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모친 이명숙 이야기. 불후의 명곡 영탁의 “막걸리 한잔”
아버지는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어머니 고생시키는 우리 아버지 원망.
막걸리에는 6가지 덕이 있다. 강화도령, 왜 임금상에 막걸리가 없나.
북 김정일도 박정희가 좋아한 막걸리 타령. 시름 많던 임금을 달랜 것도 한잔의 막걸리
막걸리 한잔(작사 작곡 유선우)을 불러 유명해진 가수 영탁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 영탁은 노래에 있는 것처럼 아버지와 술을 마셨을까. 그랬다고 한다. 영탁의 아버지 박진두는 오랜 직업 군인 출신이고 어머니는 공무원으로 보수적인 집안이어서 영탁이 좋아하는 음악에 반대가 심해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아들 영탁이 불후의 명곡 ”막걸리한잔”을 불러 음악에 성공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이 막걸리 한잔을 듣고 있 노라면 영탁의 어린시절 집안 얘기와 막거리를 가운데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영탁 자신사이에 있을 수 있는 애정표현이 잘 돼 있다. 그러니 아버지는 영탁의 노래가 자기 집안 애기로 뜨끔한 면도 있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잔
온 동네 소문 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 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 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막걸리 한잔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 명동 이명숙 막걸리집 이야기 (K radio 12/16/15 방송 출연)
한국에 유명한 원로 연예인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외아들 최불암을 키웠습니다. 광활하게 넓고 넓었던 옛날 마포의 배추밭 가운데 외딴집에 최불암을 홀로 두고 명동에서 막걸리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명동에 “은성”이란 작은 막걸리 집 주인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입니다.
이명숙은 대한제국 궁내 악사의 딸이었고 남편은 최철이라는 영화 제작자 이었는데
“내일 없는 그날”이란 영화를 제작하다 과로해 죽었다고 합니다. 과부가 된 이명숙은 인천 동방극장 지하에서 “등대”라는 다방을 하다 서울 명동으로 와서 막걸리집을 했는데
당시 이봉우 소설가, 박인환시인 등 유명했던 이진섭 극작가 등6.25 전쟁으로 멍들고 배고픈 글쟁이들이 이 막걸리집에 몰려와 고달픈 가난과 풍진 세상을 탓하며 신세타령하는 장소가 됐다고 합니다. 가난했던 글쟁이들은 술 마시고 돈이 없어 술값 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돈 몇 푼 생기면 갚고 없으면 또 외상을 했으니 가난해진 이명숙의 은성막걸리 집은 날이 갈수록 외상장부만 커졌습니다.
인심 좋은 이명숙 막걸리집(K radio 12/17/15방송)
막걸리 인심 좋았던 이명숙은 몇 권의 외상장부 치부책을 남기고 죽자
그의 장례식에는 은성에 드나들었던 글쟁이들과 장안에서 이렇다하는 예술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애도 했다고 합니다. 이명숙의 외아들 배우 최불암(본명은 최영한)이 어머니 이명숙의 유품을 정리하다 상자에 있는
외상장부 치부책에 빼곡히 쓰여진 외상값 장부를 보고 이 돈만 다 받으면 큰 부자가 되겠다고 했지만 실망했다고 합니다. 외상장부에 줄줄이 쓰여 있는 이름은
어머니만 알아 볼 수 있게 별명과 암호로 쓰여 있어서 누가 외상을 졌는지
실명이 없어서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무명 시절 가난했던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기위해 속 깊은 막걸리집 이명숙 마담은 외상진 사람들의 실명을 쓰지 않고 자기만 아는 암호와 별명을 빼곡히 써 놨다고 합니다. 마담의 속 깊은 배려였다고 합니다.
사발이 넘치도록 퍼주는 이명숙의 외상 막걸리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고 못다 한 울분도 달래게 했습니다. 막걸리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누구나 쉽게 담거 막 걸러 마시는 술이라 하여 막걸리가 됐고 농주 탁주 탁배기라는 여러 별명도 있습니다. 막걸리 이름만 들어도 모서리 없이 구수합니다. 막걸리에는 쌀 막걸리 감자 막걸리 등 800여 가지 종류가 있다지만 도수(度數)가 얼마인지 따지지도 않고 이렀다 저렀다 격식도 없이 마시는 서민의 술입니다.
