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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글을 못 쓰는가! 자가도취경(自家陶醉境)에 빠져 변죽만 건드리는 글쟁이,

하지만 나에겐 수 십년 지기 독자와 내 글을 싫어 주는 “교차로”가 있다. 매사엔 한계점이 있다.

부자가 돈 버는 한계점. 도둑에도 한계점, 사랑에도 한계점!

글 쓰는 사람에게도 한계점이 있다. 하치 않은 제 글을 수수 십년 싫어 주는 교차로에 감사.

 

나는 벌써 근10여년 동안(2026년 현재까지는 20년) 주간지에 매주 목요일판에 한 번도 건너뛰지 않고 2천 에서 3천단어 불량의 글을 쓰고 있는데 "왜 나는 남을 감동시키는 글을 쓰지 못하는가"하는 의구 심을 갖게 됐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글 제목을 정하는데 만 많은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면 서도 여러 번 반복해 읽기도 하지만 고치기도 여러 번 한다. 나름대로 획 하나를 놓고 씨름 할 때도 많고 틀리게 쓰지 않으려고 또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이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탈고 된 원고를 편집부에 보내고 다음날 인주간지가 인쇄 돼 나오면 혹 뜻이 잘못 표현 된 것이 있나 사실이 왜곡 된 것이 있나 오자가 있나 걱정하며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나름대로 애를 쓰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을 아직 눈으로 확인 해 본적이 없다.

 

간혹 식당에 가면 내 글이 실려 있는 주간지를 들고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목격 할 때가 있다. 혹시나 하며 내 글이 있는 쪽(page)을 읽었으면 기대하고 유심히 보았지만 사람들은 몇 장 뒤적이다 음식이 나오면 덮어두고 식사를 한다. 그러면 실망한다. 그렇다고 내 글이 그 주간지에 있다고 지적한다는 것도 저면 적은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실망도 했다. 식당이나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빼 가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만 그들이 그 주간지에 내 글을 읽는지는 알 수 가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 알량한 글 쓰는 사람. 내 글 봤다는 소리가 제일 고맙고 반가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혹 내 글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렇다 저렇다 쓰다 달다 하는 사람이 가뭄에 콩 나 듯 했다. 글이 감동적이고 충동적이었다면 칭찬은 아니더라 도 봤다는 말이라도 하겠지만 그저 봤다는 정도였을 뿐이었으니 실망하고 있다. 더구나 멘토나 칭찬 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남이보지도 않는 글을 이틀 사흘 씩이나 고생하면서 쓴다는 것이 처량하고  알 량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고 마감 즈음에 맞추어 송고(送稿)하고 나면 어딘 가에 칭칭 묶여 있다 풀려 난 듯 홀가분해 지고 날라 갈 것만 같은 때가 많다. 특히 글이 잘 쓰여 지지 않고 고생할 때는 더 그렇다.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쓰는 글인데 세상(독자)은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다는 것은 시원치 않은 글이기 때문이고 글 쓰는 사람의 글재주와 능력과 영감이 독자들을 공감 시키기엔 역부족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변죽만 건드리는 허무한 글쟁이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그래도 누군가는 글을 읽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감동하겠지 하는 기대가 있다. 나 뿐이 아니라 저자들은 누구나 같은 생각과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반응이 없고 감동이 없는 글은 저자 자신이 일방적으로 자기도취에 빠져 허무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나는 그 동안 자가(自家) 도취경(陶醉境)자(者)가 되어 글을 쓰며 변두리 글쟁이 행세를 했다는 것이 아주 부끄러워 졌다.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이 없는 글을 쓰다 지쳐서 절필했다고 선언하는 작가 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하치않은 글을 써 놓고 잘 됐다고 믿고 글을 쓴 초라한 사람이 됐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이글에 틀림없이 어느 부분에서나마 과연 감동을 했을까? 아니다. 얼마 전에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일이 있다. 출판사에서는 "좋은 수필집이 되겠다."는 지극히 사업 자적인 짤막한 소감을 보내왔지만 내게는 별로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하기야 자기가 쓴 글에 자기가 도취 돼 책을 내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의 뜻을 책에 담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수기를 책으로 남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것 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글을 써 세상에 내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자기도취에 빠진 글은 내 혼자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부조리가 많은가?

