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 전두환 론(論). 전 재산 29만 원.
시카고 한인회 임원 전두환에 큰소리 사실.
전두환 백악관 차관 행각.
취임한지 7일된 풋내기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막대한 흑자내는 일본 견제하라 권고하자 레이건은
“지혜 있는 대통령”이라 칭찬하고 일본에 부탁해 한국정부에60억불 차관 알선.
한국의 북방정책 성공은 전두환의 올림픽이 시초.
성공한 북방정책, 전두환 노태우 정주영의 재치
전두환과 정주영은 1988년 세계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고 전세계에서 160개국이 참여해 대 성황을 이루었다. 특이한 것은 이 올림픽에는 소련을 위시해 공산국들이 대거 참여했다. 올림픽이 끝나자 올림픽의 여파를 이용해 노태우와 사업가 정주영은 이들 나라들과 재치 있게 교역의 문을 열고 영사관을 설치하는 등 북방정책에 성공했다. 특이한 것은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와 노태우는 1990년 극비에 미국 샌후란시스고에서 만나 한-소 수교에 합의하고 차관을 소련에 주기로 약속 하고 다음해인 1991년에 한-소 수교를 매 졌다.
물태우(노태우)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소련에 차관을 주기로 했다. 조건은 북한에 원조를 중단하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가 바로 대북 원조를 차단했고 김일성은 경제와 식량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김일성은 김영삼과 남북정상 회담을 해서 식량 난을 해결 하고자 마음 먹고 있었다.
김일성은 7월 25일(1994) 김영삼과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묘향산에 들어가 회담 준비를 하던 중 7월8일 사망했다. 정상회담 17일 전이다.
전두환 재산이 29만원 뿐이 맞는 가?
전두환 추징금에 대한 논란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이 현직에 있을 때는 잠잠하더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온 나라가 추징금으로 설왕설래 했다. 전두환이 작살 낸 나라 돈을 내라는 추징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검찰은 전두환의자식들 처남 이혼한 며느리 사돈의 삼촌까지 수색 해서 그들은 풍비박산 됐다. 전두환은 오래전에 응접실세트, 카펫, 식탁세트, 에어콘, TV, 컴퓨터, 시계 등 가재도구를 몽땅 추징당했고 기르던 진돗개도 경매 처분돼 추징되고 적막 강산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집에서 외롭게 산다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앞마당까지 억류 됐다고 한다. 살고 있는 본체는 전두환의 장인 이규동이 준 돈으로 이순자가 산 것이기 때문에 제외 됐다.
그러면 전두환은 과연 모든 것을 잘못만 하다 죽은 대통령일까!
연희동 전두환의 집을 찾아 갔던 기자(동아일보)에게 전두환 내외는 "이제는 세 상에 맞설 힘도 의지도 없다"고 심경을 토로 했다고 한다. 낡은 가구도 살림도 없이 산다고 했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설(說)에 대해서는 민정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판사가 묻는 질문에 "29만원은 이미 추징된 금융재산의 휴민계좌(사용하지 않는 은행계좌)에서 6년 동안에 발생한 이자가 29만원 이라"고 설명한 것이 "전 재산"이라고 와전 보도 됐다고 해명 했다 (2013년 8월6일 조선일보). 전두환은 잘못만 저지르고 퇴임한 대통령일까? 기자는5시간동안 그와(전두환과) 나라를 위해 공도 있다는 대담을 나누고 저녁까지 대접받고 나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공개했다.
전두환은 석두가 아니라 지혜 있는 대통령이었다
총칼로 한나라의 권력을 단숨에 잡았다는 전두환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만나 준 이야기와 레이건이 전두환이 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을 설득해 한국에 경제 원조를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압권이다. 석두(돌대가리) 전두환이 아니라 지장(智將)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장면이다.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이 대통령을 시해하고 중정요원이 청와대 경호원들을 단시간에 죽이고 제압한 궁정동 10.26 사건과 12.12 사태를 계기로 전두환은 단숨에 나라를 호령하게 됐지만 본인 자신도 그렇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도 그를 큰 재목으로 보지를 안았다. 하지만 전두환은 이를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맞나는 데서 찾았다.