막걸리는 발효 과정에서 효소와 유산균이 생성되어 항암효과도 있어 장수 식품인 것을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에 온 일본 총리와 청와대에서 막걸리로 “간빠이(乾杯)”를 했습니다. 20개국 정상(G20)들이 한국에 모였을 때도 막걸리로 건배를 했습니다.
연산군의 시름을 달랜 시 (K radio 12/18/15 방송)
우리 역사에 나오는 연산군이 있습니다. 연산군은 폭군으로 알려졌지만 이조 500년 27명의 임금 중 인물이 가장 출중하게 뛰어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가 많이 있는데 폭군의 시라고 모두 불태워버렸는데 하나 막걸리에 대한 것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막걸리에 시름을 싫어 시를 읊었습니다.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도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 드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일어버리네” (연산군 일기 중에 있는 단 하나 연산군의 시).
시름 많던 임금을 달랜 것도 한잔의 막걸리며 이씨 조선 말기 안동 김씨 떼거리들이 정치를 독점하면서 60년 동안 득세할 때 궁에는 손이 귀해 임금 할 손이 없었다. 그래서 임금 할 자손을 찾던 중 강화도에 나무지게 지고 산으로 가던 강화도령(이원범)을 찾아 냈다. 이원범은 왕족임에도 가문이 몰락해 강화도로 유배가 평민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러다 졸지에 궁궐로 끌려와 산해진미 임금(철종)수라상을 받게 되었는데 강화도에서 막걸리만 먹다가 수라상에 막걸리가 없는 것을 보고 왜 임금상엔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했다. 이를 들은 상궁들이 놀라 급히 궁 밖에 나가 막걸리를 구해 왔으며 그 후 철종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궁에서 담겄다고 한다.
막걸리 하면 박정희가 밀집 모자를 쓰고 논 뚝 자리에 앉아 농부에게 주전자의 막걸리를 따르며 “임자 한잔하자”며 소탈해 했던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말(言)세 또한 잊혀지지 않는 절경이었었습니다. 박정희도 막걸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막걸리는 농부들이 목이 마를 때나 힘이 들 때나 더우나 추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농부가 있는 거기에 있습니다. 논일 밭일 할 때 막걸리 새참 나오면 한 마장 밖에서 일하는 김 서방에게도 손짓해 부르고 박 서방에게도 손짓 해 오라 해서 한잔 나누는 것이 막걸리 인심입니다. 막걸리는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우리의 술이고 슬프나 즐거우나 부르는 아리랑과 같습니다.
김정일 북한 독재자도 남한 막걸리 타령
북한의 김정일은 정주영 현대 회장이 김정일 만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 했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참고. 정주영은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으나 김영삼에게 지고 난 후 “국민이 자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서운해 했고 그후 정주영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 101마리를 김정일에게 진상하는 등 북한을 몇 차례 방문했다).
정주영은 술을 하지 않았으므로 어떤 회사 막걸리가 좋은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정주영은 여러 막걸리 회사에 전화를 해서 어떤 막걸리를 박 정희대통령이 좋아했는지 수소문을 했는데 회사마다 자기 회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정주영은 10 여개 회사제품을 모두 김정일에게 갔다 주었는데 술 좋아한 김정일은 하나씩 마셔보고 “포천 막걸리가 제일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천 막걸 리가 한때 독이 났다고 합니다.
막걸리는 농민의 술이고 임금의 술이고 대통령의 술이고 세계정상들의 술이 됐습니다.
막걸리에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합니다. 허기를 면해주는 덕, 많이 취하지 않게 하는 덕, 추위를 덜 타게 하는 덕, 일하기 좋게 기운을 내게 하는 덕, 응어리 진 크고 작은 감정을 풀어주는 덕이입니다. 이제는 효소와 유산균이 포함돼 있다 하여
항암 덕 하나가 더 늘어서 육(六)덕이 됐습니다.
얼씨구절씨구 한잔, 지화자 한잔, 임금하고 도 한 잔, 대 통령하고도 한잔 막걸리는 기백(幾百)년 동안 우리의 정기가 담긴 술이며 가난했던 농사꾼의 얼과 정서가 담긴 민족 고유의 술입니다. 감사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락우 칼럼 매주 목요일 www.seoulvoice.com에 게재. 한국민속 연구원 제공 제9975호. 6/4/2026. charakw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