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0 17:45
이완용은 3대 주미 대사. 이완용 부인 방한모 150년전 미국에서 인기.
제1차 주미 대한제국공사 박정량, 미국대통령 접견. 선교사 알렌 미국식 병원 광혜원 창설.
한국천주교는 자생. 대원군 천주교 박해 신자들 산에 들어가 옹기 구어 연명.
한국 천주교는 조선에서 자생 했다. 불교처럼 중이 불상을 들고 들어 오지 않았으며 개신교처럼 선교사가 성경을 들고 들어오지 않았다. 이씨 조선에서 자생(自生)한 특이한 천주교라 할만하다. 그런 한국 천주교는 혹독한 박해를 받으면서 성장했다. 아차 산이니 절 두 산이니 하는 산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으며 굴비 묶이듯 묶여 산으로 끌려가 목 잘려 죽은 곳의 이름이다. 이들 산은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할 때 꼭 들리는 곳이다.
천주교 박해정책을 한 사람은 이 씨 조선 마지막 임금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그런데 대원군의 부인이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대원군이 몰랐다고 하니 이는 신의 조화 같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들은 죽음을 피해 산속 절로 피신했고 중들은 도망 다니는 천주교 신자들을 숨겨 죽음을 피하게 했다. 신자들은 산에 숨어 옹기를 구어 옹기 행상을 해서 끼니를 이었다. 지금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옹기장사 후손들이 많고 이들은 천주교의 대를 이어온 골수 신자들이다. 2022년 한국리서치의 통계르를 보면 총인구의 49% 가 종교인이고 그중 31%가 개신교 20%, 가톨릭 11%, 불교 16%로 종교인 49% 중 절반 이상이 기독교(신교와 구교) 신자다.
김수환 추기경의 “옹기장학회” 김수환의 호는 옹기
김 수환 전 추기경의 할아버지는1888년에 순교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생계를 꾸리며 자식을 키웠다. 김 전 추기경의 장학회를 설립 할 때 장학 회 이름을 “옹기”란 자기자신의 호를 따서 “옹기장학 회”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김 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그렇게 했다고 한다. 옹기는 좋은 것 나쁜 것 온갖 잡동사니를 담아 두는 유용한 그릇이고 심지어 오물도 담을 수 있는 유용하게 쓰이는 살림살이다.
알렌 선교사 중국에서 대한 제국으로 방향 전환
신교 선교사들도 서울에 들어오긴 했지만 당시 조선엔 선교가 국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선교는 하지 못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알렌 선교사의 첫 선교지는 중국이었지만 중국에 가서 보니 맞지가 않아 한국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한다(당시 중국에 조선에 금이 많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실재로 금광이 많았다. 알렌도 금광에 깊이 관여했고 노다지no touch라는 말도 알렌이 관계한 광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고 알렌은 사업에도 크게 관여 했다). 알렌은 주한 미국 공사관에 부탁해서 한국주재 미국공사관 무굽(無給) 의사 신분증을 얻어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1884년에 와서 의사 신분으로 진료도 했다. 이듬해에 영국에서 출생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미국으로부터 들어와 새문안 교회와 정동교회(감리교)를 세우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세웠다.
김옥균의 갑신정변. 우정국 화재사건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서광범 서재필이 이끄는 사관생도 10여명이 우정국에 불을 질렀는데 건물안에 있던 새도 떨어트린다는 실세 민영익(閔泳翊; 민 비의 친정 조카)이 불길을 피해 밖으로 나오는데 숨어있던 개화당 자객들이 칼로 찔러 죽이려고 목 어깨 팔을 마구 찔렀지만 목숨만은 붙어 있었다.
알렌은 최초 미국식 병원 광혜원 원장
알렌은 죽게 된 민영익 영감집에 불려가 밤을 새우며 30 여 바늘이나 꿰매는 대 응급 수술을 해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알렌은 이일로 일약 궁궐의 시의(侍醫)가 되었고 고종 임금은 알렌에게 병원을 설치하라는 특허를 주어서 “광혜원(廣惠院)”이란 서양병원이 1885년 4월3일에 개원됐으며 6월에 “제중원(濟衆院)”으로 개명 됐다. 고종은 병실 1등급 일당 1 천냥, 2등급 병실 환자 2명 일당 500냥, 극빈자는 무료 진료하라는 등 병원 운영규칙까지 정해 주었다.
