적 입지도 무너졌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노태우 정부 북한 도발 없었다”

노태우의 북방외교는 민족 자존, 남한의 주도적 역할론 맞물려 순조롭게 돌아갔다. 1.서울 시내 용산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추진했고, 2.미군 소유였던 내자동 호텔( 경찰청) 돌려받았다. 3.평시작전지휘권도 돌려받았다. 국방부와 외무부, 청와대 일부 인사들은 반대했지만 용산기지 이전은 대통령이 추진하라고 다고 김종휘는 증언했다. 미국 쪽은 제임스 릴리 부터 설득해나갔. 릴리 대사가 이임할 대통령을 예방해서 하는 얘기가, 자기는 서울에 와서 한번도 골프를 치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 8 골프장(현재 용산공원)에서 쳐야 하는데, 한국민들이 곱게 보지 않을 아서 였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한의 도발은 었는데 이유는 “북한이 우리의 북방외교로 엄청난 안보적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 태우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회담할 남북대화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겠다. 미국은 여건이 조성되도록, 지속되도록 협조해 달라 미국에 요구 했다고 한다.  1990 9 가네마루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방북한 청와대를 찾았을 때도 대통령은 태도를 분명히 하라 말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당시에 구소련의 원조가 끊어지자 통미외교, 일본외교를 추진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0 한·소 수교가 마무리되면서 중국의 자세도 점차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노태우 북방외교는 소련·중국과 접근하면서 한편으로는 전략적으로 미국에 충분한 사전 설명을 으며 북한의 미국 접근은 은밀히 차단했다고한다(참고; 6공화국 실록.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풍계리 핵실험장 홍수, 7 핵실험 못할 수도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비욘드는 829(2022)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의 4 터널 주변이 홍수로 인해 도로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마친 3 터널은 피해를 받지 않았으며 주변에서의 활동도 관측되지 않았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7 핵실험 준비가 완료돼 핵실험 결정만 남은 상태라고 밝혀 왔다. 핵실험장 북쪽 지역이 최근 2달새 이어진 폭우로 운영에 지장을 받고 있다.

 

차락우 칼럼 매주 목요일 www.seoulvoice.com

한국 민속연구원 795 20200908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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