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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난이

2014.02.27 13:09

가연 조회 수:812

 

 

제목 ;  나는 못 난이 ,

 

 

다급한 일이 생겨 잠시 한국으로 갔었다. 열흘 동안 의 여정이었다.

 안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데로 일이 잘 끝났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남아 우리는 내가 살든 옛집으로

가 보았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던 그 집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예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던 집이다

 

그때 그 집은 남향으로 2층 목조건물이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이었다

이 층에는 방이 많았었고 뒷마당이 넓어 꽃 좋아하신 아버지는 찔레나무부터 온갖 꽃들로

많이 심기도 하셨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해서 아프고 넘어지고 경기도 하고

비 오면 감기 하고 눈 오면 몸살하고 3살이 되도록 까지 걷지도 못했다고 했다.

한의사셨든 외할아버지 집에서 6살까지 약으로 침으로 살리셨다고 한다.

햇빛 많이 보게 하라고 하신 외할아버지 말씀 아니라도 아버지께서는 나를 산으로 냇가로

데리고 다니셨고 뒷마당에 꽃 심을 땐 꼭 나를 불러 같이 심게 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4살 터울인 언니는 몸 약한 나를 등굣길 내 손 꼭 잡고 언제나

교실의 의자에 앉혀주고 자기 교실로 돌아가곤 하였다. 지금은 높은 빌딩으로 변해 있는

그 집. 그런 예쁜 추억 속에 살았든 우리 집이라 마음이 쓸쓸했다.

 

착하고 예쁜 언니가 중학교로 가버리고 3학년 첫 학교 길은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등굣길이

막막했는데 그때 바로 우리 집 옆집 옆집의 양철 대문이 삐꺼득하고 열리고 6학년

오빠가 나왔다. 나에게는 구세주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오빠 뒤를 쫄랑쫄랑 따라서

학교까지 갔다. 그 오빠가 오른쪽 길로 가면 나도 오른쪽 길로 갔었고 왼쪽 길로 가면

나도 왼쪽 길로 갔었다. 따라오라 하지 않았다. 그냥 동네 오빠를 따라 학교 가는 그 길이

안전하였고 든든하였었다. 그런 기한이 여름방학 전까지 계속되었는데, 방학을 며칠 두고

어느 날, 모퉁이를 돌아 그 오빠를 따라 잡느라 급히 뛰어서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그 오빠가 큰 소리로 “야 너 왜 나를 쫄쫄 따라다녀” 고함을 질러서 너무 놀란 나는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오빠는 눈을 부릅뜨고 손 하나는 허리에 또 다른 한 손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다시 큰 소리로 “따라오지 마! 못생긴 게” 하더니 휙 돌아서 가 버렸다

나를 일으켜 주지도 않았다. 그 일로 너무 놀란 나는 며칠을 아팠었다.

 

사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된 거였다. –못생겼구나- 그리곤 자주 나의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고 그랬다 “엄마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언니는 눈도 크고 뽀얗고

동글동글 귀엽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리 못생겼어.”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그래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내 다리 밑에서” 하시며   재밌다고 웃으신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왜 이리 못생겼을까 하는 열등감과 자격지심  으로,

지금은 아예 못생김 에서 거의 체념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런 추억도 마음을 쓸쓸하게 하였다.

돌아서 오던 내 눈에 그 옆집 오빠 집이 보인다 .

양쪽으로 높은 빌딩 중간에 낮은 3층 집이다. 그 시절 그때보다 잘 지은 집이긴 한데

양가에 높은 빌딩 사이 집이라 이상하게 초라해 보인다.

게다가 1층에는 –양복 맞춤- 이라고  간판이 적혀 있다.

남편은 신기한 듯 “아니 요새 이런 양복 집이 있나 기성복이 더 싸고 좋은데

이왕 왔으니 양복 하나 맞출까?” 한다.

 

들어서니 옷감들이 나란히 잘 정돈되어 있고

키 작은 남자가 밥을 먹다가 주섬주섬 먹든 음식을 덮으며 벌떡 일어선다.

공연히 우리가 더 미안했다.

안으로 들어간 후에 다시 나온 그 남자에게서 치약냄새가  났 다.

손님에 대한 배려로 양치 를  하고 나온 모양이다.  남편은 양복을 맞추었고 우리는

오랜 미국 생활습관대로, 주인이 부른 가격대로 깎지 않고 양복을 맞추었다.

 

주인 남자는 “선생님. 고맙습니다. 요새 기성복이 싸고 하여 양복 맞추러 오는 사람도

없지만 오신 분 에게도 가격을 잘 주어도 깎는데요. 안 깎으시고 고맙습니다.” 한다

남편은 괜스레 미안해하며 “아구 아닙니다. 제가 학생 때 한 3일간 가정교사를 한 사실을

어찌 아시고 저를 선생님이라 불려 주시는지.” 별스런 농담까지 하여 우린 크게 웃기도 하였다

 

“선생님 모래 가봉하시러 오십시오. 다음날 해 드리겠습니다.

라며 영수증과 명함을 건네준다   이름이 이순호 –그 오빠다.

나를 평생을 `못 생김`이라는 열등감으로 살게 했든 이웃집 오빠.

 

28 가르마로 기름 바른 숱 없는 머리카락을 얌전하게 붙이고. 양복점 문앞까지 따라

나오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며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에 놀라 우리도 뒤돌아 보며

90도로 절을 하였다

다행이다. 나를 못 알아본 것, 남편이 그때 일을 알지 못하는 것.

그 시절에는 키도 컸는데,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당당하고 큰소리로 고함지르든

그 기상은 어디로 가버리고 손님에게 굽실굽실하는 모습에다. 짜리 몽땅 한 저 키.

-세월 동안 키도 안 크고 뭐 했남- 평생을 내 마음속에,

 이` 갈리게 했든 이웃집 오빠,   마음이 찡하다어쩌면,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안돼 보이고 애처롭다.

 

겨울인데 한국의 하늘이 왜 이리 맑고 따뜻한 날인지 모르겠다. 비라도 내려주지.

괜히  애궂은 우리나라   하늘에다  눈 흘기고 있는  나 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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