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7 12:56
첫사랑에게 서 온 마지막 편지
영아야
소식이 늦었구나
잠시 다녀간 자네 집에서 방 두 칸짜리로 돌아온 내 집이 너무 크기만 하다
아내는 3년 전에 먼저 갔고, 하나뿐인 아들은 시카고 교환교수로 가 있고
아들 만난다는 핑계로 한번 가본 미국 시카고 영아가 있는 곳에서 영아를 만난 것이
나의 마지막 행복을 가진 것 같다. 잘 차려준 마지막 밥상도 참 따뜻하더라
내가 위암수술 후라, 많이 먹지 못해 미안하였다.
그래도 내 위를 눈치채고 구하기 어렵다는 무말랭이 무나물 취나물 고비 나물
조선호박 넣어 만들어준 된장찌개, 무를 푹 곤 고춧가루 안 넣은 고등어찌개
아주 좋더라. 얼마 만에 먹어본 것인지
아내는 자주 몸이 아픈 사람이었고 내가 늘 배타고 타국으로 다니느라
살갑게 대해 준 적도 없었는데, 죽기 전에 나를 만나 참 행복하였다고
하드 구만.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은 외로움의 연속이라 웃고 우는 일에
근육이 마비되고 감정 없는 듯 살아온 탓에 변해 버린 무뚝뚝함 이
아내를 외롭게 하기만 했는데, 아내가 가고 난 뒤 조금 울었다.
모든 게 미안하고 안쓰럽고 후회가 되기에.
아들 녀석- 내 마음은 안 그런데 아버진 인정도 없고 말도 없고
정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그러더구먼.
나는 정말 그 녀석이 너무 소중하고 좋은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식구가 많든 영아네 집 잠시 가정교사를 지냈든
그 시절이 나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구나 싶다.
늘 저녁을 먹고 가게 하고 먹을 것을 넉넉하게 싸주시든 어머니
언제나 싱글벙글하시고 큰소리 한번 안 내시든 아버님
그 아버지하고 딸 들이 게임도 하고 매달리고 엎히고 씨름 하고
형제자매 들이 많아 언제나 시끌벅적 우당탕탕
미소와 폭소가 어울리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든 집안 분위기가 너무부려웠다
예쁜 대학생 언니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해 두근두근 가슴 태우든 일
그것도 흐믓한 기억 이다.
얼마 전에 의사가 폐로 암이 전이됐다고 하는구나 그냥 수술 않고
살만치 살다가 갈까 해
아직 70은 안됐지만 69살 그래도 60은 넘겼으니 많이 살았지
어머니를 만날 생각하니 오히려 기쁘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29살 때 돌아가셔서
청상과부로 나 하나 바라보며 호강 한번 시켜 드리지 못했는데
성질 고약한 이 못난 아들을 늘 기다리시기만 하셨든 내 어머니,
임종은 못 뵈었다. 외국에 가 있었고 연락받고 급히 귀국하였으나
벌써 땅속에 묻힌 뒤였거든.
나의 어머니 제일 보고 싶다. 어머니 계신 그곳에 가서 만나지게 되면
정말 곁에서 잘해 드리려고 해
아이 같은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하는 것 같구나
영아 집에서 아들 집으로 다려다 주든 영아남편 유머가 넘쳐나고
선한 사람 같아 내 기분이
참으로 좋더라. 저녁 먹으면서 영아가 한 말이 가끔 생각나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와. 흐뭇해서 내가 언니를 짝사랑했다고 말하였더니,
영아가 그때 선생님은 언니에게 맘이 가 있었고 나는 선생님을
짝사랑 했었다고 재미있어하며 까르르 웃든 자네 그 모습은
그 시절 작은 어린 소녀의 해맑음이 그대로 남아 있더구먼.
나는 그때 왜 그리 몰랐을까?
바보인 나는 그냥 자네에게 엄하게 하였다는 기억밖에 없구나
고맙다, 영아야
그런 좋은 추억과 기억을 갖고 가게 되어 그나마 참 다행이다 싶다
전화를 않고 이리 편지를 쓰는 것은 그래도 나 외롭지 않게 조금이라도
기억해 줬으면 해서 그런다
내가 가고 난 뒤 나에게 정 없어 하는 내 아들이 모자란 이 아비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 하기나 할까? 몇 사람이나 나를 기억해 줄까?
아무도 없을 것 같아 살아온 내 삶이 많이 후회되는구나
다시 되돌아간다면 이젠 정말 잘 살아줄 것 같기도 하다
아들하고 목욕도 하고 목마도 태워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다
정말로 말이야. 영아야 조금만 더 살고 싶다. 내가 속죄 할수 있는 시간만,
조금만 더
( 나는 노을진 창밖을 보며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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