 

많은 부조리한 일이 세상에 가득 차 소란을 피우고 있는 이 때 글 쓸 소재는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잘못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사람들이 감동하는 글을 못쓰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울고 웃는데 이런 것에 대한 감동하는 이야기 하나 제대로 못쓰다니, 전쟁으로 이산가족의 절절한 사연이 그렇게 많은데도 이에 대한 감동하는 글을 못 쓰다니,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실망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에 대한 감동의 글을 하나 제대로 못쓰고 있다니 나는 이제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 왔나 하는 후회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갖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글하나 제대로 창작하지 못했다. 내가 그런 일에 빠져보지 못해서 그런 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게도 그런 실패 그런 사랑 그런 이별 그런 아픔과 고독과 실망함도 헤쳐 나기 어려운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도 나의 글은 너무 감동이 없고 충동이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 삶에는 누구에게나 한계점(限界點)이 있다. 사랑에도 한계가 있는가!

 

표현의 한계(限界), 단어의 한계, 지식의 한계, 경험의 한계, 타고난 성격의 어느 한계 아니면 더 깊은 인생의 쓰고 쓴 고생을 덜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내가 지내온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충동을 일으키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한 때문인가 하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때도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한계점(限界點)이 있다. 한계점이 없다면 이세상은 더 우스워질 것이 분명하다. 한계 없이 돈을 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한계 없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한계 없이 남을 돕기만 하는 사람은 종래에는 빈 털 터리 거지가 될 것이다. 도둑질도 한계가 있어 야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악인도 악행의 한계가 있어야 한다. 글 쓰는 사람도 한계가 있을까. 글 쓰는 것마다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다. 내게도 내가 만든 그릇 만큼에서 나오는 것이 나의 글 쓰는 한계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 해 보지만 잘 안된다. 영성이 차지 않는다. 욕심인가 하고 여겨 보기도 한다. 사랑과 믿음에도 한계가 있는가 연구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게 나의 한계(限界)점인가 그리고 거기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다"라 고 억지로라도 우겨보려 한다. <한국민속 연구원 20130801 시카고 문경 제 344호 charakwoo@hotmail.com.>재판  

 

시카고 60년지기 인연 심기영 김창범.

 

1964년 찬바람부는 정월 오혜야 공항에 내린 지 며칠도 지나기전 동서남북도 모르고 있는 판국에 지인을 따라 감리교회에서 한인회 회장 선거에 참여 했다. 회원은 모두 28명이었다. 그후 심기영씨를 알게 되었는데 그 자리는 심기영씨 자신이 주도했다고 했다. 심기영씨는 한인회장에 3번 출마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선거운동을 했고 당선 된 후엔 임원이 됐다.  한인회관을 장만 하기위한 모금운동도 열심히 했다. 2년만에 한인회관을 장만했다. 그 때 한목 크게 참여한사람이 김창범 회장이었다. 나는 이들의 인연으로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고 한인회와 깊은 인연을 갖게 되었으며 임원, 이사, 선관위원 등을 역임했지만 한인회장은 못했다.

 

내 글 읽어 주는 독자가 제일 좋은 사람. 심기영과 김창범

 

나의 시카고 선배는 심기영 변호사고 후배는 김창범 회장이다. 심기영 변호사는 평양북도 구성사람으로 그 조부가 금광을 했다고 들었다. 서양 선교사들은 선교도 했지만 알렌처럼 잘 알려진 선교사도 금광사업을 크게 했다. 그래서 금이 나올 때는 미국사람이 한국 광부에게 건들지 말라 no touch no no 를 연발했다. “노다지가 낳다”는 단어는 no touch에서 유래 됐다고 한다. 여하간 심변호사는 독서 광이기도 하다. 김창범회장도 글을 열힘이 보고 책도 발간한바 있다. 심기영씨 부인은 작고 했지만 생존시에 자기 남편이 매주 빠지지 않고 내 글이 있는 주간지 교차로 를 자판기에서 빼내 읽으면서 “차락우 글 잘 쓴다”고 칭찬을 여러 번 했다고 나에게 일러 주었다. 심기영씨도 나에게 가끔 연락해 결려 해 주었다. 나는 수 십년 동안 글을 쓰면서 심기영씨나 김창범씨에게 글 쓴다는 얘기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창범씨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내가 주간지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한번도 빼지 않고 내 글을 읽고 있다고 격려 해 주었다. 그 뿐 아니라 주간지를 모았다가 친구에게 우편으로 보내기까지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분들에게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글 읽는 독자를 제일 좋아하고 존경한다.

 

내 하치않은 글을 마다하지 않고 글을 싫어 주는 “교차로”에 심심한 사의를 전합니다. 시카고 엘에이 뉴저지 라스베가스 등 전미국에 전달되고 있어 나로서는 큰 영광이다. 교차로에 감사드립니다. 라스베가스 등 여행가서 교차로에 내 글이 있는 것을 보면 교차로에 고마운 마음을 다시 알게 된다.

 

차락우 칼럼 매주 목요일 www.seoulvoice.com에 게재. 한국민속 연구원 제공 제 985 호. 3/3/2026  charak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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