한미연합사를 창설한 유병현 예비역대장을 통해 미대통령 레이건과의 면담을 성사시키는데 성공했다. 정권을 잡고 보니 당시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 과잉투자와 5.18의 혼돈으로 한강의 기적이 문턱에서 무너지게 될 위기에 있었었다고 한다. 이런 일로 전두환이 레이건을 만나겠다고 하니까 고급 공무원(당시 민간인 공무원)들은 모두 코 웃음 쳤지만 막상 미국에 간다니까 당장 "각하 이런 것을 관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서류 보따리로 들고 왔다. 하지만 석두(石頭) 전두환은 그 많은 것을 다 읽고 레이건을 설득하다 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쉽게 돈 100억을 지원해달라고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자면 일본을 엮어서 레이건을 설득해보자는 데 착안 했다.
전두환이 레이건을 설득한 내용. 막대한 흑자내는 일본 견제해야.
(전두환은)비행기에서 어떤 논리로 그 주장을 펼칠 것인가 그 생각만을 했다고 한다. 대담한 자세로 "각하 일본이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은 미국이 전 세계를 안전하게 해주고 일본 앞에 있는 한국이 공산주의를 막아주고 일본은 그 덕분에 국방비를 쓰지 않고 고도성장을 거듭해 대단한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세계안전을 책임지느라고 경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도 공산주의 막느라 형편이 어렵습니다. 각하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형편이 좋지 않으니 일본이 우리를 지원해주면 우리는 경제를 살려서 번 돈으로 미국무기를 사서 안보를 튼튼히 하겠습니다. 한국경제가 돌아가면 미국은 무기를 팔 수 있으니 미국도 이익이 아닙니까? 이는 막대한 흑자를 내는 일본을 견제하는 방법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레이건이 동석한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바라보자 두 장관은 "댓스 굳 아이디어Thats good idea 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일본한테서 60억 달러 의 경협자금을 지원받게 된 거야(그 중 40억불만 사용).
레이건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대통령 한번 더 하라 했다
전두환은 “그래서 한국경제가 다시 일어 난 거 야” 라고 기자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레이건이 내보고 대통령 한 번 더하라고 했는데 단임을 해야 한다고 사양했지. 내가 (5년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자 레이건 대통령이 자기 전용기를 보낼 테니 미국한번 다녀가라고 했었지. 전두환이 전하는 이 이야기는 그 당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 관계 정세에도 맞는 판단으로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흑자 일본을 견제해 야한 다는 논리를 미국에 귀 뜸 한 것"은 미국으로 서도 간과할 수 없는 귀가 뜨끔한 충고였을 것 이다. 이는 석두가 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라 지장(智將)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무역적자가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서
전두환임기 중에 한국은 무역적자가 최초로 흑자로 돌아섰고 뛰는 물가가 안정 됐으며 국민저축률이 상상 최고에 달해 서민 생활이 안정됐다(각가정이 저축한 돈이 제일 많았고 아직도 그 저축을 능가한 적이 없다고 한다). 또 전두환은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실시하게 했고 올림픽유치로 국 격을 높였으며 단임을 실천 해 고질적인 장기집권을 종식시켰다. <한국 민속연구원 20130829 시카고 문경 제 348호 charakwoo@hotmail.com>
어머님 곁을 떠 난지 17년이 지나 고국방문
나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에 시카고를 대표해 참여했다. 당시 나는 한인회 부회장이었고 회장은 김창범씨였다. 회장은 출타 중이어서 내가 대신 가게 되었는데 고국을 떠나 온지 17년 만이었고 그 때 뉴스와 말로만 듣던 전두환 대통령을 봤다. 전두환은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취임식은 1981년 3월 3일 체육관에서 거행 됐다.
취임식 끝난 다음날 외국에서 온 손님들만 저녁에 따로 리셉션을 했다.
전두환은 대통령은 취임사가 끝나자 단에서 내려와 청중들이 있는 곳을 한바퀴 돌면서 악수도 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전두환에게 “왜 시카고에 안 오셨습니까” 큰소리 치는 사내가 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내가 있는 바로 앞에 왔는데 사람들에 가로막혀 직접 악수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시카고에서 온 교포입니다 지난번 미국에 오셨을 때(레이건과 정상회담 때) 왜 시카고엔 안 오셨습니까” 소리를 꿱 질렀는데 전두환은 “아 그러세요 다음에는 꼭 가겠다고교포 님들에게 전해주세요”라 답을 했다. 나는 시카고에서 대표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신라호텔 날 내숙소의 문에 공무원의 명함 5개가 끼어 있었다. 정부 공무원이 왔다 간 것이 분명했다. 기우이 긴하지만 시카고에서 왔다는 소리를 기억하고 사람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락우 칼럼 매주 목 www.seoulvoice.com에 게재. 한국 민속연구원 제공 제989호. 4/7/2026. www.charakw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