알렌은 조선전권공사(현 대사) 박정량을 미국 대통령 접견 알선
알렌은 고종임금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을 만났다. 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을 수없이 죽이고 쇄국정책으로 서양문물을 배척하고 청나라에 잡혀 갔다 돌아온 흥선대원군을 만났는데 한국고관 관리들이나 양반들이 하는 것처럼 고자세로 인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마주 인사를 하는 등 인격이 고상한 사람이었다고 대원군을 회고했다. 알렌은 곧 주 대한제국 미국 공사(현 미국 주한대사)가 되었고 대한제국 전권공사(현 주미대사) 박정량 일행이 미국에 올 때 그들을 워싱턴까지 인도해 미국대통령을 만나게도 했다.
미국으로 가는 배안, 곰방대 대 찐 오물 냄새 진동
전권공사 박정량 일행은 조선을 떠나 호놀룰루를 거쳐 샌 후란시스코에서 하선하기까지 배에서 26일 동안 10명이나 되는 한국 관리들이 작은 선실에 기거했는데 목욕을 하지 않아서 똥내 오짐 지린내가 코를 찔렀고 줄 곰방대를 피워서 대 찐 냄새 한국음식 냄새 등으로 악취가 배 안에 진동하고 이가 옷 밖으로 기어 다니곤 했다고 알렌은 그의 회고록에 기록 해 놨다. 기차로 대륙횡단 하고 시카고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차를 갈아타고 워싱턴에 도착해 일행이 묵을 임시 주미공사관을 임대하고 미국 정계 경제계의 거물들을 박정량에게 인사시키는 등 알렌은 영어 못하는 한국외교관들의 손발이 되었다.
최초 주미공사는 박정량. 3대 주미공사는 이완용
1888년 1월 1일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박정량은 고종의 친서를 들고 통역사이기도한 선교사 알렌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를 거처1월 9일 수도 워싱턴에 도착해 1월17일 마침내 클리블랜드(22대)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했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미수호 통상조약을 맺었지만 청나라의 반대로 1888년1월17일에서야 미국의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량이 본국으로 소환된 뒤 2대 주미 공사는 이하연(친일 반민족 행위자), 3대는 을사오적이자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이완용. 4대 주미공사는 이채연이다.
당시 워싱턴 언론 '이브닝 스타'가 1989년 5월 7일 자로 보도했는데, 당시 이하연과 이완용의 부인의 한복과 조바위(당시 조선여성의 방한모)를 쓴 이채로운 모습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882년 당시 조선과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은 2026년으로 144년의 역사를 자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외교의 시작점. 조선은 당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선교사 알렌. 천주교 신부가 죄 사하지 못해
고종임금은 알렌에게 나라를 경영할 돈이 없어 일본 중국이 조선을 업신여기고 제 맘대로 하니 미국 돈 200 만 불(1888년 당시 1 $ 는 1232 냥. 당시 미국1 센트는 조선 엽전 약 10냥)차관을 얻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하며 불란서 사람이 천주교선교 본부를 설립하겠다면서 칙허(임금의 허가)해달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 느냐는 자문을 구해 왔는데 알렌은 임금에게 “천주교를 받아 들이지 말라”면서 그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여자)를 경배한다. 신부가 죄를 사할 수가 없다
우리는(신교) 하나님이외의 그 어떤 우상이나 인물을 숭배하는 것을 반대한다. 가령 가톨릭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자)를 경배하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신교)는 하나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죄를 사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가톨릭교에서는 죄를 사할 수 있는 힘을 신부들에게 부여 함으로서 신부를 부패 타락하게 했다. 신자들은 신부에게 개인의 생각을 고백해 야하기 때문이다. 신부는 남자인데 부인(여자)들이 그들의 고민이나 죄과를 독신 남자에게 은밀히(독방에서) 고백한다는 것은 불안전하고 위험하다고 확신한다”라 했다. 알렌은 자기의 자문이 임금에게 크게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고 했다(1886년 3월 6일자 알렌 일기).
차락우 칼럼 매주 목 www.seoulvoice.com에 게재. 한국민속연구원 제공 제981호. 1/29/2026 charakwoo@hotmail.com (참고 1/6/09 교 알렌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